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천 은해사에서 사색을 즐기다 (9)
영천 은해사에서 사색을 즐기다 (9)
  • 등록일 2012.03.25 21:46
  • 게재일 2012.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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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고에 빚어진 지층 사이로 노송과 벗하고 걷노라니…

대구~포항 고속도로를 타고가다 청통IC에서 내려 청통방면 919번 도로를 타고 조금만 가다보면 은해사라는 푯말을 볼 수 있다. 영천시 청통면 팔공산 동쪽자락에 자리한 은해사는 사찰의 역사가 깊은 곳이다. 신라 41대 헌덕왕 1년(809년) 혜철국사가 해안평에 창건한 `해안사`가 그 유래이다. `안개 낀 팔공산 자락이 구름으로 뒤덮일 때 절 마당에서 바라본 광경이 마치 은빛 바다가 물결치는 듯하다`고 해서 `은해사(銀海寺)`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 조선 31본산, 경북 5대 본산, 조선 4대 부찰의 하나였으며 조선 인종의 태실을 수호하는 천년고찰인 은해사는 추사 김정희 선생이 말년을 보낸 곳이기도 하다. 보화루, 대웅전, 불광 등 편액마다 추사체가 보인다.
 

신라 헌덕왕 창건 이후 잇단 화마로 창건·중수 거듭한 아픔 간직

거조암 영산전 등 문화재 3점·사중 보물 60여점 등 볼거리 수두룩

은해사는 팔공산 동쪽 기슭 한 곳 전체가 경내를 이뤄 풍광이 빼어나다. 일주문을 지나면 300m에 걸쳐 조성된 송림이 아름답다. 이 길을 금포정이라 불렀다. 일체의 생명을 살생하지 않는다는 뜻. 사찰로 가는 길 중간에는 1천년을 산 참나무와 느티나무가 엉켜 있는 모양이 시선을 잡는데, `사랑나무`라 이름 붙인 재치가 재미있다.

은해사는 입구에서 대웅전까지 산책을 하는 기분으로 연인들이 걸으면 참 좋을 듯 한 코스이다. 엄청나게 높은 소나무길 사이로 가느다란 햇살이 눈부시게 비춰지고 태고에나 빚어진 듯 한 지층들이 군데군데 그 모습이 드러나 있어 사뭇 노송들과 함께 어우러져 신비감마저 돌게 하는 곳이다. 또한 소나무 사이사이로는 작은 실개천이 흐르고 있어 여름에는 시원한 냉기가, 가을에는 단풍잎이 떠돌아다니며 사람들의 감성을 어루만진다.

전국 31본산(本山)의 하나이자 대한불교 조계종 제10교구 본사로 신라 헌덕왕(809년)때 혜철국사(惠哲國師)가 해안평(海眼坪)에 창건한 사찰로 출발했으나 여러 차례 화재로 소실돼 중창과 중수를 거듭했다. 1545년 조선 인종 때에 소실돼 1546년 명종 때에 천교(天敎)가 지금의 자리로 옮겨지었으며. 법당과 비석을 세워 인종(仁宗)의 태실(胎室)을 봉하고 은해사라고 하였다고 한다.

특히 1847년 헌종 13년에 일어난 화재는 은해사 창건 이래 가장 큰 불로, 극락전을 제외한 1천여 칸의 모든 건물이 소실됐다고 한다. 이후 대웅전을 비롯해 여러 건물이 중창됐는데, 이 때 다시 지어진 대웅전과 보화루, 불광각의 3대 편액이 추사 김정희의 친필이다. 그리고 이 절과 부속 암자에는 국보와 보물로 지정된 3점의 문화재와 기타 60여 점의 사중 보물, 24동의 건물이 있다. 지정문화재로는 중국식 건축양식을 본뜬 국보 제14호의 거조암 영산전, 보물 제486호인 백흥암 극락전 수미단(須彌壇), 보물 제514호인 운부암 청동보살좌상 등이 있고, 산내 암자로는 운부암·거조암·기기암·백흥암·묘봉암·중암암·백련암·서운암 등 8개가 있다.

대웅전 옆 다방(茶房)에선 스님과 신도, 방문객이 자유롭게 어울린다.

대웅전의 현판글씨는 추사 김정희의 친필이다. 특히 본찰 자체보다 거느리고 있는 암자들이 유명한 사찰이다. 대표적인 암자로 거조암과 백흥암을 들 수 있다.

거조암은 청통면 신원리 팔공산 동쪽 기슭에 있다. 신라 경덕왕때 왕명으로 창건했다는 설과 효소왕때 원효가 창건했다는 두 설이 있다. 창건할 때 이름은 거조사(居祖寺 )였다고 한다. 이곳에는 영산전이라는 국보 제14호가 있는데 불단의 장식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이 건물은 단청이 없다. 이런 집을 백골집이라고 한다는데 처음부터 단청이 없었다고 한다. 긴 장방형 건물에 살창까지 있는 점으로 미뤄볼때 본디 법당이 아닌 경전을 보관하던 곳으로 보인다고 하는데 그 건축물이 아주 볼만하다. 고려 우왕 원년에 처음 지은 이 건물은 옆으로 긴 건물에 출입구가 하나고 통풍을 위한 트인 창살만 달려 있다. 이런 건물의 특징 때문에 원래의 용도는 경판과 서책을 보관하던 것이 아니었을까 추측하기도 한다. 전각 안에 모셔진 526분의 석조나한상이 인상적이다. 돌아보다 유난히 친근하게 느껴지는 나한상이 전생의 자신의 모습이라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이곳은 경북도에서 손꼽히는 `소원명소`로 사흘간 지성으로 기도를 올리면 소원이 이뤄진다는 전설이 있다.

백흥암 역시 극락전이 보물 제790호로, 또 수미단이 보물 제486호로 지정돼 있어 암자라기보다는 거의 사찰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성보박물관은 주지를 지낸 일타 스님의 유품을 비롯해 추사 글씨 등을 보관한 성보박물관은 지난 2009년 5월에 개관했다. 일타 스님의 집안은 친가, 외가를 통틀어 49명이 출가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은해사의 역사의 깊이를 살펴볼 수 있는 이곳에서는 보물 제1604호인 금고 및 금고거를 비롯해 추사 김정희가 쓴 현판을 볼 수 있다. 불화, 나한상, 범종, 경궤 등 진품을 감상할 수 있다. 건축 면적 462㎡(약 140평), 전면 9칸, 측면 5칸의 전통 목조건축물로 전시관과 유물 수장고 등을 갖추고 있다.

은해사 괘불화, 대웅전 아미타삼존도 등 불화들은 사찰에 걸린 복제품보다 색깔이 선명하고 훨씬 더 화려한 진품이다. 이와 함께 일타 스님의 친필화, 장삼, 사진 등 유품을 전시해 스님의 행적을 알 수 있다.

은해사는 몇 번 와본 곳이지만 매번 올 때마다 그 기분이 달라진다. 그리 관광객도 많지 않고 주변 사람들은 모두가 삼삼오오 이곳저곳에 모여앉아 담소를 나누는 모습들이 어디 한적한 공원에서 사색을 즐기고 있는 듯 평온하게 보인다. 인공폭포등과 함께 주변 산새가 좋고 천년의 고찰의 기운을 함께 느낄 수 있는 이곳 은해사를 봄이오는 길목에 한 번씩 찾아보면 어떨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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