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오신 객원 논설위원 로타리 코리아 발행인

성(性)과 관련된 극악한 뉴스들이 도배를 하는 세상이다. 우리 아이들이 그런 환경에도 이만큼 바르게 자라준 것이 신기하다는 생각이 문득문득 스쳐간다.

천주교 박해가 절정에 이르렀던 조선시대 말 천주교에 귀의해 신앙생활에 몰두했던 처녀들이 성모 마리아의 순결을 흠모, 결혼을 거부하고 동정을 지키는 수행으로 온갖 고통을 이겨냈던 얘기는 지금도 유명하다. 전주의 순교자 가문의 요한 유중철(柳重哲)은 주문모(周文謨) 신부의 주선으로 한양의 순교자 가문 출신 루갈다 이순이(14)와 결혼했다. 둘은 사랑은 하지만 육신은 범하지 않는다는 순결 서약을 굳게 한 동정부부가 됐다.

루갈다는 옥중 생활에서 보낸 편지에서 자신의 부부생활을 이렇게 밝혔다. 순결을 지킬 것을 천주님께 명세한 이들 부부가 시집가던 날부터 남편과 함께한 시간은 밤 아홉시까지였다. 4년 동안 마치 오누이처럼 살아오는 동안 여러 차례 성적 시련을 겪었으며, 하마터면 동정부부를 깨뜨릴 위기도 열 번 쯤 있었다고 한다. 그럴 때마다 둘은 서로 맞붙들고 엉엉 울면서 그 악마의 순간을 빠져 나온곤 했다는 것. 요한 유중철과 루갈다 이순이는 그 후 순교했다.

천주교 신자로 여주에 살았던 정순매(鄭順每)는 시집을 가라는 주변의 성화에 견디다 못해 기혼자로 보이도록 쪽진 머리로, 이정희(李貞喜)는 거짓 앉은뱅이 행세로, 동정서약을 한 김유리타는 그 자리에서 머리를 삭발해 혼담을 피했다.

천주교 박해가 심했던 시절이었지만 천주교에 귀의한 조선의 처녀들은 성모 마리아를 흠모, 결혼을 피하고 동정을 지키는 고통을 감내하면서 신앙심을 키웠다. 엘리사벳 정정혜는 성적 욕망을 다스리기 위해서 스스로 매를 들었다고 한다. (故 李圭泰의 글에서)

혼전순결을 지키기는 그런대로 쉬운 편이지만 요한 루갈다 부부같이 결혼을 하고 한방에서 맞부딪치면서 살아가기란 신앙적 수행보다 더 가혹했을 것이다.

무려 15년간 동정부부로 살았다가 서소문 밖 형장에서 순교할 때에 자신에게 순결을 지키게 해 준 남편(조 베드로)에게 감사하다고 말하고 망나니의 칼을 받은 권 텔레지아 얘기도 유명하다.

한국사회는 지금 성에 관련된 얘기를 빼고는 더 들을 것이 없는 것처럼 방송과 신문 사회면에 도배를 하는 처지다. 희생자는 미성년자에서 학생, 가정을 지키는 부녀자 등으로 다양하다. 지난해에 일어난 성범죄가 1만9천건이다. 노출되지 않은 사건들도 많았을 것이니 성범죄공화국이라는 말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그만큼 성 관련 사건사고들이 많다는 뜻이다.

계절적 영향이 커서인지 성희롱사건은 이제 관심에서 제외될 정도가 돼버렸다. 젊은 여성들이 거리에 입고나온 옷은 이삼십년 전에 비하면 거의 속옷수준이다. 짧은 바지와 소매없는 상의로 허벅지와 어깨까지 노출한 자태다. 신체 선을 노출시키지 않았던 조선시대로 돌아가자는 얘기는 아니지만 노출이 지나치면 성범죄를 불러오는 단초가 된다. 여름에 성범죄가 늘어나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

여성들의 신체 노출은 40%정도가 가장 아름답기도 하고, 자신을 방어하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여성들의 이런 노출은 가을바람이 내리기 시작한 9월에 들어서도 여전하다. 신체 선을 드러내지 않는 무명옷을 입었던 시절이 그리 오래지 않은데 이젠 까마득하게 느껴진다.

한국인의 정신세계 표본이 되었던 견우직녀의 정신은 이미 사라지고 없다. 쉽게 만나고 헤어지는 세상이니 순결은 고전이 되어버린 것 같다. 너도나도 이혼이고, 이혼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사회가 됐다. 결혼도 마치 물건을 사고파는 일 정도로 가볍게 생각하는 게 오늘을 사는 우리 젊은이들의 일그러진 모습이다. 이러다가 한 여자 한 남자를 지키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천연기념물이 될지 모르겠다는 걱정을 하는 사람이 필자뿐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