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경우 편집국장

노인들은 고단하다. 자살하는 노인들이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보다 4배나 많다. 세계에서 가장 빨리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노인들의 삶도 갈수록 팍팍해져 간다. 이미 상당수 농어촌 지역은 65세 이상이 전체 인구의 20%를 넘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인구 10만명당 노인 자살은 2001년 14.4명에서 10년만인 2011년 31.7명으로 2배도 더 높아졌다.

더욱 기가 막히는 사실은 일하는 노인이 여전히 많다는 것이다. 가장 늦게까지 일해야 만 살아갈 수 있는 현실, 노인들이 일자리에 내몰린다는 현실은 우리 사회가 그만큼 복지에 무관심했기 때문이다. 한 때 우리사회의 주축이었던 지금의 노인들, 오늘의 산업화와 민주화를 온 몸으로 일구어낸 주인공들. 그들의 스산한 노년은 길거리에 팽개쳐져 있다. 노인들이 나이 들어서도 일해야 하는 현실은 노인에게 노인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라는 짐을 맡겨 둔 때문이다.

OECD (경제협력개발기구)가 최근 내놓은 고령화와 고용정책 보고서에 따르면 2011년 한국의 인구대비 고령자(65~69세) 취업률이 41%로 OECD 32개국의 평균 18.5%보다 2배나 높았다. 아이슬란드(46.7%)에 이어 세계2위다. 일본은 36.1%, 미국은 29.9%, 영국 19.6%, 독일 10.1%였다. 한국의 실질 은퇴 연령은 남자가 71.4세, 여자가 69.9세로 조사 대상국중 최고였다.

일하는 직장에서 퇴직은 평균 53세로 세계에서 가장 낮으면서도 생계 유지를 위해 노동 시장에 계속 잔류해야 하는 서글픈 현실이 수치로 나타난 것이다. 노후보장이 안 되어 있기 때문이다. 50대부터 재취업을 위한 체계적 훈련과 교육은 물론 국가와 사회가 관심을 가져야 함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서울이나 지방 할 것 없이, 남자나 여자 할 것 없이, 우리 사회의 최대 약자인 많은 노인들이 잇따라 쓰러지고 있다. 서울에서는 30여년을 홀로 살아온 70대 기초생활수급자 할머니가 “장례를 부탁한다”는 유서와 함께 현금 490만원을 남기고 자살했다. 부산에서는 혼자 살던 69세 남자가 숨진 지 6개월만에 미라 상태로 발견되기도 했다.

그런 노인에게 기초연금을 모두 주겠다는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대선 공약 이행을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9만 여원이던 기초노령연금을 폐지하고 65세 이상의 모든 노인에게 20만원씩의 기초연금을 주겠다는 약속을 지키라는 것이다. 재원도 문제지만 소득 구간별 차등지급도 문제다. 20만원이면 살 수 있을까.

이 추운 겨울에 따뜻한 양말 한 켤레 사 신지 않고, 먹고 싶은 과일 한 번 제대로 사먹지 않고 모아온 10만원. 한 달 꼬박 폐지를 모아봤자 3만원이 고작인 포항 채옥순 할머니(82)는 가진 자의 10억원보다 더 값진 10만원을 선뜻 장학금으로 기탁했다. 23살에 남편을 잃고 지금껏 홀로 사는 채 할머니는 정부가 기초수급생활자에게 주는 30만원 덕분에 끼니 굶지 않는 은혜를 이렇게 갚았다. 가진 사람, 배운 사람들을 부끄럽게 만드는 빈자일등의 실행이다.

대구의 김용만 할아버지(88)는 “부모없이 혼자 지내는 아이들을 도와달라”며 자신의 아파트 전세금 1천800만원을 대구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사후 기부키로 했다. 북한 함경북도가 고향인 김 할아버지는 9살 때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되어 떠돌이 생활을 하면서 혼자 살아왔다. 삼국지 몇 권을 쓰고도 남을 인생을 살아온 그는 폐지를 모아 생활하면서도 부모 없는 아이들을 위해 유산을 남겼다.

그들에게 번듯한 일자리는 필요없다. 어차피 돈이 목적은 아니니까. 그러나 그들에게도 인간처럼 살아갈 권리가 있다. 지금까지 한 고생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들에게 노후를 의미있게 보낼 수 있는 일자리를 만들어라. 인간은 빵 만으로 살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