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경우 편집국장

해외여행이 자유화된 즈음의 얘기다. 홍콩 여행을 갔을 때 가이드는 홍콩의 여러 관광지들을 주마간산식으로 이동하고는 우리 일행을 면세점으로 몰아넣었다. 그러나 아무도 불만이 없었다. 화장품이며 핸드백이며 양주에다 악세서리까지, 세계 유명 브랜드의 소위 명품들을 원 없이 구경할 수 있는데다 가격 또한 시중보다 싸다지 않는가. 모두가 쳐다보고 지갑을 만지작거리며 눈 호사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지난 해 경주에서 중국의 경제인과 언론인들을 초청해 한중경제포럼을 열었을 때였다. 참석한 경제인은 물론이고 취재 온 기자들조차 경주에 면세점이 어디 있느냐고 물었다. 그들에게 경주에 면세점이 없고 가까운 면세점이라야 70km 쯤 떨어진 부산에 있다고 말해줬다. 그랬더니 면세점에 쇼핑하러 갈 수 있도록 일정을 단축하거나 줄여 달라고 주최 측에 집단 민원을 넣었다.

경주에 들어서려던 면세점이 사업자의 포기로 공중에 떠 버렸다. 보문단지 내 현대호텔에 면세점을 내겠다던 서희건설은 경주 시내쪽에 면세점이 들어서야 한다는 경주시내 상인들의 압력과 사업성 등을 들어 사업을 포기했다는 얘기다. 서희건설의 면세점 포기는 이웃 포항에도 큰 실망을 안겨주었다. 철강공단을 중심으로 해양 산업도시라 불리는 포항은 독자적으로 면세점을 유치하기엔 2% 부족하다. 마침 경주 보문단지에 면세점이 들어서면 그 영향으로 포항도 외국인 관광객을 유인하는 또 하나의 카드를 잡게 될 것이라 기대했기 때문이다.

인구 53만명의 포항은 지금 동빈항 물길을 뚫는 포항운하 역사를 한창 추진중이다. 이 물길이 뚫리고 포항운하에 유람선이 떠다니는 풍경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 벅차다. 여기에 철강공단은 훌륭한 산업관광자원이 될 것이고 이를 활용한 외국인 관광객 유치도 꿈이 아니다. 그러면 경주와 포항이 관광이라는 또 하나의 연대로 서로 상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밑그림을 그리는데 면세점이 하나의 가교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경주시와 포항시의 전향적인 자세가 절실하다.

포항과 경주는 반도 동쪽 끝에 위치한 지리적 이웃으로 그 역사적 정서적으로 많은 공감대를 갖고 있다. 외부인의 눈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밑바닥에는 서로 인정하지 않으려 하고 양보하지 않으려 하는 경쟁 심리가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심지어 경주 내에서조차 시내 상가와 보문단지 상가간 경쟁이 면세점 발목을 잡은 혐의도 짙다.

고물 철도역을 기차마을로 바꾸어 일약 전국적인 관광 명소가 된 전남 곡성군은 섬진강변 가정 관광단지에 곡성 천문대를 세웠다. 그런데 그 천문대가 곡성군이 아닌 이웃 구례군에 위치해 있다. 이런 이웃마을의 화합과 정이 전국의 관광객들을 그러모으면서 시골마을을 활기찬 관광 명소로 만든 것이다.

경주가 관광객 2천만명 시대를 열고 국제관광도시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경주의 관광 인프라만으로는 부족하다. 경주의 역사와 전통 문화를 중심으로 한 관광 인프라를 포항의 중공업 중심 산업 인프라와 상생관계를 맺어 양 도시가 서로 윈윈할 수 있어야 한다. 경주를 찾는 많은 해외 관광객이 단순히 눈으로 보는 관광에서 차원을 높여 포항의 산업 관광까지 겸하게 되면 관광의 질 향상은 물론 관광산업의 위상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킬 수 있다.

관광객이 불국사와 석굴암을 관광하고 동해안 드라이브를 하며 동해의 풍광과 산업도시의 장중한 현장을 체험할 수도 있다. 단순한 평면 관광에서 벗어나 체험관광과 산업관광을, 거기다가 면세점이 주는 쇼핑의 즐거움까지 더한다면 경주와 포항은 관광과 산업으로 서로 상생할 수 있을 것이다. 관광객은 어느 하나만을 보고 오지 않는다. 그렇다면 면세점도 경주와 동해안권 관광 인프라의 하나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