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안 바닷길을 연 해양인의 도전정신
철기문화 꽃 피우고 무역항로시대 개척

▲ 지난달 말 포항과 일본 교토부 마이즈루시간 항로가 개설됐다. 2세기 무렵 왕성했던 경북 동해안의 항로가 2천년의 세월이 흐른뒤 재개설된 것이다. 사진은 포항 영일만항에 도착한 퍼시픽 비너스호. /포항시 제공

경북의 혼(魂)을 찾아서 -프롤로그

지난달 말 포항에서는 의미 있는 행사가 펼쳐졌다. 일본 교토부 마이즈루시 주민들이 배를 타고 창해를 건너 한반도 동쪽 끝 연오랑세오녀의 도시 포항을 찾았다. 포항은 크게 환영했고 답방으로 감사인사를 대신했다.

경북 동해안과 일본 서해는 2세기 무렵 이미 항로가 개설돼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다시 뱃길을 여는데 무려 2천년의 세월이 흘렀다. 연오랑세오녀 신화의 땅은 한반도 동쪽 포항과 일본의 이즈모시이지만 어쩌면 이곳 마이즈루와도 2천년 전에는 또다른 왕래가 있었을런지도 모를 일이다.

2천년전 당시 경북 동해안의 철기문화가 바다를 건너 일본에 전파됐던 것으로 신화에서는 전하고 있다. 창해를 넘나드는 해양인의 도전과 개척 DNA(유전자)가 마이즈루 항로의 개설을 가능케 만들었다는 가설은 그래서 가능하다.

동해를 중심으로 한 경북인의 개척정신, 그것이 경북의 혼(정체성)이다.

그 정신이 동해안의 부족국가를 세웠고 이곳에서 철기문화를 꽃 피웠다. 무역항로를 개척하고 일본에 문명을 전달했다.

본지는 본지 기자와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특별취재팀을 통해 경북 동해안의 혼(정체성)을 찾아 그 정체의 일단을 밝히려 한다.

□글싣는 순서

<1부=경북동해안 철기문화 꽃피우다>
2)경북동해안은 고인돌 왕국
3)경북 동해안의 소국
4)동예인들의 후예
5)신라가 진한지역을 통일하다
6)철을 가진자가 세상을 지배한다
7)철기문화발전의 최적지 영일만
8)고래의 고장 영일만
9)고급철강의 비밀-고래기름
10)2천년전에 예고된 포스코신화

<2부=무역항로 개척의 시대>
11)운명의 선택-기술이냐 생명이냐
12)도전의 시대 무역항로는 열리고
13)창해를 넘는 선박건조의 비밀-1
14)창해를 넘는 선박건조의 비밀-2
15)잊혀진 옛 항로- 1
16)잊혀진 옛 항로- 2
17)해양무역시대를 잉태하다

<3부=연오랑세오녀 일본 왕이되다>
18)연오랑세오녀는 누구였나
19)바다를 정복한 민족
20)신들의 고장 이즈모에서 왕이되다
21)그들은 일본에 무엇을 남겼나
22)이즈모에 남아 있는 역사유적
23)연오랑세오녀 신화는 잠들고

24)에필로그=경북혼이 살아 숨쉬는 동해안

연오랑세오녀의 신화가 등장하는 157년. 당시 포항을 중심으로 한 경북 동해안은 삼한 가운데 하나인 진한지역의 일부였다고 역사는 적고 있다. 신라의 전신에 해당하는 사로국은 진한지역의 작은 부족국가였다. 소국이었던 사로국은 인근 부족국가를 병합하면서 통일신라로서의 기초를 다지게 된다.

그러나 최근 들면서 일부 역사학자들은 동해안을 중심으로 한 동예의 후손일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 나아가 이곳 포항 등 경북동해안 지역은 이전부터 철기문화를 중심으로 강력한 해양부족국가가 존재했을 가능성도 제기한다. 연오랑세오녀의 신화 탄생인 것이다.

▲ 연오랑세오녀 신화의 땅 일본 이즈모시의 히노미사키에서 바라본 동해(한국). /경북매일 자료사진

`연오랑 세오녀`는 어떤 사정이 있어 일본으로 갔을까?` 하는 의문을 풀어주는 첫째 단추는 `아달라왕 즉위 4년`에서 출발한다. 아달라왕 즉위 4년은 AD 157년이다.

당시 한반도 남쪽은 격동의 시기였다. 한반도 남쪽에는 진(辰)사회 이후 마한(馬韓), 변한(弁韓), 진한(辰韓) 연맹체가 있고, 그 속에 각각의 소국들이 제 영역을 차지하다 삼국의 모체가 된 소국들이 다른 소국들을 통합해 강한 왕권과 큰 영역을 가진 백제, 가야, 신라의 삼국으로 재편됐다. 당시 진(辰) 사회에서는 고조선 사회의 변동에 따라 대거 남하해 오는 선진 철기 문명을 가진 이민족에 의해 새로운 문화가 보급된다. 이들은 토착민이 가진 문화와 융합되면서 사회가 더욱 발전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삼한 사회의 생활이 곧 소국들의 생활모습이다. 삼한에는 정치적 지배자 외에 제사장인 천군(天君)이 있어 제정(祭政)이 분리된 사회였다. 소국의 일반 사람들은 읍락(邑落)에 살면서 농업과 수공업의 생산을 담당했다. 초가지붕의 반 움집이나 귀틀집에서 살면서 공동작업을 위해 두레 조직이 있었으며, 씨를 뿌리고 난 뒤와 추수기에 계절제를 열어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 특히 삼한 사회는 철기 문화를 바탕으로 하는 농경사회였다. 철제 농기구의 사용으로 농경이 발달하고 벼농사를 지었다.

그렇다면 청동기에서 철기시대로 넘어가는 시대적 상황은 어떠했을까.

철기생산은 대단한 자부심이었고 권력의 상징이었다. 이곳 영일만 등 동해안에는 고래가 풍부했다. 고래기름이 흔했다는 얘기다. 기름은 나무를 때면서 생산해내던 일반적인 당시 철기생산 방식을 뛰어넘었다. 철재질의 구조부터가 달랐던 것이다. 철은 높은 온도에서 최고의 품질이 생산된다. 나무에 기름을 재워 고열로 만들어진 철은 최고의 가치를 지니게 된다.

그런 부족이 동해안에는 일찍부터 존재했고 이들이 이를 무기로 해외무역에서 나섰다는 것은 경북의 도전정신을 보여주는 단초다. 신라정신과 대별되는 해양문화를 잉태한 또 다른 해양부족국가의 존재 개연성을 발견 할 수 있는 것이다.

이곳에서는 일찍부터 일본 등 인접국과 무역교역이 이뤄졌을 것으로 추측된다. 무역항로가 있었다는 의미다.

연오랑세오녀의 신화속에 등장하는 사료만으로도 그 정도는 가늠이 된다. 지금도 호화유람선을 타고 일본의 서해까지 20시간정도 소요되는 점을 감안하면 그 당시의 선박기술과 항해수준에서는 목숨을 걸어야만 가능했을 것이다.

당시의 항로 개척정신이 장보고를 잉태했고 오늘날 대한민국을 조선강국으로 만들었다는 가정도 가능하다. 당시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도전정신이 오늘날 대한민국을 무역강국으로 자리잡게 했을 것이라는 유추도 가능한 것이다.

이를 풀어가는 것 역시 연오랑 세오녀다. 세오녀 신화는 어떻게 탄생됐을까. 연오랑 세오녀는 어떻게 일본을 건너갔을까. 이들은 일본에서 과연 무엇일까. 신화처럼 과연 이들은 바위를 타고 일본으로 건너갔을까.

삼국유사에 따르면 신라 8대 아달라 이사금 4년(157년) 연오랑 세오녀 부부가 바위를 타고 일본으로 건너가 고대 일본왕국 건설의 주역이 됐다고 기록돼 있다.

또 일본 이즈모시의 쓰사노 오노미코토 전설에도 신라인이 흙으로 된 배를 타고 이즈모시 하이강에 도착해 제철, 직조, 농사기술을 전파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연오랑 세오녀는 신화속의 인물이다. 바다를 건너 일본에 첫 문명을 일구어낸 한민족의 이야기다. 포항인 최초의 신지식인이자 개척정신의 상징이다.

바위를 타고 갔다고 하지만 아마도 배였을 가능성이 높다. 2세기 당시에는 선박건조 기술과 항해술 등이 그렇게 발달하지 않은 것으로 역사는 기술하고 있다. 그러나 신화를 해석해 보면 당시 연오랑 세오녀는 이미 일본의 이즈모시를 몇 차례 방문했고 이즈모시에서도 동해안을 종종 찾은 것으로 유추해석할 수 있다.

이러한 시기 소국병합이라는 대 소용돌이는 동해안의 근기국에도 닥쳐왔고, `근기국 도기야`에 살고 있었던 연오랑 세오녀 부부는 일본으로 이주해 간 것이 아닐까? 그곳에서 선진 철기문명을 전파한 것이 아닐까? 단정지어 말할 수는 없다. 다만 시대적 배경을 설명하고 있을 뿐이다.

이미 서기 전 3~2세기에 고대 한국인들은 일본 서부로 이주하여 농경민으로 정착하였다는 주장도 일부 사학자들 사이에서 제기되고 있다. 이들은 일본 원주민들에게 철제 기구의 사용과 논농사를 포함한 새로운 농업 기술을 선보이면서 한곳에 모여 살았는데 이는 곧 자치현(自治縣) 내지는 왕국(王國)의 규모로 발전하였다고 한다.

이후 서기 2세기에서 6세기에 걸쳐서도 한반도에는 백제, 신라, 고구려가 입지를 굳히며 점점 강력한 국가를 만들어 가는 동안 일본에는 수많은 고대 한국인들이 건너갔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들은 건너간 이후에도 본국인 한반도와 지속적인 관계를 맺어 왔던 것으로 보인다.

과연 선박건조 기술과 항해술이 변변치 못했던 당시 시대상황을 감안해보면 가능한 일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목숨을 건 해양인의 도전정신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경북 동해안의 살아 있는 또 다른 혼은 무역항로를 개척하기 위해 검푸른 파도와 싸워온 해양인의 기질, 바로 그 창해를 넘나드는 도전정신이다.

/특별취재팀 = 이준택, 정철화, 이용선(이상 본사 기자), 김용우 향토사학가, 장정남 한빛문화재연구원 전문위원.

    특별취재팀 = 이준택, 정철화, 이용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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