이경우 편집국장

지금 포항은 도시 전체가 우울하다. 포항의 밑바닥을 떠받치고 있는 포스코의 경기가 예전같지 않기 때문만은 아니다. 대통령을 배출했던 도시로서의 영광은 잠시였고 대통령 임기 가 끝나면서 승자의 저주 후유증이 만만찮다. 무엇보다 실세였던 형님을 비롯, 주변 인물들이 영어의 신세로 전락했다. 더구나 그 형님의 지역구 후임자가 상처투성이로 국회에 입성하더니 아예 식물 국회의원이 돼 버렸다. 지역 입장을 대변할 대표조차 유명무실해졌다. 지금 포항의 무기력증은 바로 정치력 부재에서 출발한다.

최근 포항에는 큰 산불이 났다. 불이 나자 박승호 포항시장은 물론 이병석 국회부의장까지 급히 현장으로 나와서 주민들을 위로하고 피해 복구와 지원책을 짜내느라 지혜를 모았다. 그런데 난리통 어디에도 김형태 의원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같은 시간 김 의원은 서울에서 김병관 국방부장관 후보자의 인사청문회에 참석해서 “결정적 하자가 없는 것 같다. 의혹이 확인되지 않았으니 찬성해주는 것이 맞다”고 해서 누리꾼들로부터 호된 질책을 받았다는 것이다.

산불 뿐만이 아니다. 일본이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며 정부 차원의 행사까지 벌일 때도 김 의원은 지역구 의원 역할을 할 수 없었다. 그 수많은 각급학교 동창회에서부터 송년모임이나 신년교례회에도 얼굴을 드러내지 못했으니 금의야행도 이런 금의야행은 없다. 지역 국회의원을 두고도 없는 듯 지내야 하는 포항 시민들의 속은 얼마나 상하고 다른 지역 사람들로부터 눈총받는 포항시민의 자존심은 또 얼마나 무너져 내렸던가.

김 의원은 선거 과정에서 동생 부인 성추행 물의로 곤욕을 치렀다. 그러나 자신의 항변처럼 유권자들의 심판을 받았다. 그것도 압도적 표차로 당선을 꿰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선인 시절부터 선거법 위반사건으로 수사를 받으면서 고달픈 의원 생활이 시작됐다. 새누리당을 탈당했고 동료 국회의원들이 사퇴 결의안을 내기에 이르렀다.

경찰은 선거기간 이전부터 여론조사를 가장한 전화홍보 등을 들어 국회의원 당선 보름만에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김 의원에 대한 사전구속영장을 신청했으나 검찰은 보강수사를 지시했다. 그래도 영장은 기각됐고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이 4개월 동안 수사 끝에 지난 해 8월말에야 김 의원을 선거법위반으로 불구속 기소했다. 진작 기소했더라면 지난해 12월 대선과 동시에 국회의원 재선거가 실시됐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사실상 그만큼 의원 생활을 연장시켜준 셈이다.

김 의원은 최근 본지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나는 내 무죄를 아직도 확신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포항에서 4월 재선거가 치러지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단언했다. 자신의 거취는 대법원 판결 전까지 스스로 결정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못 박은 것이다. 대법원이 3월중 선고를 예고하지 않았으니 이 말은 사실이 됐다.

그러나, 그러나 김 의원이 버텨봤자 고작 1달이다. 늦어도 4월 중에는 대법원 판결이 나고 김 의원의 불명예 퇴진이 거의 확실시된다. 본인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최근의 법원 판결 추세나 지금까지의 경찰과 검찰 수사과정 및 공판과정을 들여다보면 그런 유추를 가능하게 한다. 그런 불명예를 끝까지 확인하려는 김 의원의 집념이 존경스럽다. 그렇다면 다른 모습으로 그 이름을 지켜낼 수는 없을까.

김 의원의 선택에 달려있다. 정치인이자 전 언론인으로서 본인의 명예를 지키고 지역민의 자존심을 살려 주는 마지막 선택이 있긴 하다. 기회는 많지 않다. 이것이 김 의원에 대한 수많은 의혹에도 불구하고 그를 뽑아준 지역민에게 보답하는 방법 중 하나다. 4월 재선거를 할 것인가. 10월까지 국회의원 없는 지역구가 될 것인가. 벌은 한 번 쏘고 죽는다. 김 의원의 장렬한 모습을 보고 싶다. 김 의원의 결단을 기대한다.

    이경우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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