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오신 객원논설위원 로타리코리아 이사장·발행인

우리 근현대사에 가장 뼈아픈 기억은 일제 강점기 36년간이다. 아직도 그 뒤처리를 말끔히 하지 못하고 있다. 강제 징병과 징용, 정신대의 상흔이 가슴깊이 남아 있는가하면 그 원혼들이 만주 땅과 연해주 남태평양의 정글에서 지금껏 떠돌아다니지 않는가.

같은 말을 주고받는 동포끼리, 부모 형제가 서로 총질을 했던 한국전쟁의 비극도 잊혀지지 않는 일이다. 천만 명에 이르는 이산가족의 슬픔도 쉽게 아물지 않을, 깊고 깊은 상처다.

한 시대를 먼저 살다 가신 철학자 김형석 교수가 “역사는 말을 하지 않지만 역사는 무한의 진리를 품고 있기 때문에 지혜의 눈과 용기의 입을 가진 사람들로 하여금 언제나 말을 하게 한다”고 말했듯이 인류는 길고 긴 세월동안의 역사를 교훈삼아 미래의 행복을 추구한다.

세계 역사를 보면 지도자는 위기에서 더 빛이 난다. 영웅은 전쟁 이상 가는 난세에서 태어난다고 했었지만 우리 근세사를 되돌아보면 불행하게도 그런 영웅이 없었다. 25살 나이의 원세개가 청군 800명을 이끌고 갑신정변(1884)을 일으킨 개화파를 사흘 만에 전격 진압한 역사적 사실만도 그렇다. 친일, 친청, 친러로 나누어 패 갈림으로 허구한 날을 허비했던 19세기, 구한말을 지나던 우리 지도자들은 왜 그리도 못났을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사실 축구경기에서 스트라이커의 화려한 경기는 누구도 탐낼만한 하지만 어시스트를 잘해주는 동료선수가 있어 가능하다. 한국인의 정치나 사회질서가 어려운 것도 이런 민족성 때문일 수 있다.

진정하게 앞서가는 길은 자신의 명예를 걸고 최선을 다하는 것. 자유를 방종으로 착각하듯이 평등을 무등·무서열로 잘못이해하면 안된다. 머리가 강을 건너야만 꼬리가 닿는다. 호랑이를 이길 진돗개의 영리함과 기개를 갖추었지만 같이 달리면 끝은 보나마나하다.

지금 대선 판을 보면 정치적 그늘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앞을 밟고 나가는 행동이 대를 잇고 있다. 이런 판이 되풀이 된다면 인적쇄신이 이뤄져도 한번 불신감에 빠져든 국민들의 마음을 다시 얻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갈수록 한반도를 둘러싼 동아시아의 변화 물살이 너무 거세지고있다. 세계의 싱크탱크들이 경쟁적으로 내놓는 향후 10년의 예측 상황 보고서들 가운데 한국과 관련된 것들을 간추려보면 흥미롭기도 하지만 마음이 편치 못한 부분도 더러 있다.

우선 2015년에 가면 한국은 3대 현안에 직면하게 된다고 한다. 이미 미·중 정상회담에서도 거론된 남북한의 대칭구도가 있다. 중국이 굴기(屈起)하고 일본이 욱일승천(旭日昇天)하면 그 사이에 낀 한반도는 언제나 위태위태했던 구한말과 같은, 과거 역사에 나타난 국가의 운명이다.

또 미국과 중국이 주도하는 동아시아 질서다. 중국은 이미 국민총생산 5조 달러를 달성, 지난 100년간 뒤처졌던 일본을 추월했다. 그런데 이 중국이 2015년에 가면 10조 달러를 넘어서 미국의 19조 달러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게 된다. 물론 미국의 상대적 우위는 여전히 선명하지만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수직 상향으로 올라갈 전망이다. 미국은 재정적자를 메우기 위해서 지금처럼 군사비를 계속 삭감할 것이고, 우린 2015년으로 연기됐던 전시작전통제권 전환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시점에 들어선다.

김정은의 북한체제 또한 우리의 가장 큰 고민거리이자 부담이다. 핵과 선군정치는 남한사회에 천안함 사태 같은 고통을 안길 것이다. 한국은 북한이 어떻게 나오든 생존 전략을 도와야 한다. 개발 독재성 경제성장과 민주화의 후유증으로 국론이 여러 갈래로 분열되고, 성장과 복지, 노사문제도 여전히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이런 점에서 보면 이번 대통령선거는 무척 중요하다. 근세사 100년을 마감하면서 국민 모두에게 꿈을 키워주고, 미래에 대한 약속을 지켜주면서 부패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