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 당기고 발 구르며 다지는 삶의 공동체

▲ 포항 송라면 구진마을의 `앉은 줄다리기`는 풍요와 다산을 기원하는 민속놀이다.

민속의 사전적 의미는 민중에 의해 역사적으로 전승되어 온 유·무형의 전통적, 보편적 문화를 뜻한다. 따라서 경북동해안의 민속은 해양과 내륙이 만나는 지리적 특성 상 주민들이 주로 종사하는 반농반어(半農半漁)의 노동과 관련된 내용들이 풍부하다. 민속놀이에 주로 줄다리기 종류가 풍부한 것은 다른 지역과 크게 다를 바가 없지만 월월이청청은 남해안의 강강술래와 비견되는 경북동해안의 독특한 군무(群舞)로서 전승되고 있다. 민속신앙은 동제와 별신제, 기우제 등이 주를 이루는데 날씨에 목숨이 좌우되는 바다 일의 특성 상 샤머니즘도 큰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어떤 양식이 됐든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한바탕 어울어져 펼치는 놀이 속에서 공동체의 결속은 다져지고 삶의 애환도 삭혀졌다.

글 싣는 순서
<4부=역동적 삶의 터전, 경북동해안>
21) 모여서 되찾는 삶의 의욕- 민속
22) 바다로 달려간 밥상- 음식
23) 구비 마다 세겨진 인물 이야기
24) 부활하는 연오랑 세오녀
25) 변방의 부활은 창대할지니- 에필로그


□많고 많은 줄다리기

예로 부터 우리 지역에 전해지는 민속놀이에는 가마싸움, 각시놀이, 고누, 그네뛰기, 깨금발싸움, 꼬리잡기, 낫치기, 널뛰기, 눈놀이, 달맞이, 닭싸움, 돈치기, 돌치기, 두꺼비집짓기, 딱지치기, 땅재먹기, 말타기, 목침찾기놀이, 방아개비놀이, 봉사놀이, 새쫓는놀이, 성냥개비싸움, 소꿉놀이, 소싸움, 수건돌리기, 숨바꼭질, 팽이치기, 풀각시, 풀장난, 버들피리불기, 화전놀이, 화투놀이 등 종류가 많았다. 하지만 이러한 전통놀이는 장치기나 줄다리기, 월월이청청 등과 같이 일제 침략기에 탄압을 받아 전승이 단절된 것이 많았다. 또 용케 살아남은 것들도 1970년대 이후 생활양식의 변화로 인해 연날리기, 윷놀이, 제기차기 등 일부를 제외하면 거의 소멸된 상태다. 대신 고무줄놀이, 줄넘기, 술래잡기, 공기놀이 등 일제침략기에 들어와 정착한 것들도 상당 수가 있다.

경북동해안의 민속놀이는 특정한 시기에 집중적으로 벌어지는 계절성과 내륙과 해안 마을이 차이를 보이는 지역성이 있고, 음악과 무용의 요소가 가미돼 예술적 경지에 이른 놀이가 많다는 점이 특징이다. 또 해안지방을 중심으로 여성들의 놀이가 발달된 점도 특징의 하나다.

이 가운데 모포줄다리기는 남구 장기면 모포2리(칠전마을)에 전승되던 것이 이제 포항을 대표하는 민속놀이로 자리잡았다. 원래 매년 추석날 뇌성산 밑에 있는 밭에서 열리다가 근래 들어 바닷가 백사장으로 옮겼으며 인구가 줄어든 요즈음 들어 큰길에서 열리고 있다. 민속적 가치 때문에 1984년 중요민속자료 제187호로 지정된 모포리의 줄, 일명 칠전 큰줄은 수백년 전부터 당겨 왔을 것으로 추정된다. 놀이의 유래가 된 장기현감의 현몽 일인 음력 8월 16일에 행해지다가 1982년 이후 사람들이 귀향해 많이 모이는 추석 명절인 8월 15일로 변경됐다.

보통 볏짚으로 만드는 줄과 달리 모포줄은 짚에다 칡넝쿨, 구피나무 껍질을 섞고 많은 사람들이 힘 주어 당겨도 끊어지지 않도록 동아줄을 여럿 합쳐 완성품에 사람이 앉으면 발이 땅에 닿지 않을 만큼 굵고, 길이도 하나가 50여m에 이른다. 또 모포줄은 동민의 신앙의 대상이어서 신체(神體)로서 동제당에 보관되며 흔히 암줄을 할매, 수줄을 할배라 하는데 줄을 당기는 8월 보름에는 여기에 줄제라는 제사를 지낸다. 특이한 것은 동쪽이 암줄, 서쪽이 수줄인데 동쪽은 바다 쪽이 되며, 서쪽은 내륙 쪽이 된다. 그래서 암줄인 동부(바다)와 수줄인 서부(육지)가 대결하는데 줄다리기는 암줄과 수줄을 연결시켜야 시작할 수 있다.

북구 송라면 화진리 구진마을에는 매년 정월 대보름에 앉은 줄당기기 또는 기줄당기기라고 부르는 줄다리기가 펼쳐진다. 암줄과 수줄이 각각 네 가닥으로 돼 좌우의 다리가 네개인 `기`(게의 사투리)를 닮았다고 해 `기줄당기기`라고도 하며 흔히 `동네 할뱃줄`이라고도 부른다. 옛날 이 마을에 2~3년 마다 별신굿을 해왔는데 어느 해에 굿을 하던 무당이 굿판에서 급사하는 사고가 발생했다고 한다. 이를 불길하게 여긴 마을사람들이 점을 보러 갔는데 앞으로 별신굿을 말고 보름날 줄을 당기되 여자들만 해야 한다고 해서 지금까지 그대로 따르고 있다.

이 놀이의 특징은 줄이 게의 형태이므로 게의 붉은 색과 날카로운 발이 귀신을 쫓고 무수한 알은 다산의 상징으로 인식되므로 풍요와 다산, 척사(斥邪)를 기원하는 행위로 볼 수 있다.

삼척이나 울진, 밀양에도 게줄다리기라는 이름의 줄다리기가 있으나 구진마을과는 조금 다르며 특히 앉아서 당기는 예는 전국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다. 두 편으로 나눈 줄을 잇는 도구인 고를 남자의 성기에 비유한다면 줄다리기에서 여성들이 고를 줄에 끼우는 것은 성행위에 비유된다. 여자들은 이 고를 쟁취하기 위해 힘을 겨루는데 앉아서 하는 줄다리기는 성행위의 상징으로 추측된다.

이긴 편이 고를 메고 마을을 돌며 춤을 추는 것은 억눌려 왔던 여성의 성적 감정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행위로 분석되기도 한다.

울진에서는 월송큰줄댕기기와 죽변 후정 기줄댕기기, 평해 직산 기줄댕기기가 대표적이며 평해 월송마을과 후정리의 경우 큰줄이 행해지기 전에 아이들의 `애기줄``골목줄`이 벌어진다.

□일제가 탄압한 월월이청청

월월이청청은 영덕을 중심으로 남으로는 포항, 북으로는 울진 후포읍까지 분포됐으며 1930년대까지는 성행했으나 일제 말기에 거의 중단됐다. 남해안의 강강술래와 같이 정월 보름날이나 팔월 한가위 달밤에 부녀자들이 하는 집단 군무이다. 포항에서는 청하면과 흥해읍, 동해면 등 해안마을에서 주로 이뤄졌다. 발생시기는 기록이 없어 정확한 추정이 불가능하나 수백년 전일 것으로 짐작된다.

노래는 선창자가 `달아달아 밝은 달아`하고 앞소리를 매기면 후창자가 `월월이청청`하고 후렴을 받는 식으로 진행된다. 1970년대부터 21세기가 시작된 무렵까지의 우리 시단에서 최고의 민중시인으로 꼽히는 신경림 시인의 시집에 실린 `달넘세`는 동해안에 전승돼 온 민속놀이에 대한 취재를 바탕으로 창작된 것이다.

`넘어가세 넘어가세 논둑밭둑 넘어가세/ 드난살이 모진 설움 조롱박에 주워담고/ 아픔 깊어지거들랑 어깨춤 더 흥겹게/ 넘어가세 넘어가세 얽히고설킨 인연/ 명주 끊듯 끊어내고 새 세월 새 세상엔 새 인연이 있으리니/ 넘어가세 넘어가세 언덕 다시 넘어가세/어르고 으르는 말 귓전으로 넘겨치고/으깨지고 깨어진 손 서로 끌고 잡고 가세/ 넘어가세 넘어가세 크고 큰 산 넘어가세/ 버릴 것은 버리고 챙길 것은 챙기고/ 디딜 것은 디디고 밟을 것은 밟으면서/ 넘어가세 넘어가세 세상 끝까지 넘어가세`

 

▲ 동해별신굿의 명인이며 가장 독특하며 특출한 즉흥연주의 대가로 손꼽힌 김석출 옹의 생전 모습.

□ 동해안 전역에 걸친 별신제

별신제는 동해안과 남해안 지역에서 무당이 굿거리로 행하는 마을제사를 말한다.

이 별신제를 사제하는 무당은 마을과 혈연이나 지연적으로 무관하며 전문적인 직업무들이다. `별신`이라는 이름의 제의(祭儀)는 안동시 하회마을 같은 일부 내륙지방에서도 행해지고 있지만 풍어기원제로서의 별제는 동해안과 남해안의 별신제를 한정하는 이름이다.

현재 동해안에서 볼 수 있는 별신제는 사실상 별신굿이다. 근래에 와서 풍어제라는 명칭이 붙으면서 어촌의 풍어기원제로서의 성격을 강하게 띠고 있다.

동해안 지역서는 위로 강원도 거진에서 부터 아래로 부산 동래에 이르기까지 마을에 따라 3~10년 간격으로 행해진다. 1980년대 이전까지의 별신제는 계파가 다른 김석출(2005년 작고)과 김영달이 양대 산맥을 이루면서 활동했으나 김영달이 무업을 중단해 중요무형문화재 82호 기능보유자였던 김석출이 주류를 이뤘다.

이후 그 계파인 신석남, 이금옥, 송동숙 등이 별도의 사제집단을 이뤄 주제(主祭)하기도 한다.

포항에서는 장기면 신창리 죽하마을, 청하면 이가리 등 20여개의 어촌마을에서 3~10년 간격으로 별신제를 지낸다. 울진군의 대표적 무속은 별신굿과 오구굿을 들 수 있다. 직산2리 직고동의 별신굿은 10년마다 열리는 풍어제이다.

□ 특별취재팀 = 임재현, 정철화, 이용선(이상 본사 기자), 김용우 향토사학가, 장정남 한빛문화재연구원 전문위원.

/임재현기자 imjh@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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