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C 전반 축성… 학계 주목

▲ 주산성 정비복원 유적 발굴조사 제2구역의 외성벽과 물받이 시설 상태를 보여주고 있다.
고령군의 주산성이 6세기 전반대 최초 대가야 석축산성으로 밝혀져 학계가 주목하고 있다.

고령군은 지난해 12월 5일부터 이달 30일까지 대동문화재연구원(원장 조영현)에 의뢰해 고령읍 지산리 산 54-1번지 일대 5천㎡(총 연장 200m, 폭 25m) 일원에서 주산성 정비복원 유적 발굴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대동문화재연구원은 이번 조사에서 대가야 산성으로 알려진 주산성(사적 제61호)이 가야 지역 최초로 6세기 전반에 축성된 석축산성으로 확인했으며 24일 현장 설명회를 개최한다.

고령 주산성은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문무왕 13(673)년 9월에 국원성을 비롯해 목산성을 쌓았다는 기록을 바탕으로 신라성으로 추정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이산(耳山)`, 지금의 주산(主山)이 고령의 주산을 의미하는지, 초축 또는 개축을 의미하는지 명확하지 않았다.

조사 관계자는 “이번 조사에서 산성의 초축시기를 이야기할 수 있는 성벽 내부 뒷채움석 하부와 외벽 밖 하부 보강석, 보강토 아래의 정지토에서 전형적인 6세기 전반대의 대가야 유물들만이 출토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성벽의 축조에 사용된 석재의 종류나 가공법, 축조법 등이 지산동고분군 일대에서 확인되는 6세기 전반대의 대가야 수혈식석실의 벽석이나 호석의 축조방법과 같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고 덧붙였다.

또 “이밖에 성벽 상단부을 수평으로 가로지르며 만들어진 배수로, 하부 보강석과 보강토의 축조방법 등이 동시기 신라와 백제의 산성축조기술과 다른 점을 보여 주산성이 대가야 산성임을 명확하게 해 주고 있다”고 강조했다.

주산성 발굴 이전에는 합천의 대야성, 함안지역의 함안산성, 김해지역의 양동산성과 마현산성 등이 가야의 석축산성일 가능성이 제기됐었다. 또 학자들 사이에서 6세기 시대 상황에서 가야지역에 거대한 석성의 축조가 불가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이번 발굴조사를 통해 특히 대가야 중심지에서 늦어도 6세기 전반대에 대규모 석축으로 축성된 최초의 가야 석축산성으로서 주산성의 실체가 밝혀짐에 따라 그동안 고고학계에 논란이 된 `가야지역에 석축산성이 없다`는 논쟁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고령/김종호기자 jhk@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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