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종흠 시사칼럼니스트

18대 국회의 실패를 딛고 오늘 우리는 19대 총선의 투표를 마쳤다. 향후 4년의 정치주역들을 선택한 것이다. 19대 국회는 미국을 비롯한 세계 열강의 리더쉽이 바뀌고 한반도와 주변 정세가 급변할 가능성을 가진 역사적 대전환기에 물려있다. 우리의 국운이 걸린 막중한 사명을 띤 것이다. 그럼에도 개표가 끝나면 여느 선거때처럼 새누리당이든 야권연대든 승리와 패배의 갈림길에서 환희나 비애의 표정과 함께 “국민의 뜻을 받들겠다”든지“국민의 뜻을 겸허히 수용하겠다”든지 하는 수사적 반응을 곁들이는 것으로 첫날이 마무리될 것이다. 선거의 전 과정을 지켜본 국민으로서는 선거 때마다 되풀이되는 통상적 반응보다 19대 국회가 18대 국회보다 나은 정치를 할 수 있을지에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다.

선거는 국민화합의 축제가 되어야 한다지만 근래 우리의 선거 결과는 그러질 못했다. 특히 18대국회는 국민이 선택한 다수정파에 소수정파가 승복하지 않고 파행과 폭력이 국론의 분열과 국민의 불화를 증폭시켜왔다. 그것은 18대총선이 선거과정에서 정파간 갈등과 대립을 녹여내지 못한 채 국민선택이란 요식행위만 치렀기 때문이다. 아무리 국민의 신성한 심판으로 승패가 결정되었다 해도 승자는 자신들의 단점을 반성하고 패자의 장점을 수용하는 자세를 가지기보다 자신들의 승리에만 도취했고 패자는 자신들에 대한 비판을 인정하기보다 승자에 대한 증오를 내면화하고 폭발의 기회를 엿보았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18대총선에서 국민들이 선택한 것은 화해와 융합을 선택했다기보다 독선과 증오를 선택했다고 할 수 있다. 국회의원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도모하는 안건 외에 합의처리된 안건이 많지 않다는 것은 국회의원들이 세비 등으로 국민의 세금만 축낼 뿐 국민들에게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도움은커녕 정치가 오히려 국민의 스트레스만 가중시켰을 뿐이었다.

그러나 이번 선거도 이미 시작부터 여간 실망스럽지 않았기 때문에 새 국회에 대한 걱정부터 앞선다. 선거초반 이른바 야권연대를 성사시킨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은 반미를 중심에 둔 한미FTA와 제주해군기지의 반대를 연결고리로 삼았다는 점에서 정치권의 이념 갈등이 증폭되었고 국민간의 분열도 더 격렬해질 것으로 우려된다. 더욱이 공천에서도 새누리당은 친박근혜계 인물들이 주류로 등장하고 민주통합당에서는 이른바 당 정체성 우선을 빌미로 한 노무현계의 이념지향적 정치인들과 진보통합당의 종북성향 인물들이 대거 진출한 것은 그같은 대립을 더 격화시킬 것 같다. 선거판에 등장한 인물 가운데 민주당의 김용민 후보 같은 패륜적 언행을 일삼은 사람까지 공천을 받았다는 것은 정치와 정치인의 저질화가 예고되는 것같이 느껴진다. 이같은 현상은 결국 선거종반들어 정부의 민간인 사찰 공방과 함께 정책 경쟁은 실종되고 쌈질만 일삼는 선거로 변질된 것이다. 선거는 끝났지만 19대 국회와 한국정치의 앞날을 서막부터 어둡게 하는 징조인 것이다.

선거기간 내내도록 한반도는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 문제로 국내외의 긴장감이 폭발 직전까지 고조되었다. 남북간 군사대치의 첨예화는 물론 주변 강대국들의 온갖 첨단무기 배치로 일촉즉발의 위기감이 조성되었으나 선거기간 내내 국가와 국민의 안위는 안중에 없는 듯 정치권은 선거에 북풍의 영향을 우려하는 자세로만 일관해 왔다. 정치가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있는 것인지 알 수 없는 목적이 실종된 정치현상만 이 땅을 휩쓸었던 것은 이번에도 국민이 정치권을 걱정해야 하는 전도된 상황임을 말해준다.

이제라도 달라져야겠다는 정치권의 각성이 없는 한 유감스럽게도 우리는 정치망국의 현실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 더욱이 이번 총선에서 격화된 정파간의 갈등과 대립이 12월의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집권을 위한 진흙탕 싸움판만 키워간다면 선거는 국가적 재앙이 되지 않을까. 여야는 먼저 선거 결과에 승복하고 정치의 본령으로 돌아가는 애국심을 회복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