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의 나라` 그리스 기행
⑤피니오스강과 영화 `300`의 테르모필레

▲ 테르모필레 전투 기념비의 레오니다스왕.

늦은 점심을 오후 3시 넘어 칼람바카(Kalambaka)에서 3대째 영업하고 있는 `레스토랑 메테오라`에서 먹었다. 뷔페였다. 대형 솥 12개에 다양한 음식을 푸짐하게 제공하였다. 대를 이어 하는 식당답게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손님은 많았다. 배부르게 점심을 먹은 난 칼람바카 마을을 벗어나기 전 성스테파누스 수도원을 되돌아봤다. 우뚝! 수도원을 끌어안은 메테오라 바위가 성인(聖人)처럼 우리를 향해 손 흔든다.
`바이바이! 여행객이여 은총이 가득하길!`
얼마쯤 달리자 길옆으로 강 하나가 긴 꼬리를 잇는다. `피니오스`강이다.

 

▲ 무명용사비.

피니오스 강은 아폴론과 다프네에 얽힌 신화가 흐르는 강이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사랑의 여신 에로스는 금화살을 아폴론의 어깨에 맞추고, 첫눈에 만나는 여성을 사랑하게 만든다. 그 사랑의 상대가 다프네다. 반면에 다프네는 에로스의 은화살을 맞게 되는데 그것에 꽂히면 첫눈에 띄는 사람을 영원히 미워할 수밖에 없다. 애증의 역학관계에 아폴론과 다프네는 쫓고 쫓기게 된다. 아폴론이 시도 때도 없이 쫓아오자 결국 다프네는 아버지의 도움으로 월계수란 나무로 변한다. 아폴론은 그 가지로 전차경기의 우승자에게 월계관을 씌워주었다는 신화다.

피니오스 강은 테살리아 평야를 가로지른다. 해 뜨고 지는 풍경을 지평선 끝으로 볼 수 있는 평야다. 테살리아는 그리스 13개 주 가운데 한 주로 중심지는 라리사市다. 이곳에선 밀, 옥수수, 목화, 채소 등 많은 식물을 재배한다. 우리가 달리는 도로는 평야 가운데로 뚫려있다. 한여름 땡볕 가뭄에도 식물들은 무성하고 푸르다. 이동 중 멀리 피니오스 강을 바라볼 수 있는 휴게소에 들렀다. 휴게소에선 테살리아 평야에서 생산한 농작물과 꿀, 약초를 팔았다. 원탁의 자리에 앉아 차를 마시자 서비스로 시원한 수박을 준다. 수박 맛이 그렇게 시원할 수 없다. 단 것이 입에서 살살 녹는다. 그것 역시 피니오스 강이 흐르는 테살리아 평야에서 생산한 것이다.
 

▲ 테살리아 평야를 가로지르는 피니오스강.

다시 출발한 승용차가 오랜 시간 달리다 들른 곳은 테르모필레(Thermopylae) 온천이었다. 테르모필레의 테르모(thermo)는 온도계(thermometer)의 앞 글자에서 보듯 `뜨겁다`를 의미하고, 필레(pylae)는 문(gate)을 뜻한다. 자연 온천 특유의 유황냄새가 코를 찌른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온천으로 갔다. 노천온천이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따뜻한 웅덩이에 몸을 담그고 있다. 대부분 나이 지긋한 사람들이다. 우린 양말을 벗고 흐르는 물에 발을 담갔다. 거짓말처럼 쌓였던 피로가 풀린다. 이 물줄기는 까마득한 옛날부터 흘러내린 물줄기다. 우리처럼 발만 담그고 있는 그리스 사람이 우리를 향해

“어느 나라에서 왔어요.”

“코리아”

“코리아! 삼성! 가고 싶은 나라죠. ……이곳을 종종 찾는데 온천욕을 하면 기분이 좋죠. 일광욕을 함께 할 수 있어 해수욕만큼 좋죠.”

`삼성`이란 말보다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의 기업 `포스코`란 말을 들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 그 분은 아미아(Amia)에 산다고 했다. 온천에서 북쪽으로 좀 떨어져 있는 마을이란다.

입장료도 없다. 그냥 노천 온천 밖에서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들어가면 된다. 족욕을 즐긴 난 물이 나오는 원천지를 구경할 겸 상류로 올라가는데 현지인이 막는다. 위락시설을 만들고 있기 때문에 위험하단다. 온천으로 들어가는 길가에는 캠핑투어장도 보인다. 온천은 큰 도로에서 가깝기 때문에 운전하는 사람들이 피로를 풀겸 잠시 들러 쉬었다 가기도 한다.
 

▲ 테르모필레 노천온천.

노천온천에서 휴식을 취한 우린 그곳과 가까운 테르모필레 전투 기념비로 옮겼다. 테르모필레는 지명의 상징에서 보듯 역사적으로 중요한 장소다. 아테네로 들어가는 길목으로 동편은 바다, 서편은 높은 산으로 영화 `300(삼백)`의 스토리가 된, 세계사에서 빠져서는 안 될 역사적 사건이 있었던 천혜의 요새다.

기념비 광장에 도착했을 때 일광 형 형수가 말한다.

“잭 스나이더 감독의 영화 `삼백` 개봉할 때 봤어요. 그 배경이 이곳이라니?”

넓은 공터 뒤쪽으로 20여 미터 울타리 대리석 기단을 쌓고, 가운데 부분에 흰 대리석을 높인 다음 그 위 긴 창을 들고 있는 청동 인물을 올렸다. 청동 인물은 테르모필레 전투에서 조국 그리스를 위해 목숨 바친 `레오니다스(Leonidas)`왕이다. 그 밑 양편으로는 당시의 치열했던 전투장면도 부조로 새겼다.

기원전 481년 페르시아의 크세르크세스 왕은 엄청난 대군(역사가 헤로도토스는 264만1천명의 병사라 함, 어느 책은 170만명, 현대의 학자는 30만명 정도로 추정)을 끌고 그리스를 침공했다. 바로 3차 페르시아 전투다.

대군 앞의 그리스 연합군은 풍전등화였다. 이때 레오니다스 왕은 스파르타 정예병 300명, 노예병 7천명을 이곳에 남기고 나머지 아테네 연합군을 철수시켰다. 페르시아의 대왕 `크세르크세스(=아하수에로)`는 `레오니다스`에게 무기를 버리고 항복하라고 했다.

레오니다스는 대꾸했다.

`와서 가져가라.`

테르모필레 전투 기념비 레오니다스 동상 밑에는 당시 그가 말했던 말이 두 단어로 새겨져 있다.

이것 외에도 스파르타 군인의 용감성은 불세출의 명언으로 많이 회자된다. 스파르타 군인 `디에네케스`에게 동맹국 트라키아의 주민이 하얗게 질린 채로 찾아왔다.

“페르시아 모든 궁수들이 일제히 활을 쏘면 화살의 그림자가 태양을 가릴 정도입니다.”

그 말에 디에네케스는 너털웃음을 웃으며

“잘됐군. 그럼 우리 군대는 그늘에서 전투할 수 있겠군.”

그만큼 페르시아의 많은 군사에 대항하는 스파르타 군인의 임전무퇴 정신자세를 보여주는 일화다.

그리스와 페르시아는 테르모필레 전투 이전에도 두 번이나 싸웠다. 첫번째는 기원전 492년이었고 두번째는 기원전 490년 마라톤 전투다. 이곳의 테르모필레 전투는 기원전 480년 실라미스 해전에서 그리스가 승리하는데 큰 역할을 한다.

이런 전투에 대한 기록은 헤르도트스의 명저 `역사`를 비롯하여 풀루타르크 `영웅전` 및 여러 책에 등장하는데 가장 치열했던 전투가 이곳에서 벌어졌던 전투다.

테르모필레 전투 기념비 광장 옆에는 전투에 따른 설명과 당시 전투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알려주는 안내판이 있다. 그렇다고 델포이나,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처럼 거창한 유물유적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단지 오래 전 기록에 따른 기념물을 세웠기에 후세의 사람들은 그곳을 찾고 인류 역사의 한 획을 그은 전쟁을 잊지 않고 기억할 뿐이다.

광장 밖에는 머리와 팔이 없는 또 하나의 조각상도 보인다. 무명용사비다.

전쟁에는 숱한 영웅호걸이 탄생한다. 영웅호걸과 그들 밑에서 목숨을 잃은 이름 없는 수많은 병사들이 있었기에 나라의 영토는 지켜지고, 역사는 존재하는 것일 게다. 2천5백년 전 테르모필레 전투는 유럽과 아시아를 지리적으로 나누는 계기가 된 전투다. 그 전쟁의 후유증은 아직도 저 중동 곳곳에서 배턴을 이어받듯 또 다른 전쟁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테르모필레 전투 기념비에서 허황되게 떠올려본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