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종흠 시사칼럼니스트

이번 총선에서 또 신공항문제가 영남민심을 갈등으로 몰아넣고 있다. MB정부가 동남권 신공항 건설 공약을 최종 무산시킬 때와 꼭 같은 현상이 재연되고 있는 것이다.

지역의 언론보도를 보면 이번 총선 공약에서 신공항 문제를 어떻게 처리하느냐를 두고 대구·경북·경남·울산과 부산이 완전히 두 쪽으로 갈려 사활을 걸고 싸울 태세다. 수도권 언론들도 또다시 남부권의 신공항은 필요없는 것이라고 수도권 이기주의를 드러내고 있다. 정치권은 정치권대로 지역민의 여론에 편승해 총선공약에 신공항 건설을 넣느니, 빼느니 옥신각신하고 일부에선 지역표심을 노리고 특정지역을 못박아 공약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는 것이다. 영남권 민심은 정치권과 언론 동향에 따라 갈갈이 찢어져 볼썽 사나운 춤을 추고 있는 꼴이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됐는지 영남인의 자존심에 깊은 상처를 주고 있다.

사실 영남인은 옛날부터 태백산맥과 소백산맥이 만든 하나의 분지에서 하나의 낙동강 물을 먹고 살아온 전국에서 가장 응집력이 높은 공동체로 살아왔다. 영남권은 같은 지역 말을 쓰고 같은 문화를 가지고 있다. 특히 학문적으로는 위대한 영남학맥을 탄생시켰고, 음악으로는 메나리조의 소리를 만들었을 만큼 지역민들은 통합된 문화를 가진 생활공동체를 이뤄왔다. 그래서 영남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기질을 조선조 정조 때 학자 윤행임은 태산교악(泰山嶠嶽)이라 표현했다. 웅장한 기개를 가지고 있어 사람들의 존경을 받을만한 성품이라는 뜻이다.

신공항이 뭐길래 태산교악처럼 좋은 성품으로 길러진 영남권 공동체의 주민들이 이토록 아웅다웅하는지 지금쯤 스스로 돌아볼 때가 아닐까. 이대로 갈등 국면이 계속된다면 영남이란 공동체는 산산조각이 날 것 같다. 영남인이 가진 긍지도 모두 날아가버릴 것 같다. 물론 신공항은 입지할 지역민들에게는 엄청난 이익을 가져다주는 것이기 때문에 간단히 포기하거나 우격다짐으로 유치할 수는 없다. 그러나 아무리 신공항에 걸린 이해관계가 크다해도 영남인의 자존심이 멍들고 영남인의 공동체 정신이 파괴된다면 신공항의 이익보다 더 큰 것을 잃게 되는 것이다. 현실적으로도 영남인끼리 밀고 당기다 보면 수도권에서 주장하는 신공항 무용론에 힘이 실릴 가능성이 크다. 그렇게 되면 영남권 어디에도 신공항이 건설되지 못하는 사태에 이를 수도 있다.

정치권도 선거 때만 되면 표를 얻기 위해 많은 공약을 개발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이렇게 지역 갈등을 조장하는 공약은 신중해야 한다. 특히 지역의 이익이 걸린 문제는 더더욱 조심해야 한다. 설사 표계산으로만 득표전략을 짜서 선거에 승리한다해도 지역갈등을 조장하는 공약 때문에 국가의 장래가 어두워진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지역의 분열과 갈등을 가져올 가능성이 있는 공약은 이성적이고 합리적 방식으로 다뤄야 한다.

아득한 옛날 맹자(孟子)도 정치에서 이익만을 추구하는 것은 사회를 망치고, 옳은 것을 따라야 사회가 바로선다고 강조한 것은 이같은 사태를 경계한 것이다. 양(梁) 혜왕(惠王)을 만나 나라에 이익이 되는 것을 물은데 대한 답으로 “웃 사람과 아랫 사람이 서로 이익만 취하게 되면 나라가 위태로워질 것입니다”고 한 맹자의 명언은 지금 우리 정치권이 새겨볼만한 대목이다. 국민의 마음을 이익으로만 사로잡으려 들면 동네와 동네간에, 자치단체와 자치단체간에, 동부와 서부, 남부와 북부 등 모든 지역이 이해관계로 분열될 것이다. 그러면 나라는 지역간의 갈등으로 끝없는 소모적 쟁투를 벌일 것이고 국가의 통합력은 사라질 것이다. 국가의 존립이 위태로워질 수밖에 없다.

정치권과 영남지역민들은 신공항문제에 대한 소모적 주장은 이제 접어야 한다. 남부권에 신공항을 건설한다는 수준에서 뜻을 모우는 것이 영남인이 자해행위에서 벗어나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