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계사 벚꽃길을 가다 (11)
쌍계사 벚꽃길을 가다 (11)
  • 등록일 2012.04.08 20:34
  • 게재일 2012.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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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리 꽃터널 사이로 억만송이 꽃송이가…

봄 전령사 벚꽃이 절정이다.

경남 하동에서 가장 유명한 명물인 쌍계사에도 벚꽃이 활짝 피었다.

이곳에 가기까지 화개장터에서부터 이어지는 도로변을 수놓은 십리벚꽃길은 한 폭의 그림과도 같다. 나무마다 풍성하게 핀 벚꽃의 아름다움에 그저 탄성만 나온다. 하얀 눈처럼 피어난 벚꽃은 터널을 이뤄 더욱 운치를 더한다. 하늘을 가릴 정도로 빼곡하게 들어선 꽃터널 아래로 바람이 불면 꽃잎이 휘날리면서 분위기는 더욱 고조된다.



사랑하는 남녀가 함께 걸으면 영원한 사랑 얻는 `혼례길` 로도 불려

신라 성덕왕 때 창건한 쌍계사 차(茶) 시배지로서의 인연도 간직


서울 여의도 윤중로 벚꽃은 비교도 안 되는 수많은 꽃들이 눈처럼 휘날리며 향기를 뿜어대는 장면은 장관이다

십리벚꽃의 출발지인 하동 화개장터는 1948년 나온 김동리의 소설 `역마`의 무대다. 소설 `역마`에는 `화개장터에서 쌍계사까지의 시오리길은 언제 걸어도 멀게 느껴지지 않았다`고 했다. 10리벚꽃길은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가로수길 100선 가운데 최우수상을 수상한, 자타가 공인하는 가장 아름다운 꽃길이다. 일제강점기인 1931년 화개장터에서 쌍계사까지 5km에 신작로가 개설되면서, 1929년부터 2년여에 걸쳐 주민들이 직접 심은 것이다.

 

신작로가 완성된 뒤 하동군의 유지들에게 자금을 갹출했고, 복숭아 200그루와 벚나무 1천200주를 가로수로 심어 지금의 꽃을 피웠다.


이곳 10리벚꽃길은 `혼례길`이라고도 불린다. 사랑하는 청춘남녀가 이 길을 함께 걸으면 사랑이 이뤄지고, 영원하다고 한다. 이 길을 따라 수년 전 하동군이 만든 산책로에는 영원한 사랑을 바라며 두 손을 꼭 잡고 어린 아이처럼 걸어가는 청춘남녀들이 수두룩하다. 이때 날리는 꽃잎을 두 손으로 받으면 그해가 가기 전에 큰 행운이 온다는 이야기도 있다.

옛날 시골장터의 정취를 물씬 느낄 수 있는 화개장터에는 도토리묵, 국밥을 파는 주막과 산나물, 녹차 등의 특산품을 파는 노점들이 줄지어 들어서 흥겨움을 제공한다. 또 호미, 낫 등 전통 농기구 등을 만드는 대장간이 있어 전통문화를 접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아이들과 동행한 가족여행자들에게는 더욱 유익한 시간이 될 것이다.

십리벚꽃길 외에도 쌍계사 곳곳에서도 벚꽃을 감상할 수 있다. 사찰 안팎으로 군락을 이루며 흐드러지게 핀 벚꽃은 하얀 잎이 햇살에 반사되어 눈이 부실 정도로 아름답다.

쌍계사는 신라 성덕왕 21년(서기 722년), 선종 육조 중 하나인 혜능스님의 정상(頂相·머리)을 모시고 당나라서 돌아온 대비, 삼법 두 화상이 꿈에서 `눈 쌓인 계곡 가운데 칡꽃이 피어있는곳(雪裏葛花處)에 정상을 봉안하라`는 계시를 받고 찾아다니던 중, 지리산 자락서 호랑이의 안내를 받아 이곳을 찾았다고 한다.

신라 성덕왕 때(722년) 지어진 절로 고색창연한 자태와 웅장한 모습을 자랑한다. 국보 한점과 보물 여섯 점을 보유하고 있으니 꼭 찾아보시길. 문화재 이외에도 차와 인연이 깊은 곳으로 쌍계사 입구 차시배지에는 기념비가 세워져 있는데 차는 신라 선덕여왕 때 당나라에서 처음 들여와 쌍계사와 화개 부근에 재배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쌍계사는 차와 인연이 깊은 곳이기도 하다. 신라 흥덕왕 3년(828년) 김대렴이 당나라에서 차나무 씨를 가져와 왕의 명령에 따라 지리산 줄기에 처음 심었다. 이후 진감선사가 쌍계사와 화개 부근에 차밭을 조성해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쌍계사 입구에 차시배지 기념비가 세워져 있어 확인할 수 있다.

 

쌍계사는 사시사철 자랑하는 멋과 맛 때문에 사찰이 지닌 진정한 보물을 언제부터인가 잃어버리고 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아니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잊고 있다는 표현이 정확할 것이다. 쌍계사의 진정한 멋과 맛은 창건역사에서 찾을 수 있으며, 그 흔적도 경내 곳곳에서 느낄 수 있다.

쌍계 석문을 지나면 차 종자를 가져와 처음으로 심은 것을 기념해 세운 차 시배지를 만나게 된다. 대 이슬을 먹고 자라 생로병사를 초월한 신선들이 즐겼다던 죽로작설차(竹露雀舌茶)의 향을 좇아 쌍계사를 찾는 일은 품격 높은 여정이다.

쌍계사 안에는 최치원이 진감선사를 기리며 글을 지었다는 진감선사대공탑비(국보 47호)가 있다. 여기에는 `그가 범패를 매우 잘하여 금옥 같은 소리가 구슬프게 퍼져 나가면 상쾌하기도 하고 애절하기도 하여 능히 제천을 기쁘게 할 만하였다`라는 대목이 기록돼 한국 불교의 옛 멋을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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