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신화 고장에서 선진문물 전파하다”

▲ 연오랑 세오녀를 비롯해 오래전 고대 일본에 선진문물을 전파한 개척자들이 위험하고 긴 바닷길의 기점으로 삼았을 포항시 남구 동해면의 도구해수욕장 일대.

전 세계에서 일본을 우습게 아는 나라는 한국 뿐이라는 우스개소리가 있다.

일본이 근현대를 통틀어 세계를 주름잡는 선진국 대열에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편입된 후 최정점에 섰던 역사를 본다면 만용에 가까운 표현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인의 의식에 뿌리내린 우월감에는 선진문물을 공급했다는 문화적 자부심이 자리잡고 있음은 분명하다.

삼국유사에 실린 작은 설화에 불과한 연오랑 세오녀의 이야기 속에는 영일만을 중심으로 한 경북동해안의 선진 문물 전파의 역사와 함께 태양 숭배 사상이 암시돼 있다. 이를 통해 오늘의 우리는 결국 이 지역이 풍부한 문화가 깃든 삶의 터전이며 민족적 자긍심의 한 근거지임을 알 수가 있다.

글 싣는 순서
<2부=해양개척과 도전정신의 터>
11)해양교류와 개척의 기지(基地)
12)연오랑세오녀, 태양신화와 문화자긍의 상징
13)창해를 넘는 선박건조의 비밀-1
14)창해를 넘는 선박건조의 비밀-2
15)잊혀진 옛 항로- 1
16)잊혀진 옛 항로- 2
17)해양무역시대를 잉태하다

학자들, 한일 교류 통로로 포항 영일만·경주 감포 등 꼽아
日, `이마지 유래기`에 섬 최초 도착자로 옛 신라 남녀 기록
포항 등 고구려 영향권 답게 삼족오의 태양사상도 연관

□ 선진 문물의 전파자

포항대학 배일용 전 교수가 사학자 천관우와 이홍식, 김정배 등의 자료를 연구한 결과 등에 따르면 사로국은 2세기 중반 아달라왕대에 이르러 영일만 일대를 실질적인 지배영역으로 복속하여 포항의 흥해에서 울산만에 이르는 동해안의 지역을 확보하게 된다.

이에 따라 연오랑과 세오녀를 중심으로 한 (포항이 근거지인) 근기국의 토착세력은 압박을 받게 되자 신라에 대한 복속을 피해 배를 타고 일본으로 건너간 것으로 추정된다.

일본서기와 고사기 등 일본 역사서를 재인용하더라도 일본고대사는 고대 한국인의 이주와 문화전파에 결정적으로 영향 받고 있다. 따라서 배용일 등은 연오랑 세오녀가 일본의 이즈모시를 중심으로 한 산음(山陰)지역 변읍의 왕과 왕비가 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일본의 `고사기(古事記)`는 진구(神功)황후에 대해 한반도에서 건너간 `천일창`의 후손으로 기록하고 있다. 현지 사료에 따르면 천일창은 자신의 아내를 찾는다는 구실로 일본에 상륙해 정벌한 것으로 기록돼 연오랑 세오녀 설화와 연관성이 분석되고 있다.

이는 이영희교수의 `노래하는 역사`에서도 확신의 근거를 확보하고 있는데 여러 연구를 종합하면 2세기 중엽을 전후해 경북 동해안의 태양숭배 집단 등 토착세력이 비단과 제철 등 선진 기술문화를 갖고 일본의 출운(出雲) 지역이나 북구주(北九州)지방에 진출한 것이 유력하다. 특히 일본 학자는 연오세오고(延烏細烏考)를 통해 부부의 출발지를 영일현으로 보고 도착지를 일본 은기국(隱岐國)의 지부도(知夫島)로 파악하기 까지 했다.

□ 신화인가, 설화인가?

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신라 경주에서 동해로 내왕하는 주요 통로는 포항 영일만, 경주시 감포, 울산만의 세가지 항로가 있다. 고대 한일 양국이 영일만을 통해 교류하던 길은 거리와 항, 조류와 풍향의 영향을 고려할 때 필연적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영일과 같은 위도 36도 선상에 있으며 현 시마네현의 현청 소재지인 마쓰에시의 한 박물관에는 구니비키(국인·國引) 전설 그림이 전시돼 있다. 지난 1999년 포항문화방송의 특집프로그램에서 현지 전문가는 이 그림이 신라의 호미곶을 인용한 것으로 파악하며 한반도의 문명과 재화가 일본으로 전파되기를 염원한 것과 연관 있다고 인터뷰 한 바 있다.

결국 학자들은 연오랑세오녀는 신화나 설화가 아닌 역사의 인물로 결론내리고 있다.

많은 근거 가운데 해류와 바람을 이용할 때 포항에서 출발하면 자연스럽게 닿게 되는 시마네현에 남은 흔적들도 인용되고 있다. 이 중 시마네현 본토에서 배로 두시간 거리의 오키섬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서로 파악된 `이마지 유래기`에는 최초로 섬에 도착한 사람이 가라의 사로국(신라의 옛 이름)에서 온 목엽인 남녀로 기록돼 있다. 학자들은 이를 통해 오키섬의 선조가 연오랑 세오녀라고 보고 있다. `포항市史`에 따르면 시마네 현 이즈모 시는 `신들의 고향`으로 불린다.

이곳에 고대왕국을 건설했다는 스사노오미코토는 일본 천황가의 시조로 추앙되는 아마테라스의 동생으로 행실이 나빠 고천원에서 신라국 소시모리로 쫓겨났다. 하지만 곧 바다를 건너 일본으로 돌아와 이즈모 지역에 왕국을 세웠다.

물론 이설(異說)도 있다. 포스코 미래창조아카데미 이영희교수는 연오랑이 간 곳은 이즈모가 아니라 다파나국, 즉 지금의 효고현을 중심으로 한 교토부 및 우쿠이현 일대와 일본 최대의 호수 비와호 서북쪽 마을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신화가 역사가 될 때 그 속의 인물은 역사 속에서 더 구체성을 띠며 복잡하게 얽혀 있는 듯한 현실은 실타래가 풀리듯 이해의 골을 넘어가게 되는 것이다.

□ 일본의 연오왕 추모제

일본 이즈모시에는 매년 음력 10월에는 일본의 신이 전부 모인다는 이즈모다이사가 열린다. 이때는 일본 창세기의 신을 모셨다는 히노미사키 신사 안에 있는 한국신사라는 현판이 붙은, 포항 방향의 왼쪽으로 향한 작은 신사에서 연오왕 추모제가 열린다. 이즈모시 카라가와쵸 산정에 있는 카라카마 신사의 카마는 가마솥이라는 의미로 용광로를 상징하고, 연오랑이 돌배를 타고 왔다는 의미로 만들어진 `암선`(岩船) 옆에는 이를 설명하는 게시판이 설치돼 있다.

 

▲ 연오랑 세오녀를 기리며 남구 동해면사무소 뒤편에 위치한 일월사당.

□영일의 정신적 뿌리는 일월 신앙

연오랑 세오녀에는 모두 까마귀를 뜻하는 오(烏)가 포함돼 있다. 또 삼국사기에 기록된 설화에는 태양에 관한 사상을 확인할 수 있다. 그래서 포항은 한반도에서 가장 먼저 해가 뜬다는 사실 등이 종합돼 예로 부터 일월향으로 불리어왔다. 학자들은 이를 토대로 포항을 삼족오 일월신화와 일월신앙의 중심지로 규정하고 있다.

영일만이라는 양곡(暘谷)이 고대 한민족 문명권의 삼족오태양 신화가 이동 전승된 귀착지로서 한국의 대표적 태양(일월)신화의 성지라는 것이다.

삼족오 신앙과 관련해 삼족오 문양 중 태양 안에 삼족오가 세발로 서 있는 것을 `일중삼족오`라 하며 태양 안에 날아가는 모습을 `금오`라 할 만큼 삼족오는 곧 까마귀이며 태양이다. 역사적으로 신라지역인 경북동북부의 영풍, 안동, 봉화, 청송, 울진, 영덕, 영일지역에서 고구려 지명이 나타나 있다. 이는 상당한 기간 동안 고구려가 영향을 미쳤다는 것으로 영일의 북쪽인 청하와 흥해는 5세기경까지 고구려의 영향을 받았다.

또 영일만 지역은 태양과 삼족오를 뜻하는 烏와 日月 관련 인명과 지명이 2천년 동안 현존하고 있다. 무엇보다 연오세오, 일월, 영일, 도기야, 오천, 세계, 일월지, 일광, 중명 등이 그것이다. 배용일 전 교수는 일생을 건 연구를 통해 영일만은 새로운 양곡의 개척지, 즉 일본 건국신화의 출발지라는 이데올로기를 세우기에 이른다.

□특별취재팀 = 임재현, 정철화, 이용선(이상 본사 기자), 김용우 향토사학가, 장정남 한빛문화재연구원 전문위원.

    □특별취재팀 = 임재현, 정철화, 이용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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