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1.5%로 2000년 5월(1.1%) 이후 12년 2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하자 전문가들 사이에서 물가가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현상인 디플레이션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특히 가계부채 규모가 과다한 상황에서 물가 하락이 장기화될 경우 `부채 디플레이션`에 진입할 수 있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부채 디플레이션은 1933년 미국의 경제학자 어빙 피셔가 당시 발생한 대공황을 설명하기 위해 제시한 개념이다.

부채가 과다한 경제에서 디플레이션이 발생할 경우, 경기침체 및 자산가격 하락이 반복되는 악순환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물가가 하락하면 채무자는 실질금리(명목금리―물가 상승률) 상승에 따른 부채 부담을 줄이기 위해 자산을 처분하고 소비지출을 줄이게 된다. 이로 인해 자산가격이 더욱 떨어지고 디플레이션은 계속 악화되어 경기둔화가 가속화되고 민간의 부채상환부담은 오히려 더욱 커지게 되는 악순환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부채 디플레이션의 대표적인 사례로는 1990년대 일본의 장기불황을 들 수 있다.

1990년대초 버블경제 붕괴로 주식 및 부동산 가격이 폭락하자 일본 기업들은 현금 확보를 위해 부동산 등 보유자산 매각에 나서며 부동산 가격 하락을 가중시켰다. 이에 따른 물가하락으로 실질금리가 더욱 상승하게 되자 기업과 가계는 채무 부담을 줄이기 위해 투자와 소비를 줄이는 한편 또다시 자산을 매각했는데 이로 인해 물가가 더욱 하락하는 악순환이 발생하게 됐다.

이후 가계와 기업의 파산이 늘면서 투자와 소비가 더욱 위축돼 가계와 기업의 채무상환능력은 더욱 나빠지고 디플레이션이 계속되는 장기불황 즉 `잃어버린 10년`이 발생한 것이다.

우리나라의 가계부채는 2012년 6월 기준 922조원으로 2011년 GDP의 75%에 달하고 있는 데다 차입규모가 소득에 비해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평균 주택담보대출비율(LTV)이 47%로 안정적이고 가계대출 차환도 전반적으로 순조롭게 이루어지고 있어 아직까지 대규모 디레버리징(부채 상환)으로 인한 디플레이션 가능성은 높지 않은 상황이다. 다만 실물경기 및 주택시장 부진 심화로 가계의 채무상환능력이 더욱 악화될 경우 부분적인 디레버리징과 소비 위축으로 부채 디플레이션이 발생할 가능성에 대한 경계를 늦출 수 없는 상황이다.

    이윤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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