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해양문화 속 人·生·길 <40> 항구를 사랑한 댓잎의 노래 / 영덕 축산면 죽도산과 축산항 (2)
경북 해양문화 속 人·生·길 <40> 항구를 사랑한 댓잎의 노래 / 영덕 축산면 죽도산과 축산항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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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 2011.12.18 20:28
  • 게재일 2011.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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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여년 이어온 오목한 미항 축산항
건져 올린 대게 만큼 인생사 갖가지

죽도산 대숲길을 걸어 내려와 축산항으로 간다. 1924년 3월 일제에 의해 동해안의 명태, 정어리, 청어의 대량 어획을 위한 항구의 개발 필요성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축산항은 축산포, 축산도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리우며 점차 아름다운 어항으로 발전하였고 1971년 12월 21일 국가어항으로 지정되었다. 그리고 동해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주요 어종인 오징어, 문어, 도루묵, 대게 등 생산물의 유통과 관광산업의 발달로 영덕군의 2대 어항으로 자리 잡았다.

죽도산, 봉화산, 말미산, 와우산이 동서남북으로 둘러싸고 있는 축산항은 오목한 내항의 풍경이 무척이나 푸근하다. 이른 새벽을 가르며 바다로 나갔던 어선들은 연신 대게를 푸느라 분주하고 경매 사이렌이 울리자 판장 지붕에 앉았던 갈매기떼가 일제히 날아오른다. 판장 건물을 따라 휘어지는 도로가에 다닥다닥 붙은 상점과 횟집들은 대부분 높이가 2층을 넘지 않는다. 아직 두 자리 국번의 전화번호가 적힌 곳도 있고 유리문에 직접 쓴 간판도 남아있다. 철공소와 민박집과 식육점 사이사이엔 유독 다방이 많다. 복다방, 죽도 다방, 갈매기 다방, 동해 다방, 저 정겨운 이름의 다방들은 김 오르는 커피를 끓이며 얼마나 많은 항구의 이야기를 들어 주었을까? 축산항의 아름다운 풍경에서 결코 빠뜨릴 수 없는 것은 바로 사람들이다.



“우야노, 낮에 손님이 많아 찬이 다 떨어졌다. 팔아 묵을 상이 안된다. 지금이 멫신데 와 여지껏 밥을 못 묵었드노. 그라믄 찬이 없어도 내캉 한 술 뜰라나? 내도 지금 막 묵으려던 참인데. 방으로 드가라. 춥다”

실비식당 남금숙(65) 할머니의 말투가 마치 오랜 세월 아는 사람을 대하듯 정겹다. 염치없이 들어선 할머니의 방은 낡은 벽지 냄새와 훈훈한 온기가 가득하다. 접혀 있던 둥근 나무상을 펴놓고 벽에 걸린 사진과 할머니의 손때 묻은 살림을 두리번거리는 동안 할머니 음식 차리는 소리 요란하다.

“하마 삼십 년째 여그서 이래 산다. 영감? 울 영감 세상 뜬 지도 삼십 년이다. 식당 시작해 놓고 마 돌아가싰?? 맏이가 3학년, 둘째가 2학년, 막내가 네 살 때였다. 인자 다 치우고 막내만 남았다만 아이고 고생에 대해가는 말도 마라. 처음에는 국수를 스물 몇 그릇씩 머리에 이고 자전거에 매달고 배달을 했지. 항구에 일하는 사람들이 주문을 하면 가야지 우야노. 일하는 사람들이 어데 식당에 와가 팬하게 묵을 여가가 있노 말이다. 국수 장사 십 년을 하고 밥집을 시작했지. 어여 묵그라. 여그 낙지는 이래 생겼다. 초장에 찍어 묵으면 연하고 맛좋다.”

방금 데친 낙지에서 뽀얀 김이 오른다. 찬이 없다면서도 둥근 상은 넘친다. 할머니의 손님은 포구의 일꾼들과 경찰, 군인, 선생 등 축산항에 생의 몇 구절을 푼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집을 떠나 온 그들에게 밥은 아무리 따뜻해도 성근 것, 할머니는 누이도 되고 엄마도 되고 이모도 되어 밥을 지었고 밥상을 차리는 횟수만큼 정이 쌓였다. 고향으로 돌아간 병사들은 올망졸망한 자식을 달고 찾아오고, 새파랗던 총각 선생은 밥을 먹다 눈이 맞은 처녀 선생과 부부가 되어 찾아왔다. 그들이 기억하는 축산항에는 할머니의 밥상이 언제나 따뜻하게 차려져 있는 탓이다.

“요즘은 관공서도 새로 지아지고 공원도 맨들고 저 짝 죽도산에도 계단이 잘 나가 있지. 구경할 데가 많아. 봄에는 뭐시 미주구리 축제라카는 게 열리는데 공원에 무대로 놓고 쿵짝쿵짝하믄 관광객도 마이 온다. 미주구리에 무, 배, 양파, 쪽파, 참나물, 미나리, 물미역을 상그라 옇고 초고추장이나 막장에 비벼 묵는 막회는 을매나 인기가 좋다고. 여가 대게도 마이 잡히고 오징어도 마이 잡히고 괴기 맛이 참 좋아. 공장 같은 기 없으니 공기가 좋고 경치도 좋지”

오후 축산항은 한결 여유롭다. 대게를 숨가쁘게 풀어 대처로 실어 보낸 배가 내항에 기대어 쉬고 용접하는 수리공이 잠시 다녀간다. 고양이도 떨어진 물고기를 물고 재바르게 빈 배로 숨어든다. 오른편 죽도산 등대는 햇살에 더욱 선명하고 하늘엔 흰구름이 신나게 논다.

“대게요? 마이 잡았니더. 아까 참에 트럭으로 실아 보내고 또 작업을 하잖능교. 그란데 앤즉은 살이 그래 꽉 차지 않아가 돈으는 크게 안되지요. 다음 달 쯤 되믄 수량은 적어도 값은 좋습니더. 하모요. 마캐다 원조, 원조 하지마는 바다 밑바닥에 개흙이 전혀 없이 깨끗한 모래로만 이루어진 축산 바다 대게가 최고인기라요”

새벽 두 시에 나갔다는 6.35톤 용성호 선주 김영진(53)씨가 연신 대게를 건져 올린다. 축산서 태어나고 자란 그는 젊어서 몇 년 수리공으로 외국에 나가 일을 했다. 아버지도 어부였으나 배 한척 갖지 못했으므로 배를 살 목돈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돌아와 배를 장만하고 바다에 삶을 걸고 살아가는 그에게 축산항은 대숲 푸른 죽도산과 고운 백사장과 어린 시절 동무들을 품은 고향이다.

“어릴 적엔 천날 만날 죽도산에 기올라 갔지요. 대나무로 베어다가 딱총을 만들고 포구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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