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경우 편집국장

`7번방의 선물` 감독 이환경이 한 방송과 인터뷰하는 걸 듣고는 무릎을 쳤다. 그렇다. 예승이 역을 뽑는 오디션에서는 갈소원의 점수가 꼴찌였다. 그런데 감독은 이 꼴찌를 선택했다는 것 아닌가. 그의 천진함 때문이란다. 때묻지 않은 순수함. 그 `아이다움`이 예승 역으로 선택된 배경이다. “무서운 이야기를 잘 한다길래 시켜봤더니 하나도 무섭지 않았다. 그렇다. 어린이란 저런 것이다.” 이 감독의 설명이다.

아무리 연기를 잘 해도 실제 상황보다 더 리얼하게 연기할 수는 없다는 것을 감독은 갈소원 어린이에게서 확인한 것이다. 뻔한 이야기. 여섯 살 예승이가 흉악범들과 함께 관객들을 웃기고 울리는 신파다. 이 영화에서 바보 용구는 오로지 딸 예승이만 생각하는데 그렇게 둘의 천생 궁합에는 예승이의 천연덕스러움이 밑천이다. 그 예승이의 연기는 쥐어짜내고 만들어진 연기가 아닌, 그의 몸에서 나온 연기라는 것이다. 세일러 문 가방이 소원인 여섯 살 예승이의 해맑은 미소, 이건 크리스마스 시즌이면 단골로 등장하는 미국영화 `나홀로 집에`에서 말썽꾸러기 케빈 역을 맡은 맥컬리 컬킨의 닳아빠진 영악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지상파 티브이 프로그램 중에 `정글의 법칙`은 인기 개그맨이 세계의 오지를 찾아다니며 목숨을 걸고 생존 사투를 벌이는 것이다. 안방으로 전해지는 짜릿한 전율 속에 개그맨의 힘든 연기가 그대로 드러난다. 아찔한 절벽 타기며 온갖 장애물을 헤쳐가는 정글 탐험이 진실이라면 그를 촬영하는 카메라 기사는 또 얼마나 힘이 들 것인가. 앞에서 또 뒤에서, 때로는 멀리서 그의 행동을 손발과 얼굴 표정까지 쫓아다니며 카메라에 담아 안방에 전달하느라 생고생을 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걸 극본없이 리얼 다큐멘터리라고 믿는 사람이 있었던 모양이다. 물론 시청자에게 시각적 효과를 극대화하고 스릴과 조마조마함을 제공해주기 위해서이겠지만 어느 정도 연출이 뒷받침되고 편집됐을 것이다. 시청자에게 눈요기를 시켜주고 웃음과 여가선용의 기회를 주기 위한 프로그램이다. 그걸 굳이 연출이 아니고 편집이 아니라고 우기는데서 시청자의 불만이 쏟아지고 있는 것이다.

24살 청년 박종우가 동료들보다 6달 늦게 올림픽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지난해 여름 런던 올림픽 축구 3-4위전에서 숙적 일본을 꺾은 기쁨을 `독도는 우리 땅` 깜짝 퍼포먼스로 날려버린 그다. 당시는 독도 문제로 한국과 일본이 첨예하게 대립돼 있었고 (비록 관중이 건네 준 피켙이었지만) 박종우의 독도 세리머니는 우리 국민들을 시원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 댓가는 쓰라렸다. 대표팀이 시상대에서 메달을 목에 걸 때 박종우는 주먹으로 가슴을 쳤을 것이다. 박종우는 그 때가 가장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다행히 IOC는 뒤늦게나마 박종우의 세리머니가 사전 계획된 것이 아니었다며 박종우의 진심을 믿어준 것이다. 그 진정성을 알리는데 6개월이나 걸렸다.

진정성이란 그런 것이다. 슬프면 울고 기쁘면 웃고 또 화가 날 때는 욕도 하고. 그것이 사람의 얼굴이고 사람 사는 모습이다. 세련되지 못한, 다듬어지지 않은, 그래서 더 순박한 우리의 얼굴들. 그런 맨얼굴들을 만나고 싶다. 공자님께서도 3천년 전에 이미 갈파하셨다. 교언영색선의인(巧言令色鮮矣仁)이라고.

박근혜 정부가 정상 출범할지 아슬아슬하다. 총리 후보자가 낙마하고 장관 후보마다 흠결이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그 시절, 잘난 아비를 둔 자식들은 다 군대 가지 않았다. 날 때부터 평생 먹고도 남을 부동산을 안고 태어났다. 그 진실을 국민들은 알고 싶다. 수십년이 지난 뒤에 푼돈같은 증여세를 뒤늦게 내면서라도 장관을 해야 하겠다는 그 얼굴. 버티다 결국 사표 낸 헌법재판소장 후보. 청문회에서는 생얼을 보고 싶다. 화장발 없는 민낯을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