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 부석사를 가다 (5)
영주 부석사를 가다 (5)
  • 등록일 2012.02.12 21:45
  • 게재일 2012.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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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은행나무잎 흐드러진 가을의 기억을 더듬다

“일요일 면회 한번오시지요”라는 군에 가있는 큰 아들 녀석의 어투에서 지난 휴가 이후 뭔가 이곳 사회생활에 대한 그리움이 아직 채 가시지 않은 아쉬움의 뉘앙스가 풍겨나와 집사람과 겨울 여행한번 제대로 하지 못한지라, 눈도 많이 왔다고 하니 겸사겸사 모처럼 여행도 할겸 흔케히 오케이 하고선 일요일 아침 일찍 서둘러 경북 영주로 향했다. 전날 하루 날씨가 봄날같이 따뜻했던 탓인지 기대했던 설경은 보질못하다가 안동을 지나면서 주변 산들에 잔설이 보이기 시작했다.

“밤에 보초서면 영하 20도가 넘어요”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막상 영주에 도착하니 피부에 와 닿는 공기가 장난이 아니다. 도로 곳곳에는 몇 일전 왔던 눈들이 아직도 쌓여 빙판을 이루고 있었다. 이곳 영주는 봉화

나 안동 등을 여행하며 몇 번 찾았던 곳이지만 매번 볼 때마다 정겨움이 묻어나는 곳이다. 사람들의 인심도 후할 것 같고, 무엇보다 아직도 주변에 많이 남아 있는 고택들 때문인지 나에겐 고향 같은 그런 모습으로 항상 다가온다.



방랑시인 김삿갓도 탄복한 태백산맥의 절경

그 속살에 품어 안긴 극락세계 `무량수전`

화엄의 큰 가릋르침 펼치던 고승의 전설이…





몸이 휴가 때보다 더 많이 빠져 얼굴이 길어 보일만큼 야윈 것 같아 안쓰럽다는 지어미의 표정이 보였는지 “요새 살 뺀다고 운동좀 많이 합니다”라고 먼저 선수 치듯 웃으며 내뱉는 말에, 입대 할 때의 철없던 모습과는 훌쩍 커버린 녀석이 대견해 보였다. 많이도 챙겨온 집사람과 음식을 나누며 무슨 할 말이 그리도 많은지 조잘조잘 몇 시간을 떠들고 나더니 그제야 환하게 돌아온 얼굴을 뒤로한 채 조금 일찍 면회를 마치고 영주시내로 나와 늦은 시간이지만 부석사로 향했다.

길가에 은행나무가 가로길에 즐비해 지난 가을에 한번 왔을 때 노란 은행잎에 반해 겨울에 눈 내린 이곳에 꼭 한번 다시 오고 싶었던 곳이다. 유독 은행나무가 많아 지난번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이곳 영주의 시목이 은행나무라고 했다. 자가용으로 여행하는 사람들은 가을에 이곳을 한번 드라이브 해보면 담양의 메타세콰이어 길, 전라도 정읍 쪽의 배롱나무길, 벚꽃으로 유명한 하동 쌍계사 가로수길 에서 느껴보지 못하는 노란 은행나무 잎이 주는 환상의 황금 길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부석사 입구에 즐비한 식당들은 어느 한 곳 맛집이 아닌 곳이 없고 인심 또한 후하다. 전에 먹은 비빔밥과 동동주 한잔이 간절하지만 점심을 너무 포식한 후라 여름이면 무지개가 피어오르는 분수가 있는 작은 연못앞 노점에서 간단히 오뎅 하나에 잠시 휴식을 하며 스케치 도구와 짐을 간단히 하고 본격적으로 올라간다.

연못에서부터 오르막길을 계속 오르다 보면 좌우로 은행나무 가로수, 좌측 산쪽 적송 가지런한 곳으로 인삼밭이 있고 오른쪽으로 사과 밭이 눈에 들어온다. 은행잎은 온데간데없고 사과도 없는 빈가지만이 앙상하다. 이 곳을 찾는 사람들은 가을이나 겨울이나 그 수가 별 차이가 없는 듯하다. 매표소 밑으로 펼쳐 놓은 할머니들의 노전풍경도 여전하다. 호박, 사과, 산나물 등 이것저것 구경하며 올라가는 재미가 솔솔하다. 입구에서 일주문과 천왕문까지 이어지는 은행나무길이 잔설과 함께 눈에 확 들어온다. 지난 가을의 기억을 더듬으며 스케치 한 장을 해본다.

조선 후기 우리의 방랑시인 김삿갓 선생은 부석사 무량수전 앞의 안양루에 올라 장쾌한 태백산맥의 경관을 내려다보며 다음의 시를 남겼다고 한다.



평생에 여가 없어 이름난 곳 못 왔더니/백발이 다 된 오늘에야 안양루에 올랐구나./ 그림 같은 강산은 동남으로 벌려 있고/천지는 부평같이 밤낮으로 떠 있구나./ 지나간 모든 일이 말 타고 달려오듯/우주 간에 내 한 몸이 오리마냥 헤엄치네./ 인간 백세에 몇 번이나 이런 광경 보겠는가./ 세월이 무정하여 나는 벌써 늙어 있네./



봉황산 중턱에 있는 영주 부석사는 신라 문무왕 16년(676)에 의상대사가 왕명을 받들어 화엄의 큰 가르침을 펴던 곳이다.

 

성벽과 같은 위엄의 9단 대석단의 돌계단을 한발 한발 오르다 안양루 누각의 마루 위로 고개를 내밀면 석등하나가 눈앞에 다가서며 밝고 환한 극락세계가 나를 반겨준다. 바로 무량수전(국보 제18호)이다. 팔작지붕의 기와선과 그 아래 여섯 개의 배흘림기둥, 소박한 격자 창문살 등이 눈에 확들어온다.

지금의 무량수전 현판은 고려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으로 안동에 피난 와 있는 시기에 쓴것이라 했다. 전체적으로는 안진경체에 가깝고 현판 뒤에는 공민왕이 썼다는 사연이 적혀 있다고 한다. 무량수전 좌측 뒤편으로 고개를 돌려 조금 가다보면 `부석(浮石)`이라는 글이 새겨져 있는 요상하게 생긴 바위가 있는데 이 설화가 재미있다.

삼국유사에 있는 설화에 보면 의상대사가 당나라에서 유학을 마치고 귀국할 때 그를 흠모하던 선묘라는 여인이 용으로 변해 이곳에 까지 따라와 줄곧 의상 대사를 보호하면서 절을 지을 수 있게 도왔다고 한다. 또한 이곳에 숨어 있던 도적떼를 선묘가 바위로 변해 날려 물리친 후 무량수전 뒤에 내려 앉았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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