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경우 편집국장

“국가의 운명과 국민의 미래가 걸린 중대한 시점에서 국회는 움직이지 않고 미래부를 둘러싼 정부 조직 개편안 논란과 혼란 상황을 보면서 조국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려고 했던 저의 꿈도 산산조각이 났다”며 “제가 조국을 위해 헌신하고자 하는 마음을 지켜내기 어려웠다”고 했다. 김종훈 전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가 지난 주 국회에서 가진 사퇴 기자회견에서 했던 말이다.

`조국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려고 했던 꿈?` 그렇다면 우리 국민들은 고귀한 분의 자기 희생이자 봉사를 스스로 내팽개친 꼴이다. 그럴까. 장관이라는 자리, 명예와 부(엄청난 연봉과 또 경제적 이득 및 이권에 관여할 수 있는 권리) 권력까지 갖는 자리다. 그것은 개인의 영광에 그치는 자리가 아니다.

김 전 후보자의 능력은 알려진 것만으로도 탁월한 것이다. 미국에서 성공한 사업가. 미국 중앙정보국과의 밀접한 관계를 유지할 정도로, 그리고 재산이 1조원대에 이를 정도로 그는 능력을 검증받았고 또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런 분이 우리나라 장관이 되면 본인에게는 헌신이 되고 국민에게는 영광이 된다는 말씀이었다. 박근혜 대통령도 미래 성장 동력과 창조 경제를 위해 삼고초려해 온 분이라며 안타깝다고 하지 않았나.

그런데 국민들이 그를 내쳤다는 것 아닌가. 그의 사퇴는 개인에게는 꿈의 좌절이지만 국가적으로는 손해가 된다는 말씀이다. 박 대통령도 신념이자 국정철학을 실천할 책임자로 미래부의 신설을 구상했고 그 선장으로 삼을 셈이었다. 그런데 그 선장이 배가 출범도 하기 전에 배에서 내려 버린 것이다. 그의 사퇴를 보면서, 언론이 제기했던 수많은 의혹을 되씹어 보면서 은근히 심사가 뒤틀린다. 사퇴의 진짜 이유가 무엇이든, 공적 업무능력과 프라이버시는 다르다지만 찜찜한 기분은 도대체 뭘까.

국가에 헌신하겠다는 꿈,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소리다. 그렇다. 선거때만 되면 나오는 소리. `이번이 마지막 봉사`라고 생각하고 고향의 발전을 위해 한 몸 던지려고 한다는 이야기의 데쟈뷰다. 비록 그 선출직이 장관만큼 높지도, 장관의 권력을 갖지도 않지만 선거권을 가진 일반 국민에게는 엄청 대단한 자리임에 틀림없다. 그래서 선거때의 굴신을 기억하는 국민들은 어느 사이 뻣뻣이 목줄기에 풀을 먹인 선량들을 보노라면 배신감을 느끼기도 하는 것이다.

지방자치단체장이 일요일도 반납하고 지역 순시에 나섰다는 기사를 자주 본다. 동정으로 사진과 함께 소개되는 단체장의 업무는 그야말로 숨 쉬는 것 빼고는 모두가 공무가 되는 느낌이다. 현장 순시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어느 단체장은 휴일이면 가끔 자신의 학교 동창생과 각종 모임 동료들을 지역으로 불러들여 문화행사나 축제 등을 관람하고 역사 현장을 소개한다. 식사 대접에다 특산물을 한 아름씩 안겨주기도 한다. 본인이야 단체장이 휴일을 반납하고 자기 지역을 홍보하고 관광객 유치와 지역특산물 세일즈에 나섰다지만 직원들은 불편할 수도 있다.

누구에게는 업무가 다른 사람에게는 노역이 되고 또 다른 사람에게는 휴식이나 놀이가 되기도 한다. 그 불평등을 불평할 수 없는 직원들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놀면서, 자랑하면서 `봉사`하고 `헌신`하는 그 거드름을 위해 힘든 선거 과정을 겪었다고 이해하려 노력하지만 불편한 것은 사실이다.

지난 주말 포항에서는 큰 산불이 났다. 인명피해와 재산피해는 물론, 시민들이 느낀 공포심은 평온한 봄날을 전쟁 상황으로까지 몰아넣었다. 이날 김관용 경북도지사와 박승호 포항시장을 비롯한 수많은 공직자들이 주말을 반납하고 산불 진화에 나섰다. 그들의 노고를 알지만 누구도 그들이 헌신했다고 하지는 않는다.

그러니 함부로 헌신이라고 쓰지 말라. 청문회에 서는 잘난 당신들의 헌신이 국민들을 얕잡아 보는 거들먹으로 비쳐질 수도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