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공은 줄이고 신선함은 살린 투박함을 먹다

▲ 동해안의 음식문화는 꽁치를 해풍에 얼말린 과메기가 상징하듯 신선한 재료를 자연스럽게 최소한의 정도로 가공해 그 특성을 살린 투박함이 특징이다.

사람은 자신이 먹는 음식의 영향을 받는다. 물론 심성에 따라 음식을 선택하는 이치를 보면 식성과 성격의 상관관계는 닭이 먼저인지, 알이 먼저인지를 따지기 어려운 것과 같다. 경북동해안은 지리적으로 내륙과 바다가 조화된 곳이다. 따라서 그 먹을 거리도 농임수산물이 그 종류와 양에서 풍부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조리법은 다양한 재료의 특징과 신선함을 살리기 위해 가공은 최소화하는 공통점을 확인할 수 있다. 경북동해안 토속 음식의 정체성인 질박함의 배경에는 수행과 절제를 중요시하는 불교의 음식관, 음식에 초연하고 체면을 중요시한 유교의 전통이 가미돼 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한술 퍼뜩 뜨고 노동에 나서야`하는 변방 민중들의 곤궁한 삶과 단순투박한 영남인의 기질이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글 싣는 순서
<4부=역동적 삶의 터전, 경북동해안>
21) 모여서 되찾는 삶의 의욕- 민속
22) 바다로 달려간 밥상- 음식
23) 구비 마다 세겨진 인물 이야기
24) 부활하는 연오랑 세오녀
25) 변방의 부활은 창대할지니- 에필로그

□ 궁벽한 벽지의 음식들

`승정원일기`에는 인조 3년(1625) 8월 18일 조에 가난한 백성을 위해 세금을 거두어 보내지 않고 스스로 조정으로 부터 문책 받기를 자처하는 장기 수령의 기록이 실려 있다. 백성이 먹고 살기에도 어려운 현실을 파악한 장기현감이 왕실 몫으로 배당된 어전, 지금의 정치망에 부여된 어전세 징수를 포기하자 관청이 문책을 요구하며 계(啓)를 올린 것이다.

앞서 세종 27년(1445) 10월에는 장기 일대에 유례 없는 흉년이 들어 곡식을 수확할 수 없었다. 보다 못한 경상도 관찰사 이계린이 세금을 감해달라는 상소를 올렸으나 왕이 답(회보)하지 않았다는 의외의 기록이 나온다.

이처럼 자연재해와 수탈의 시련 속에 피폐할 대로 피폐한 변방 민중들의 삶은 다산 정약용이 1801년 첫 유배지 장기에서 지은 `기성잡시` 27수에도 잘 묘사돼 있다.

`새로 짠 생선기름 온 집안이 비린 냄새/ 들깨도 안 심는데 참깨가 있을쏜가/ 김 무침 접시에선 머리카락 끌려나오고 / 가마솥에 지은 돌벼밥 모래가 있네 그려`.

 

▲ 각종 생선을 사용한 밥식혜는 이북에서 남하한 전통 발효식품으로 동해안 전반에 분포해 있지만 포항에서는 10~20여년 전까지도 고추가루를 뺀 흰 밥식혜가 많이 담가졌다.

□ 포항 물회와 과메기, 밥식혜

이제는 고급음식이지만 물회는 거친 바다에 붙박혀 살아야 하는 가난한 어민들의 음식이었다. 이른 새벽 그물을 걷는 힘겨운 노동에 시달린 어부의 헛헛한 속은 집에서 챙겨온 고추장에 막잡은 생선회를 버물려 물에 말아 삼키지 않으면 감당하기란 어려웠다.

물횟감의 생선은 원래 도다리처럼 양념이 잘 배어드는 것이 선호되므로 요즘 자주 등장하는 오징어는 제격이라고 볼 수 없다. 양념도 원형질의 포항물회라면 차라리 배를 안 넣을 지라도 첫술에 정수리가 찡할 만큼 맵디매운 고추장이 빠져서는 안 된다. 최근 몇년간 포항시가 인증해 개점한 서울지역 회식당의 포항물회는 도시 사람들의 미각에 맞춰 개량한 조리법이다. 오랜만에 고향의 맛을 볼겸 이곳을 찾은 포항 출향인들이 `맹탕`이라고 발길을 돌리는 것은 이 때문이다. 물론 포항 현지에서 물회를 맛본 외지의 초심자들은 위장을 찌르는 듯한 강렬한 맛에 몸서리를 치지 않을 수 없다.

포항에서 전국, 아니 세계로 뻗어나간 향토음식의 대표는 단연 과메기다. 이제는 `관목어`라는 어원의 유례, 꽁치 이전에 청어를 썼다는 이력, 맛 있게 즐기는 법 따위는 너무 알려져 특별히 언급할 필요가 없게 됐다. 단지 문헌 상의 기록 정도가 아직은 덜 알려져 있어 소개해본다.

`영일만의 토속식품 중 조선시대 진상품으로 선정된 식품은 영일과 장기 등 두 곳에서만 생산된 천연가공의 관목청어뿐이다.`<경상도읍지(1832년), 영남읍지(1871년)>

`매년 겨울이면 청어가 맨 먼저 주진(注津, 영일만 하구)에서 잡힌다고 하는데 먼저 이를 나라에 진헌한 다음에야 모든 읍에서 고기잡이를 시작했다. 잡히는 것이 많고 적음으로 그해의 풍흉을 짐작했다.`<동국여지승람 영일현 편>

`청어는 연기에 그을려 부패를 방지하는데 이를 연관목(煙貫目)이라 한다.`<이규경(1788-?)의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

`말린 고기를 오래 두려면 연기를 띄어 말리면 고기에 벌레가 안 난다.`<음식디미방(1670년경)> `비웃 말린 것을 세상에서 흔히들 관목이라 하니 잘못 부름이요, 정작 관목은 비웃(청어)을 들어 보아 두 눈이 서로 통하여 말갛게 마주 비치는 것을 말려 쓰며 그 맛이 기이하다.`<규합총서(閨閤叢書,1815년)> 이들 음식 외에 동해안 지방의 겨울철 대표 음식인 밥식혜도 빠트릴 수 없다.

주로 흰살 생선인 홑데기(횟대), 아지(전갱이), 오징어, 가자미 등을 재료로 하며 토막낸 고기에 찹쌀과 무, 배, 고춧가루를 버무려 항아리에 넣고 며칠 푹 삭혀 먹는 음식이다. 원래 이북에서 남하한 음식으로 전해지며 포항에는 10~20년 전 까지도 고추가루를 뺀 흰 밥식혜가 담가져 주로 명절이나 제사상에 올랐으나 요즘은 찾아보기 어렵게 됐다.

 

▲ 대게는 경북 동해안 곳곳에서 생산되는 지역 전체의 특산물이지만 특히 영덕군이 상징으로서 적극 홍보하며 다양한 요리법이 개발돼 있다.

□ 영덕의 대게와 은어, 꽁치젓

포항이 전국적으로 최대산지이지만 영덕의 대표 특산물은 역시 대게이다. 찜과 탕으로 주로 조리해 먹으며 회는 물론 겨울철 제철에는 다리살의 껍질을 갈라 기름장을 발라 굽기도 한다.

또 오십천과 영해 송천(松川)의 은어는 명물로서 조선시대에 진상했으며 요즘 들어 훈제가공돼 유통되기도 한다.

어촌에서는 조석찬으로 잔생선이 상용화 돼 농촌에 비하면 단백질 자원이 풍부하다. 대게 생선을 날 것으로 한 회와 간장, 막장, 고추장 등에 지진 지짐요리 등이 보통이고 젓을 담아 쓰기도 한다. 재료는 멸치 보다 꽁치젓을 많이 쓴다. 또 꽁치를 삶거나 쪄서 걸러 채소와 함께 끓인 `집을 풀어 끓인 국`은 별미이다. 일상식으로는 노물리 등 어촌에서 장국을 끓이다 날김을 넣고 끓인 생김국이 유명하다.

나물류 가운데 도라지와 부추, 고비와 무나물 등은 일상적 반찬이며 어촌에서는 생미역과 파래, 청각 등 나물을 상용한다. 청각은 삶거나 날 것으로 마늘, 고추가루, 기름, 장에 무쳐 먹는데 건조하면 저장성이 좋아 날이 흐릴 경우 하루 이틀 땅에 묻어두면 푸른색이 유지되고 잘 상하지 않는다.

장류 가운데 등계(겨)장은 시금장 또는 겨장이라고도 한다. 보리를 찧을 때 나오는 고운 속가루(속겨)를 익반죽하여 김을 올려 찐 다음 뭉쳐 불에 굽는다.

한반도 전역에 분포하는 젓갈은 영덕에서는 꽁치젓과 오징어젓 외에도 대구알 식혜, 백합젓, 방어젓, 광어젓, 갈치젓, 조기젓 등을 담가 저장하고 생굴은 소금에만 절이며 고춧가루를 넣는 어리굴젓은 이 지역에서는 드물다. 새우젓도 마찬가지며 노물리 등에서는 성게젓도 유명하다.

□ `대두박`, `꾹죽`으로 견딘 울진

산이 깊은 울진의 밥류는 주로 보리와 조가 차지했으며 감자와 고구마를 섞어먹는 범벅류도 흔했다. 대두박은 주로 민가에서 해먹었으며 콩기름을 짠 나머지 찌꺼기를 밀기울과 함께 끓여 먹던 밥이다. 공출이 심했던 30년 이후 일제강점기를 견딜 수 있었던 열악한 음식으로 기억되고 있다. 꾹죽은 민가에서 가장 널리 분포됐던 주식의 하나로 쌀이나 보리에 씨래기와 된장, 멸치 등을 넣어 푹 끓여 주로 어촌에서 흔했다.

울진에서는 양념간장을 `뀌미`라 하는데 집간장에 고춧가루, 깨볶음, 파, 고추, 마늘 등을 섞어 칼국수의 간을 맞춘다. `찌지개`라 부르는 찌게는 주로 꽁치, 고등어, 가자미 등을 선호하며 영덕과 비슷하게 고등어와 꽁치를 토란, 고사리와 함께 끓여 고춧가루, 간장으로 간을 맞추는 생선장국인 `고등어(꽁치) 느리미`도 유명하다.

젓갈류 가운데 명태 아가미를 재료로 `순태기 식혜`를 만들기도 했다.

울진은 이밖에 태백산맥과 연접한 특성으로 인해 송이버섯 등 임산물을 활용한 특산물과 향토음식도 유명하다.

□ 특별취재팀 = 임재현, 정철화, 이용선(이상 본사 기자), 김용우 향토사학가, 장정남 한빛문화재연구원 전문위원.

/임재현기자 imjh@kbmaeil.com

 

관련기사

저작권자 © 경북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