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종흠 시사칼럼니스트

대법원이 곽노현 서울시교육감 재판 담담 김형두 부장판사 집앞에서 계란을 던지고 항의집회를 연 사태에 대해 “법치주의와 민주주의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란 이례적 성명을 발표하고 “영화 `부러진 화살`은 전체적으로 사실 호도”라며 유감을 표명했다. 사법부에 대한 불신이 급기야 사법부 구성원에 대한 물리적 저항으로까지 번지고 있는 사태에 대한 사법부의 공식입장을 밝힌 것이다. 이같은 사태에 대해 대법원은 “어떠한 부당한 간섭이나 압력에도 흔들림 없이 헌법과 법률이 부여한 사명을 다할 것”, “국민의 목소리를 겸허히 경청하고 국민과 소통하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지속적으로 기울일 것”이라고 다짐했다.

사법행정을 총괄하는 법원행정처로서는 이같은 사태에 대한 당연한 대응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번 법원 성명의 문맥에서는 극민의 사법불신이 물리적 저항 사태에까지 이른 데 대한 깊은 자기성찰은 어디에도 없다. “국민의 목소리 경청”이나 “국민과 소통 노력”의 다짐은 수사적 부언으로만 느껴질 뿐이다. “판결을 무조건 승복하라”는 재판부의 권위적 자세를 다시 한 번 확인해주는 의미로 들릴 따름이다. 국민들이 느끼는 사법정의에 대한 부정적 정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이번에 직접 문제가 된 곽 교육감 재판의 경우만해도 법 이전에 사람의 건전한 이성과 상식으로 이해되기 어려운 판결을 한 것이다. 당시 교육감 선거에서 후보매수혐의와 관련 2억원의 돈을 준 곽 교육감은 상급심 재판 전까지 교육감직에 복귀할 수 있는 벌금 3천만원을 선고한 데 비해 돈을 받은 서울교대 박명기 교수는 징역3년과 추징금 2억원의 중형을 선고받았다. 재판부가 이같이 후보매수 혐의와 관련된 당사자에게 선고한 형벌의 심각한 불균형에 국민들이 수상쩍은 눈길을 주고 있는 것은 돈을 준 곽교육감은 후보매수와 관련한 대가성을 사전에 알지 못했다는 것이고 돈을 받은 박교수는 그 대가성을 알고 받았다는 설명이다. 돈을 준 사람은 후보 매수의도를 모르고 줬다는 것이고 받은 사람은 알고 받았다는 모순된 설명에 납득할 사람이 몇이나 될까. 정말 재판부와 일반 국민의 이성적 판단이 지구인과 `외계인`(검찰의 표현)의 차이 만큼이나 되는 것인가.

영화 `부러진 화살`에 대해 “사법테러를 미화하고 근거없는 사법불신을 조장하는 것”이란 법원 성명과는 달리 당시 이사건 소송의 주심을 맡았던 이정렬 창원지법 부장판사의 이 사건에 대한 언급은 상당히 애매하다. “변론재개 없이 그냥 원고(석궁을 쏜 김교수) 승소로 선고가 됐으면 어떨까 싶기도 하다”면서 “몇몇 법원 가족들이 이 판사에게 누구 지시를 받아 미리 결론을 내놓고 짜맞추기식 엉터리 판결을 했느냐“는 비난을 했다고 자백한 것은 실로 놀라울 따름이다. 대법원은 `근거없는 사법불신`이란 유감표명에 앞서 이같은 법원내 여러 말썽의 진위부터 가리는 것이 `사법불신`을 막는 첫 단계가 아닐까.

사실 우리는 건국이후 길지 않은 역사에서 여러차례 “법치에 대한 도전”을 겪었다. 주로 정통성이 없는 독재정권들이 자신들의 집권연장과 비정에 대한 국민적 저항을 차단하기 위해 헌법정신을 무시한 불법적 입법권을 행사해서 만든 법질서를 국민들에게 강요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것이다. 그 뒤 이같은 국민의 저항이 사법부의 재심에 의해 무죄선고가 났지만 개인과 국가의 피해는 엄청난 것이었다. 물론 판결은 신의 판단을 지향하지만 사실은 사람이 판단하는 만큼 전혀 오류가 없을 수는 없다. 그러나 독재정권의 부당한 법집행으로 일어난 사법부의 잘못은 씻을 수 없는 오점이 될 수 밖에 없고, 더욱이 앞서 제기된 “법원 가족”사이의 “짜맞추기식 엉터리 판결”이 있었다면 이는 분명히 “사법부에 의한 법치 도전”이란 비난을 받기에 충분하다. 특히 “유전무죄 무전유죄(有錢無罪 無錢有罪)”란 말이 우리 사회에 공공연히 통하는 현실은 사법부의 반성없는 법치주장을 공허한 메아리로 만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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