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의 나라` 그리스 기행
⑧에피다우로스 의료센터와 대극장

▲ 폴리크레이토스(Polycleitos)가 설계한 대형극장.

언제부턴가 가로등이 켜진 것처럼 몸과 마음의 치유를 뜻하는 `힐링(healing)`이란 말이 사회 곳곳에서 반짝인다.

힐림 캠프, 힐링 화장품, 힐링 명상, 힐링 오락…. 정치에도 `힐링`자를 붙여 힐링 정치란 말까지 사용한다. 어찌보면 우리 사회는 지금 몸과 마음의 치유를 받아야 할 중증 환자들이 수두룩한지 모른다.

일찍이 힐링의 명소로 수많은 환자들이 모였던 곳이 있다. 1988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그리스 `에피다우로스(Epidauros)`다. 에피다우로스는 그리스 아르고리스 지방의 살로니카 만 가까이 있는 고대 도시다. 아라네오(Arahneo) 산기슭 송림 숲에 자리잡은 이곳은 건강과 치료의 신인 아스클레피오스(Asclepios)가 있었던 성역이다.

그 성역 산비탈엔 그야말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대형 극장이 있는데 현재도 각종 공연이 진행되고 있다. 에피다우로스에 들어서며 우린 대형 극장보다 아스클레피오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 에피다우로스 치료소 아바톤.

소크라테스의 제자 플라톤의 저서 「소크라테스의 변명」엔 `파이돈`이란 부분이 있다. 소크라테스의 심오한 철학과 최후의 모습이 담겨져 있는 책이다. 영혼 불멸을 믿은 소크라테스는 독배를 마시기 전 친구 크리톤에게 “크리톤, 나는 아스클레피오스에게 닭 한 마리를 빚졌다네. 꼭 갚아주게”라고 말한다.
 

▲ 에피다우로스 유적지.

영혼 불멸을 죽음으로 증명해 보려 한 소크라테스가 한 말 속에 `아스클레피오스`가 등장한다. 닭은 당시 아스클레피오스에게 치유의 감사로 바치는 제물이다.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쓴 히포크라테스의 조상이 아스클레피오스라고 한다.

아스클레피오스 출생과 죽음에 따른 신화를 잠시 소개하면 이렇다.

플레귀아스 왕에겐 딸 코로니스가 있었다. 그는 아르카디아의 왕자 이스키스라는 남자와 약혼했다. 그런데 태양의 신 아폴론을 만나자마자 아폴론에 반해 그의 아이까지 임신하게 된다. 아폴론의 아이를 임신한 코로니스는 그 사실을 숨기고 이스키스와 결혼한다. 아폴론의 심부름꾼 까마귀는 코로니스의 결혼 사실을 아폴론에게 일러 바쳤다. 화가 난 아폴론은 코로니스를 활을 쏴 죽인다. 아폴론은 코로니스를 죽인 것을 후회하며 까마귀를 향해 `네놈 때문에 코로니스를 죽였어`라며 흰색의 까마귀를 검은 색으로 둔갑시켰다. 죽은 코로니스를 화장하려 장작 위에 올려놓았는데 그의 배에서 아기가 꿈틀대는 것이었다. 이 아이가 바로 아스클레피오스다. 총명한 아스클레피오스는 켄타우로스의 박학다식한 `케이론`에게 생로병사의 열쇠를 배워 죽은 자까지 살리는 능력을 갖게 된다. 지상 세계에 사는 사람들이 아스클레피오스의 치료로 죽지 않자 지하의 신 `하데스`는 제우스를 찾아가 아스클레피오스의 치료 행위를 중지하도록 요청한다. 사람이 죽지 않는 일은 자연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일이라 여긴 제우스는 벼락으로 아스클레피오스도 죽인다.
 

▲ 뱀이 지팡이를 감고 있는 아스클레피오스 조각품.

아는 대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주차장에 도착했을 때였다. 막 도착한 버스에서 내린 학생들이 개량한복을 입고 있는 내게 달려온다. “우리랑 사진 한 장 찍어요.” 얼떨결에 나를 포함한 우리 일행은 학생들과 사진을 찍었다. 영국에서 수학여행 온 학생들이다. 웃옷을 벗고, 포즈도 가지각색이다. 자유분방한 모습이 젊은이 특유의 모습이라 보기 좋다. 한 바탕 웃음이 공간을 가득 채운다.
 

▲ 수학여행 온 영국 학생들과 기념촬영.

표를 끊고 처음으로 찾은 곳은 실내 박물관이었다. 박물관은 의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 성역에서 출토된 많은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아스클레피오스 성역에서 나온 대리석 조각상, 청동 의료기구, 그리스와 로마 조각물, 도리아식 열주, 아르테미스 돌림띠, 톨로스 기둥머리, 천장의 꽃, 아스클레피오스 석고 조각상. 뱀이 지팡이를 감고 있는 아스클레피오스 조각 등을 전시한다.

박물관을 구경한 우린 노천박물관으로 향했다. 넓은 유적지를 관람할 수 있도록 길을 만들었다. 유적지 사이사이 곳곳에 자란 소나무 가지가 푸른 그늘을 만든다. 지금은 허물어졌지만 길은 유물 유적과 이어져 있다. 많은 환자들이 머물 수 있는 병실(카타고제이온, Katagogeion)을 지나 온천 터도 거쳐 아스클레피오스의 축제를 연 오데이온(Odeion)과 연회장을 지난다.

천천히 걷다가 스타디움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소나무 그늘에 들어가 주변을 살핀다. 무엇이 이렇게 폐허로 만들었을까? 지진과 기독교 전파 그리고 무관심이다. 넓은 스타디움은 제일 낮은 곳에 조성해 놓았다. 그곳에선 운동을 통해 건강한 육체를 만들게 하였을 것이다. 서남쪽에 자리잡은 톨로스는 기원전 360~320년 사이 폴리클레이토스(Polycleitos the Younger)가 둥근 형태로 지은 것이다. 건물의 용도는 불확실하다. 당시 올린 기둥 몇 개 남아 있는데 코린트 양식의 대표적 건물이다.
 

▲ 에피다우로스 스타디움.

북쪽으로 아바톤(Abaton)이 있다. 아바톤은 치료소다. 실내박물관에서 본 각종 수술도구들을 사용했던 곳이다. 수술뿐만 아니라 정신치료에도 큰 비중을 두었다. 환자를 몽롱한 상태로 만드는 환각체험을 통해 치유하기도 하였다. 동쪽에는 이집트 신들의 영역도 있다. 당시 이집트와의 교역을 엿볼 수 있는 곳이다.

이 모든 시설들이 오늘 우리가 접하는 힐링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죽음을 앞둔 수많은 환자들의 발길이 끊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허물어진 유적을 둘러본 후 대극장으로 향하며 화장실에 들렀다. 화장실 거울 앞에 활짝 핀 유도화를 꽃병에 꽂아놓았다. 그 자체가 청량감을 준다. 바라보는 것 자체가 힐링이다.

대극장으로 향하며 우리들은 가곡 한 곡을 떠올리고 있었다. 대극장 무대에서 가곡을 부르기로 했기 때문이다. 6년 전 터키의 에페소 대극장에서였다. 객석에 앉아 있을 때 성악을 전공한 사람의 노래를 들을 수 있었다. 종종 그 장면이 멋진 추억으로 떠오른다. 가곡을 떠올려보지만 생각나는 게 없다. 오랜 시간 가요에 젖어 가곡을 부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애국가라면 어떠랴, 아리랑이면 또 어떠랴. 하지만 그래도….

지중해 고대 도시를 여행하다 보면 대형 극장을 종종 만나게 된다. 극장은 연극뿐만 아니라 무용, 음악, 시와 같은 것을 통해 많은 시민들과 의견을 나눌 수 있는 역할을 했다. 에피다우로스의 야외극장도 마찬가지다. 산비탈을 이용해 만든 야외극장은 이곳 톨로스를 건축한 젊은 건축가 폴리크레이토스(Polycleitos)가 설계했으며, 기원전 4세기 말엽에서 기원전 2세기 중반에 걸쳐 지어졌다. 오랜 세월 흙더미에 묻혀 있던 것을 1881년 발굴하고, 1954년부터 1963년까지 원형 그대로 복원했다. 특히 이곳의 음향 효과는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무대 중앙 원형 돌(지름 20m)에 동전을 던지면 그 소리가 공명되어 제일 상석(위쪽)까지 고스란히 전달된다는 것이다. 원형 무대를 중심으로 펼친 부채 모양인데 객석은 55계단이며 수용인원은 1만4천여 명이다.

평민석은 흰 석회암, 귀족석은 붉은 석회암으로 구분하였다. 요즘도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공연하고 있는데 우리 일정하고는 맞지 않아 관람할 수 없어 아쉬웠다. 극장에 들어선 우리 일행은 드문드문 관광객이 앉아 있는 객석을 향해 가곡 `동무생각`을 불렀다.
 

▲ 실내박물관에 전시된 기원전에 사용한 수술도구.

`봄의 교향악이 울려퍼지는 청라언덕 위에…`

그 소리가 계단 한칸한칸 물결처럼 퍼졌다. 노래가 끝나자 객석의 외국인들이 박수친다. 멋진 순간이다. 손을 흔들어 답례한 후 찬찬히 계단을 밟고 올라 극장을 한 바퀴 둘러본다. 누군가 동전을 무대 중앙에 떨어뜨렸는지 동전 구르는 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이 모든 것들이 힐링이다. 힐링(Healing)!

<계속>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