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년 만에 고향에서 첫 설을 쇤 국군포로 남교태 씨(75. 사진)의 명절 감회에는 한마디로 만감(萬感)이 교차했다.

음력 설인 지난 9일 아침 남 씨는 포항시 죽장면 매현2리를 찾아 차례를 지낸 다음 귀국 후 거주해 온 경주시 안강읍 큰 조카 남상진 씨(62)의 집으로 돌아와 53년 만의 뜻 깊은 설 상을 받았다.

남 씨는 이 자리에서 부산, 울산, 포항 등 인근에 흩어져 살고 있는 조카 손주와 며느리, 방계 자손들의 세배를 받고 종일 발길이 이어진 방문객들을 맞느라 눈코 뜰 새 없는 하루를 보냈다.

지난 1952년 국군에 징집된 남 씨가 그해 7월 철원군 김화지구 전투에서 포로가 된 이후 함경북도 원덕군 등 북한의 탄광지대를 전전하면서 가장 큰 명절은 김일성 생일(4월 15일)이 고작이었다.

따라서 이날 남 씨는 바나나 등 이름도 못 들어본 외국산 과일까지 차려진 차례음식에 적잖이 놀라워하면서도 귀국 이후 그래왔던 것처럼 들뜬 표정을 자제하는 모습.

북한에 아직 부인과 결혼한 4남매 부부, 손주 5명 등을 두고 온 작은 아버지의 심정을 지난 열흘 남짓 모셔오면서 제법 잘 알게 된 조카 상진 씨도 이런 남 씨의 마음을 상하게 하지 않을까 애쓰는 모습이 역력했다.

상진 씨는 “이번 귀향에 큰 도움을 준 피랍탈북인권연대 등 시민단체와 정부가 나서서 작은 숙모님 등 북에 남겨진 식구들의 입국까지 성사시켜 한 가족의 비극을 끝내주기를 바랄 뿐”이라고 고대했다.

지난달 28일 죽장면민 환영대회 이후 남교태 씨는 요즘 하루를 찾아오는 가족친지들과의 대화로 주로 보내고 있다.

지난 반세기 동안 격리됐던 북한 생활에 따라 낯선 가전제품 등에 대한 이해가 낮아 별도의 설명이 필요한 것 외에는 이들과의 의사소통에는 별 어려움이 없다.

조카 상진에 따르면 현재 남 씨의 국내 정착을 위해 가장 필요한 일은 주민등록과 말소된 호적의 복적 등 행정 절차이며 오랜 탄광생활로 쇠약해진 건강의 회복을 위해 종합검진이 하루라도 앞당겨지는 일이다.

/임재현기자 imjh@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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