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0년 국립경주박물관 미술관 신축 예정지에서 확인된 깊이 10.27m에 이르는 통일신라시대 우물에서 7∼8세 가량 되는 어린아이 인골이 거의 완벽한 상태로 출토됐던 것으로 14일 밝혀졌다.

이 인골은 머리를 바닥쪽으로 향한 채 거꾸로 박힌 모습을 하고 있었으며, 두개골이 함몰된 것으로 보아 추락사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추정됐다.

이같은 사실은 당시 발굴을 주도했던 국립경주박물관(관장 박영복)이 최근 발간한 ‘국립경주박물관부지내 발굴조사보고서’에서 확인됐다.

미술관 신축에 앞서 그 예정부지에 대해 지난 98년과 2000년에 실시했던 발굴성과를 정리한 이 보고서에 의하면 인골은 우물안 8m50㎝ 지점의 뻘층에서 머리는 바닥쪽으로, 두 다리는 하늘을 향한 채 발굴됐다. 이 지점에서는 인골외에도 소 갈비뼈(4분의 1마리 분)와 닭뼈를 비롯한 많은 동물뼈, 두레박 2점 및 10여 점에 달하는 토기와 함께 출토됐다.

이 인골을 감정한 동아대 고고미술사학과 김재현 교수는 "뻘층에 박혀 있었기 때문에 신체 인골의 전 부분이 고스란히 남아있다"면서 "성별은 알 수 없으나 신장 123.8㎝ 이상에 7∼8세 소아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두개골 함몰 흔적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어린이는 우물에 추락해 즉사했거나, 이미 사망한 단계에서 던져졌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한편 우물의 전체 깊이는 무려 10.27m로 상당히 깊었으나 인골이 나온 8m50㎝부터 뻘층으로 메워져 있었다. 깬돌을 원형 형태로 쌓은 이 우물은 입구부분의 지름이 70㎝, 중간부분이 1m20㎝, 다시 바닥부분이 1m로 좁아지는 호리병 형태로 맨밑바닥에는 자갈이 촘촘히 깔려있었다.

보고서는 인골과 함께 출토된 유물이 겹쳐지지 않고 동일한 층위에서 각각 다른지점에서 확인되고 그 위에 강돌로 우물을 인위적으로 매몰한 흔적이 확인되는 것으로 보아 이 인골이 모종의 제례행위와 관련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즉, 어린이를 희생양으로 사용했거나, 어린이가 단순 추락으로 인해 우물에 빠져 숨진 뒤 그와 관련되어 일어난 제사행위의 흔적일 가능성을 모두 열어놓았다.

한편 인골 출토지 보다 더 내려간 9m50㎝ 지점 뻘층에서는 두레박과 토기 4점이 거의 완형으로 출토됨으로써 어린이 인골 매납과 직접 관련이 있거나, 아니면 그 이전 어느 시점에 이 우물에서 또 다른 제의행위가 있었음을 강하게 뒷받침하고 있다.

한편 이 우물에서는 '남궁지인'(南宮之印)이라는 글씨를 새긴 통일신라시대 기와 유물이 출토되어 지난 2000년에 화제가 된 바 있다.

    윤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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