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경우편집국장

올처럼 눈이 자주, 또 많이 내리는 겨울이면 일본 영화 러브레터 속 주인공 와타나베 히로코가 잘못 보낸 연애편지가 내게 올 듯 해 괜히 여러 연하장들을 이리 저리 훑어본다. “잘 지내세요? 나는 잘 지냅니다” 첫사랑처럼 새콤달콤하고 슬프면서도 아련한 그런 추억을 담은 편지. 새해 눈 속을 뚫고 생각도 않던 소식이 불쑥 찾아올 것 같은 그런 새해 아침이다. 비록 답장을 쓰기에는 너무 나이가 들어 버렸지만 그런 편지라면 원하지 않은 편지라도 괜찮겠다.

반가운 소식이 날아 들었다. 스마트폰 문자 메시지로 전하는 어느 선배의 아들 결혼 소식이다. 명절이면 손자 손녀를 데려와 한바탕 재롱을 피웠다는 친구의 자랑을 부러워하면서 정작 자기 아들은 도무지 결혼 말도 꺼내지 못하게 한다며 속상해 하던 선배였다. 그 소식을 인쇄물이 아닌 문자로 전해 받았다. 축하한다고, 먼저 문자로 답신을 보냈다.

연말연시. 크리스마스와 새해를, 또는 겨울을 축하한다는 연하장과 인사카드, 인사장들이 무차별 날아들고 있다. 그 중에서는 생각지도 않았던 사람으로부터 반갑게 받아보는 인사장도 있다. 그러나 얼굴도 모르고 영문도 모르는 사람들로부터 인사장을 받기도 한다. 참으로 대략난감이다.

육필 편지가 사라진 지 오래. 더러는 육필 흉내를 내서 인사장을 보내는 정치인들이 있기도 하다. 그러나 아무래도 꾹꾹 눌러 쓴 잉크의 향기가 나진 않는다. 그 내용도 천편일률이다. 그러나 인사장을 받으면 기분이 나쁘지는 않다. 그가 직접 썼든 또는 인쇄한 인사장에 아래 사람을 시켜 주소를 적어 보냈든 그들의 서명에서 적어도 인터넷 메일 이상의 정성을 느끼게 된다.

수많은 인쇄물 중 초대장도 그 중 하나다. 어떤 자리일까. 축하 자리라면 그냥 가서 자리를 메워주고 박수를 쳐주고 건배할 때 목청껏 `위하여`를 외쳐주면 되는 것인가. 또는 축의금을 준비해야 하는 것인가. 얼마가 적당한가. 아니, 초대장 주인과의 관계가 내가 시간과 축의금을 부담하고 시간을 투자해야 할 만큼 친밀한가. 결혼 초대장의 경우 더욱 그런 여러 가지를 따지게 만든다. 원하지 않더라도 보내주는 초대장에 대한 예의는 참으로 처신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그 많은 인사장 사이에서 펴 보지도 않고 쓰레기통으로 직행하는 각종 유인물들이 문제다. 때로는 광고 전단지처럼 봉투도 뜯기지 않은 채 폐지 수거함에 처박히는 신세가 되는 것이다. 각 기관의 메시지를 담은 전단지 사이에는 기업체나 조합, 단체의 이익을 대변하는 신문, 사보, 회지 등도 포함돼 있다.

인터넷상에서 수신인이 원하지도 않고 필요하지도 않는 광고나 특정 정보를 일방적으로 대량 내보내는 것이 스팸메일이다. 인터넷의 스팸메일이야 차단하는 방법도 있고 또 휴지통에 쏟아버리면 그만이다. 그러나 오프라인으로 전달돼 오는 초대장이나 인쇄물은 그렇게 간단히 처리할 수가 없다. 더구나 인쇄 매체에 종사하는 필자로서 그들의 노고를 생각해서 봉투를 뜯어 그들의 아우성을 들어주는 척이라도 해주고 싶어서 열어보기는 한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제 18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어제 현판식을 갖고 정식 출범했다. 박 당선인의 인수위원 선정으로 좋은 소식을 기대했던 많은 사람들이 실망을 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 청와대와 정부 각료를 비롯, 새정부 출범과 함께 수많은 자리들이 새로운 사람들을 찾고 있으니 실망하지 말고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 볼 일이다.

연말연시. 무차별 날아드는 인사장, 초대장, 소식지들. 남에게 아무 도움도 되지 못하는 스팸메일처럼, 뜯어보지도 않고 휴지통으로 들어가는 광고 전단지 같은 글이 하나의 공해로까지 치부되기도 한다. 적어도 내가 쓰는 글이 다른 사람에게는 또 다른 스팸이 되지 말아야겠다는 다짐 같은 걸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