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종흠 시사칼럼니스트

여야 정당들이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국민의 환심을 사기 위해 보수니 진보니 해서 평소 같은 뿌리의 사람들을 다시 모우고 당명도 바꾸면서 정강정책도 이전과는 크게 다른 내용들을 제시하고 있다. 그동안 기성정치권에 불신과 거부감을 가졌던 국민들은 반신반의하는 마음을 가지고 이를 지켜보고 있다. 흰개 꼬리 굴뚝에 3년을 넣어 둔들 검게 변하겠느냐는 비아냥이 있는가 하면 어쨌든 저런 변화를 받아들이는 것을 보면 금년 양대 선거가 끝나면 한국정치가 크게 달라질 것 같다는 기대감도 생겨나고 있다. 선거 때만 되면 변신을 추구하는 정당들의 이런 모습을 보면서 그동안 표방했던 가치와 약속을 지키지 않는 데 대한 배신감을 느낄 수도 있는 반면, 세계사의 흐름과 사회의 현실을 제대로 알고 대처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공감을 가질 수도 있다.

물론 국민의 입장에선 정당의 당명을 바꾸는 것은 인기없는 당을 호도하려는 꼼수로 볼 수도 있지만 정강정책을 바꾸고 그에 따른 총선공약의 기조를 획기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을 단순히 선거용으로만 치부할 수도 없다. 특히 새누리당(구 한나라당)과 통합민주당이 다같이 헌법에 명시된 경제민주주의를 새로운 정강정책의 축으로 삼았다는 것은 여야정당이 모두 시대의 대세를 같은 시각에서 보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일부 언론에서는 이를 두고 87년 정치민주화에서 경제민주화로 진화하고 있다고 보는가하면 `바야흐로 좌향좌가 대세`라는 표현도 했다. 이같은 대세는 `좌향좌`의 경쟁이 되든 `경제민주화`의 경쟁이 되든 여야는 이전까지 있어왔던 서로 다른 방향의 경쟁이 아닌 같은 방향의 정책으로 돌아선 것이다. 그 과정에서 보수를 표방했던 새 누리당이 민주당과 같은 방향으로 질주하는 듯한 모습은 전통적인 한나라당 지지층에게는 충격적일 수도 있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새누리당의 새 정강정책 키워드를 보면 정부의 개입, 재벌규제, 선별 및 보편 복지, 무상교육, 유연한 대북정책 등인데 이는 종전 민주당의 정강정책과 상당 수준 비슷하다. 다만 현재의 민주당은 종전 보다 더 좌편향되면서 새누리당과 다소간 차별화되고 있을 뿐이다. 예컨대 재벌세 추진, 재벌출자총액제한제 부활, 보편적 복지, 6·15, 10·4 공동선언 계승 등이 그것이다. 이같은 정강정책의 변화는 한 마디로 이번 총선에서 국민들이 어느 정도 수준의 경제민주화 공약을 현실성 있게 보느냐에 따라 승패가 결정될 것임을 예보하는 것이다. 그러나 새누리당의 정책변화에 대해서는 일부 전통지지층의 보수시비가 만만찮기 때문에 이들에 대한 설득이 또하나 넘어야 할 산이 되고 있는 것이 새로운 부담이다. 사실 새누리당의 경제민주화 시동은 이미 지난 마지막 한나라당 전당대회에서 걸렸고 그것이 새누리당으로 이어진 측면도 있다. 그러나 그보다는 신자유주의의 지도국인 미국이 2008년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공적자금을 부실금융기관에 쏟아붇는 과정에서 많은 금융기관이 실질적으로 정부지배하에 놓였고 그것이 사실상 전세계에 신자유주의의 종언을 고하게 한 것이다. 거기에 유럽의 재정위기가 덮치면서 사실상 자유주의 경제와 자본주의의 현실은 더 이상 지탱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던 것이다. 한나라당인들 어떻게 더 이상 규제완화와 자유시장경제만 금과옥조로 삼을 수 있겠는가.

문제는 복지와 정부의 간섭을 두고 그것을 좌파로 보는 시각이다. 사실 복지나 정부의 간섭은 근본적으로 우파의 정책이다. 이미 복지선진국 북유럽은 복지정책을 우파정책으로 성공시켜왔고, 정부의 간섭은 시장의 독과점에서 생기는 불공정거래를 공정거래로 유지시키는 우파정책이었다. 미국의 엄정한 공정거래정책은 우파정책의 주요한 축이 되어왔다.

다가올 총선과 대선을 맞아 여야정당의 정강정책을 좌우의 가치기준에서 판단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정책의 현실성을 가리는 것이 투표에서 현명한 선택의 잣대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