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종흠 시사칼럼니스트

올 총선과 대선에 임하는 여야의 선거 전략을 보면 이번 선거는 단순히 집권 정치세력의 교체여부를 넘어서는 국가 운명이 걸린 심각한 각축전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총선을 앞둔 여야는 그동안 당명을 갈고 각종 선심공약이나 복지논쟁 등을 쏟아내는 등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는 일상적 선거전략을 구사해 왔다. 그러나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이 갑자기 선거에서 승리하면 한미FTA를 폐기하겠다는 뜻을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에게 공개 전달하면서 상황이 엄청나게 달라진 것이다. 사실 내치(內治)와 관련해 `성장이냐 복지냐`, `선심 공약이냐 아니냐` 등의 문제는 선거후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실행의 완급을 조절하거나 방향을 선회할 수도 있다. 그러나 세계적 초강대국들과 경제·안보의 틀을 근본적으로 바꾸거나 상호간의 친선우호 관계를 뒤집는 것을 선거 전략으로 삼는 것은 신중을 기해야 한다. 한번 뒤집으면 쉽게 바꿀 수 없고 방향이 잘못되면 국운이 쇠퇴하거나 국가존망의 위기를 맞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번 야권의 한미FTA폐기 선언은 한미관계 문제는 접어두더라도 우선 절차에서도 납득할 수 없는 점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물론 지난 국회의 한미FTA비준 과정에서 야권이 반대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번 오바마 대통령에게 전달한 공개서한에는 비준당시의 반대 내용과는 달리 재협상을 주장해 온 투자자 국가소송제(ISD)외에도 아무 설명없이 9개항을 덧붙인 것은 민주당의 독단인 것이다. 더욱이 이 10개항을 재협상으로 수용하지 않으면 한미FTA를 폐기하겠다는 것은 처음부터 폐기 수순을 밟기 위한 빌미를 만든 것으로 밖에 볼 수 없다. 한미FTA반대 서한을 전달하는 형식에서 집단적 시위를 택한 것도 국가간의 예의에 어긋나는 것이다. 우리 정부가 체결하고 우리 국회가 비준한 협정에 대해 야당이 집권할 경우 협정내용에 정한 바대로 개정이나 폐지를 추진하면 될 것을 왜 미국공관 앞에서 우리국민의 시선을 모으며 직접 미국 대통령에게 집단적으로 요청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정권 대체정당의 이같은 품격에 부끄러움을 금할 수 없다.

이번 선거는 MB정부의 부패와 실정의 반사이익으로 야권이 승리할 것이란 여론이 지배적이다. 그래서 그런지 민주통합당은 이미 선거에 이긴 것처럼 오만하게 행동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자신들의 업적으로 지지를 확보하지 못하면서 반사이익에 오만해지는 정당이 과연 믿을 수 있는 정당이냐는 비판도 쏟아지고 있다. 한미FTA는 노무현 정부에서 협정을 체결해서 이명박정부의 마무리와 함께 18대국회가 비준했다. 그 과정에서 노무현 정권 당시 정권 수뇌부였던 현 통합민주당 지도부의 핵심들이 이 협정을 적극 찬성했다. 물론 이 협정에 대해 국민들도 과반이 넘는 다수가 이를 지지했다. 다만 여당에서 야당으로 바뀐 현 통합민주당 지도부만 자신들의 소신변화에 대한 해명이나 사과, 정치적 책임에 대한 아무런 언급도 없이 이를 뒤집은 것이다. 이는 국민을 무시하고 국가장래를 도외시한 오만한 태도인 것이다.

정치권에서는 이같은 통합민주당의 입장변화를 그동안 평택미군기지철거, 제주강정해군기지 반대 등 일관되게 반미운동을 펼쳐온 이른바 진보 세력들과 연합을 위한 전략으로 보고 있다. 그렇다면 앞뒤가 맞지 않는 처신과 논리로 한미FTA를 반대할 것이 아니라 통합진보당처럼 분명하게 반미입장을 천명하는 것이 국민에 대한 도리다. 우리나라에는 미국을 반대할 자유가 있다. 눈치 볼 필요도 없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히 할 것은 국가를 경영하겠다는 정당이라면 현 시점에서 왜 반미가 국익에 도움이 되는지를 충분이 설명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렇잖아도 세계질서에서 미국 1극체제가 무너지고 중국이 초강대국으로 부상하는 상황에서 한국의 앞날은 지정학적으로 어려운 국면에 놓여있다. 일본은 독도야욕으로, 중국은 동북공정으로 한반도에 대한 패권적 태도를 버리지 않고 있다. 이런 시기에 노무현 대통령 당선전략으로 써먹었던 효선이 미선이 촛불시위 같은 반미선동을 또 선거에 써먹으면 나라의 앞날은 어떻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