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떠받친 문경새재… 새들도 쉬어가네…

돌길 따라 구름 위로 올라가니

굽이굽이 삼십 리나 이어졌네

사람들은 높은 나무 끝으로 지나고

말은 푸른 병풍 속으로 들어가네….

가는 날이 장날, 북새통이다.

위의 시는 영남학파 소세양(蘇世讓)이 당시 넘기 힘든 고개인 문경새재를 표현한 것이다. 찻사발 축제가 열리고 있는 문경은 생각보다 사람들이 많았다. 몇 해 전 와본 경험만 믿고 다시 찾은 문경새재, 그때보다는 더 잘 정비돼 있고 볼거리들이 더 많아진 느낌이다. 문경은 수백 년에 걸쳐 전통도예의 맥을 잇고 있는 곳이다. 그래서인지 군데군데 도자기 상설집들이 많이 보이는 곳이다. 도자기 축제라 그런지 엄청 많은 사람들이 붐볐다. 아무래도 한적한 둘만의 여행은 틀렸다 싶었다.

문경은 지역명이며 새재는 고개이름을 말한다. 그러니까 다 아는 이야기지만 문경새재는 대관령, 추풍령 등과 같이 큰 고개의 순수한 우리말이라 할 수 있다. 그 옛날 지금으로 치면 경상도에서 한양으로 가는 1번 국도라 할 수 있을까? 이곳은 문경과 충주를 오가는 길에 있는 큰 언덕으로서 경상도에서 한양으로 갈 때는 반드시 거쳐 가야만 하는 중요한 길목이었다고 한다. 드라마 전설의 고향 단골메뉴의 공간적 배경으로 자주 등장하는 곳이라 한다. 지금 봐도 산적들이 많이 있었음직한 곳이다.

새들도 날다가 쉬어간다는 높고 험준한 문경새재. 이 고개는 지금 가장 아름다운 옛길로 사람들에게 각광받고 있다. 매년 100만명 이상이 다녀갈 정도라고 하니 한여름 바닷가 백사장을 붐비는 비키니가 있다면 이곳은 연중 주말이면 울긋불긋한 등산복 차림의 사람들의 물결이 장관을 이루는 곳 아닐까 싶다. 역시 여행의 참맛은 먹거리. 출출한 시간이기도 했지만 사람들의 행렬을 보아 먼저 먹고 움직이는 것이 유리할듯해 주차장에 억지로 주차를 한 후 지난번에 들른 식당을 찾아 오미자 고추장 석쇠구이와 더덕구이에 오미자 막걸리 한잔, 원체 술이 센 나이지만, 한잔에 벌써 취기가 슥 오른다. 식당 역시도 인산인해. 무슨 TV맛집에 소개된 곳이라 그런지 더한 것 같았다. 아무튼 미식가라면 이곳의 소문난 음식 몇 가지는 한번쯤 지나칠 수 없는 매력이 분명히 있다. 조금만 먹어도 배가 남산만 해지는 특징 탓인지 주변의 음식 다 먹은 배를 해가지고 식당 문을 나왔다.
 

입구에서 몇 발자국 떼자마자 오른쪽에 옛길박물관이 자리 잡고 있다. 작년부터 새재박물관에서 옛길박물관으로 이름을 바꾸고 새롭게 확장됐다고 한다. 1, 2층 전시실엔 옛길과 관련된 유물과 자료가 가득 차 있는 테마박물관 형식으로 꾸며져 있다. 옛날 고향 길의 신작로를 연상케 하는 널찍한 길을 500m 정도 걸으면 `주흘관(主屹關)이라는 영남제1관`이 턱하니 버티고 있다. 문경새재 세 개의 관문 중에서 제일 폼나고, 웅장하며 옛 모습을 가장 많이 보존하고 있다. 전에 없던 `문경새재 과거길`이라고 쓰인 바위 앞에는`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선정된 동판이 있다. TV드라속에서 자주 등장하는 성을 공략하는 장면들 대부분이 촬영되는 곳이기도 하다. 전에 왔을 때는 드라마 액션 장면을 그대로 보고 간적이 있는 곳이라 더 친숙하다.

주흘관을 지나자 개울을 벗삼아 깨끗하게 정돈된 흙길을 걷는다. 흙의 부드러운 모성애가 나의 발바닥으로 전해지는 느낌이다. 그 옛날 선비들이 도포입고 느릿느릿한 걸음걸이로 걸어가듯 나도 한번 따라 해보니 역시 아스팔트길보다는 편안하면서 발길이 가볍다. 그리고 마음 또한 성급해지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 속이라 툭툭 서로가 어깨가 부딪히는 속에서도 도리어 여유감이 나타난다. 한주일의 뻑뻑한 스트레스가 온몸 구석구석에서 빠져 나가는 느낌이다. 한 10여분 걸어 올라오니 드라마 촬영장이 보인다. 2만여 평의 부지에 조성했다는 이 세트장에는 광화문, 시접전, 교태전, 근정문 등 조선조 건물 126동이 조성돼 있어 명실공히 우리나라 최대의 사극 촬영장이다. 합천에도 드라마 촬영지가 있지만 사후관리가 부족한 탓인지 이곳보다는 잘 정리돼 있지 못하다는 생각이 든다.

계곡이 좁아진다는 느낌이 들수록 물소리는 더 청명해져

경상도서 한양으로 갈 때 반드시 거쳐야하는 중요한 길목

영남제1관은 관문 중 제일 웅장하며 옛 모습 많이 보존

몇 해전보다 더 잘 정비돼 있고 볼거리도 많아진 느낌

매년 100만여명 다녀갈 정도… 울긋불긋 `백사장` 연상

한국의 아름다운 100선에 선정… 드라마 촬영지로 인기

추풍령은 낙엽처럼 떨어지고

죽령은 대나무처럼 미끄러져

문경새재를 많이 택했다는데…

 

주흘관을 지나 제2관문인 `조곡관(鳥谷關)` 까지는 3km. 옛날에는 지금보다 어려웠을 고갯길이겠지만 경사가 낮아 역시 슬슬 걷기가 좋다. 이곳 사람들의 말을 인용하면 이길은 조선 태종이후 약 500여 년 동안 한양과 영남을 잇는 가장 반듯한 길이었다고 한다. 그 당시 한양에서 동래까지 가는 고개는 모두 3개로 추풍령과 문경새재, 죽령이 있었는데 문경새재가 열나흘 길로 가장 빠른 길이었다고 한다. 당시 과거 시험을 보러가는 선비들 사이에는 추풍령은 낙엽처럼 떨어지고, 죽령은 대나무처럼 미끄러진다는 우스갯소리가 나돌아 이곳 문경새재를 많이 택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고 한다.

계속 산길을 걸어가다 보니 계곡의 청아한 물소리가 귓전을 울린다. 양쪽계곡이 좁아진다는 느낌이 들수록 물소리는 더 청명하다. 집사람이 이제 그만 갔으면 한다. 여기서 좀 더 올라가면 제3관문인 조령관(鳥嶺關)이 있지만 나 역시 사실 아까 먹은 점심 탓인지 이쯤에서 그만 가고 싶다는 생각에 다시 내려와 찻사발 축제장을 구경하기로 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축제장에서 체험활동을 하고 있었다. 도포를 입고 갓을 쓰고 차향을 음미하는 현대의 선비족, 도자기를 만드는 진흙더미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 문경은 주말이면 사람들의 북새통으로 거듭나고 있었다. <끝>※지금까지 이철진의 여행스케치를 애독해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