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경우 편집국장

1천824일 남았다. 오늘 취임하는 박근혜 대통령이 임기를 마칠 때까지 남은 날수다. 취임식날 퇴임을 이야기하는 것은 너무 성급하고 마뜩찮게 여겨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삼가하고 자신에게 엄격함으로써 국민들의 존경받는 성공한 대통령을 담보하는 부적으로 삼기를 바라는 뜻에서 충언으로 박근혜 대통령님의 취임을 축하드린다.

오늘같이 기쁜 날. 어찌 새 내각이 대통령 취임을 함께 하지 못하고 지난 정권의 장관들과 어색한 동거를 해야 하는지 생각해 본다. 선거에서 진 야당이 용심을 부린다고 탓할 일만은 아닌 것이, 패배자를 보듬는 승자의 여유를 볼 수 없었기에 하는 말이다. 승부에서 졌고 그래서 더는 잃을 것이 없는 야당에게 마지막 남은 자존심마저 빼앗겠다는 승자의 오만이 조직개편의 실패를 불러온 것은 아닌지 반성해 볼 필요가 있다. 대선에서 승리한 대통령의 집권 구상을 존중해주지 않는 야당을 탓하기엔 여당의 일방통행식 밀어붙이기가 꽉 막힌 불통정권을 미리 내다보는 듯해서 국민은 불안하다.

주역에서는 `더 이상 오를 곳이 없는 높은 곳으로 올라간 항룡은 눈물을 흘리며 후회를 하게 된다`(亢龍有悔)고 했다. 공자도 항룡은 너무 높아져서 교만하고 남을 업신여기며 남의 충고를 듣지 않는다고 했다. 오히려 그렇게 겸손함이 없으면 끝내는 눈물을 흘리며 후회하게 된다는 참언처럼 들린다. 끝까지 올라간 용이 후회하지 않는 방법은 없을까.

취임식 날에 내려오는 이야기를 하는 불경을 용서하시라. 그리고 주위를 돌아보라. 산에 오를 때는 힘이 들지만 내려올 때는 위험하다. 많은 등산 사고가 올라갈 때보다 내려올 때 더 많이 발생한다고 산꾼들은 말한다. 오늘 대통령의 자리에 오를 때까지 그 신난했던 날들을 되짚어 보라. 권력의 정점에 이르기까지 앞으로는 수많은 도전과 시험을 통과해야 했고 등뒤로는 온갖 모함과 이간질, 배반, 음모, 테러까지 극복해왔다. 오늘의 영예는 결코 하늘에서 그냥 떨어진 것이 아니었다.

강을 건넜으니 배는 필요없어졌다. 토끼를 잡았으니 사냥개는 삶아도 된다. 과연 그런가. 산에서 내려가지 않을 방도가 있나. 올랐으니 이제 내려가야 한다. 산에 머무는 동안 올라왔던 길을 되돌아보고, 뒤따라 올라오는 사람들을 보고 적당히 즐겼으면 내려가야 한다. 내 앞에 올라왔다가 내려간 사람들처럼. 위험하지 않게 하산하는 준비를 하는 것이다.

정상에서 머무는 시간, 올라오면서 준비하고 기대했던 수많은 작업들을 하나 둘 성공적으로 이루기 위해서는 초심을 지키는 것이야 당연하지만 주위의 바른 소리를 귀담아 듣는 열린 자세야말로 중요하다. 싫은 소리, 쓴 소리라도 그것이 소통의 첫 단추가 된다는 사실을 명심할 일이다. “그럴 줄 알았다”는, 선거 과정에서의 이야기가 재론되어서는 성공할 수 없다.

국민들은 참여정부가 임기 초반 준비기간이 너무 길어 권력기관이나 재벌개혁이 힘 있게 추진되지 못했고 이명박 정부 초반 광우병 촛불 집회로 개혁 동력을 잃었던 경험을 지켜보았다. 박 대통령은 이런 전례를 반면교사로 삼겠다는 각오를 보였다. 당선인 시절 인수위 토론회에서 “파급력이 큰 공약들을 뽑아 초반에 사활을 걸고 집중적으로 역량을 쏟아부어야 한다”며 강력한 개혁 드라이브를 예고한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추진 의지가 강하더라도 국민의 협조가 없으면 이루어낼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있다.

어떤 역학자는 청와대의 터가 여성에게 더 맞다고 해석하기도 했다. 그곳에 들어갔다가 성한 몸으로 나온 사람이 없다는 얘기일 것이다. 그렇다면 올라갈 데까지 다 올라가서 이제 내려오는 길만 남은 박 대통령에게 그 징크스를 깨고 5년 뒤 국민의 박수를 받으며 나오는 대통령이 되시길 간절히 기원한다. 다시 한 번 박근혜 대통령님의 취임을 진심으로 축하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