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부터 조선까지 제철역사의 산실… 노송 무성한 덕동숲과 용계정 등 고건축의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녹수청산(水靑山), 만고강산(萬古江山), 무위자연(無爲自然)….”

어줍잖는 주변머리에도 몇 가지 고사성어가 머리를 스쳐 지난다. 옛 선인들이 바로 이런 곳을 보고 글귀가 떠올랐을까? 눈이 시리게 파아란 하늘에 태양과 달이 동시에 있다. 신비하다.

혼자서 상념하며 어제 힘들었던 심신을 달래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이 곳에 와 보라 하고 싶다. 몇 일간 세상에서 가장 차갑고 매서운 바람에 온 계곡이 얼어붙고 아직 남아 있는 잔설이 굵은 소나무 밑에서 며칠전의 흔적을 이야기하는 이 곳.

포항시 북구 기북면 오덕리에 있는 덕동마을에 왔다. 지난번 여행한 옥산서원의 이언적 선생과 다소 연관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덕동마을은 양동마을에서 살던 사의당(四宜堂) 이강(1621~1688)이 거처를 정하면서 세거지(世居地)를 이룬 곳이다. 이강은 오늘의 양동마을을 있게 한 두 거두 중 한 명인 이언적(李彦迪) 선생의 동생인 이언괄(李彦适) 선생의 현손(손자의 손자)이다. 여강 이씨의 세거지가 된 덕동마을은 많은 유학자들을 배출하면서 우리 전통문화에 한 획을 긋게 됐다. 신라 때 죽장부곡 과 성법이부부곡이 형성된 이래 조선조에 이르기까지 제철과 연관된 철물기구와 무기 생산 공장이 있었던 곳으로 관인이 아니면 통행도 잘 못했다고 한다.

덕동마을에 있는 용계정(龍溪亭)과 덕동(德洞)숲은 조선 선조 임진왜란 때 북평사를 지낸 임란공신 농포 정문부의 별장(경북 유형문화재 제243호)과 마을 수구막이 숲으로 조성된 덕동숲, 자연계류 등이 잘 어우러진 명승지이다. 이곳 덕동은 `아름다운 숲 전국 대회(2006)`에서 대상을 차지한 덕동 숲이 있는 곳으로 용계정, 사우정 고택, 애은당 고택, 이원돌 가옥 등 고건축물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는 곳이다.

 

용계천의 바위 벼랑에 세워진 정자가 바로 용계정인데, 경관이 수려한 벼랑 암벽위에 계천을 굽어 볼수 있도록 세워진 정루다. 용계정은 임진왜란 당시 북평사를 지낸 농포 정문부 선생의 별장으로 조선 명종 원년(1546)에 건립되어 숙종 12년(1686)에 증축돼 원형 그대로의 모습을 거의 간직하고 있다, 또한 사우정은 살림집, 애은당은 식솔들의 피난처로 사용하던 곳이라고 한다. 정각의 왼쪽에는 호산지당이라는 연못이 있는데 이 못은 “산강수약”이라 산세는 강하고 물이 적어 인물이 배출되지 않는다 하여 현 위치에 인위적으로 물을 가두어 후세 인물이 많이 나도록 만들어진 곳이 바로 호산지당이라 한다. 현재 일반 여행객들은 잘 모르고 그냥 연못 주변을 거닐다가 별 생각 없이 지나치겠지만 이 뜻을 알고 보면 옛선조들의 지혜와 멋스러움을 다시 한 번 감회하게 될 것이다. 그리곤 오른쪽에는 큰 아름누리의 소나무 군락이 이어져 있다.

 

400년이 넘었다는 은행나무를 지나 뒷짐을 지고 마을을 슬슬 걸어 다니다 보면 구구절절 소담한 황토담장 너머 살짝 살짝 보이는 기와지붕들이 정겹기 그지없다. 애은당 고택에서 부터 일반 집들에도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기 때문에 조금은 조심스럽지만 마주하는 어르신들마다 인사를 하면 반갑게 맞아주신다. 이곳저곳 기웃거리며 잠시 언덕에 올랐다가 오른쪽 골목으로 꺾어 내려가면 사우정 고택이 나온다. 웅장하고 앞마당에서 바라보면 고택의 기운이 그대로 남아있는 느낌이다. 이곳 언덕에서 호산지당쪽 앞산을 보니 청아한 대낮 하늘에 달이 떠 있다. 말 못할 신비감이 온몸을 휘어 감는다. 다시 구비구비 골목을 지나며 스케치 몇 장을 하다 보니 어느새 주차장 까지 내려와 버렸다. 주차장 앞에는 조그마한 민속전시관이 있다. 이 곳에는 경상북도 지정 문화재 덕동 여강이씨 문중 소장 552호 67점과 각종 민속자료 1천여점이 있다고 한다. 항아리에서부터 고서적까지 많은 역사적 자료들이 좁은 공간에 진열되어 있었다. 전시관에는 많은 소중한 자료들이 진열되어 있어 앞으로 오랜 세월 보관이 이뤄지려면 현재의 전시관보다 습도 조절시설이나 환경 등을 고려해 좀더 크게 확충을 해서 다시 지어져야 되겠다 싶었다.

이곳 관장님으로 계시는 이동진옹은 양동마을에서 30세에 이곳으로 이주해 와 50여년째 이곳에 살고 계신다. 1992년 지금의 박물관 옆 옛 동사무소 건물 2층에서 처음 전시관을 오픈 했을때에 비하면 지금은 많이 좋아진 공간이라 하면서도 2층에 있는 농기구들이 자기들도 1층으로 내려달라고 떼를 쓴다는 농담을 하신다. 그만큼 현재의 공간이 부족하다는 의미처럼 들렸다.

 

“덕동 여행객들이 이곳을 찾아 관람하며 해설을 들어줄 때가 가장 보람되고 행복하다”고 하셨다. 그러면서도 값어치를 논하지 말고 옛 것을 지속적으로 볼 수 있다는 것에 의미를 두었으면 좋겠고 앞으로 후손들이 누가 이 일을 이어갈 것인지가 가장 큰 걱정이시라며 씁쓸한 웃음을 지으시던 그 모습이 돌아오던 내내 마음이 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