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용도예가·계명문화대학 교수
최근 독일의 유력 일간지인 프랑크푸르터알게마이네차이퉁(FAZ)이 한류에 대해 “이것이야말로 완벽한 물결”이라며 세계 팝음악의 중심축이 한국으로 옮겨오고 있음을 기사화했다. 또한 “보편적 음악의 근원지는 지금까지처럼 미국이나 유럽이 아닌 아시아 국가인 한국에 있다”고 강조했다. 나는 이것이 자율성과 창조성이 우리의 기질과 성향을 잘 나타내는 한 경우라고 본다.

상상으로만 가득 찬 기억 속의 그곳은 참으로 아름답다. 거기에는 순수하게 증류된 아름다움, 한치의 가감도 허용되지 않는 정밀한 아름다움이 존재한다. 천혜의 풍토와 천재의 이웃을 한꺼번에 타고난 한반도를 무대로 펼쳐진 조선의 지난 시절이 그랬다. 문득 우리는 우리 것을 잃어가고 있는 것일까? 한국적인 것으로부터의 탈피며 일탈이 반드시 바람직하며 불가피한 현상일까? 반세기 후에는 더욱 격심한 세계화의 물결 속에서 우리 고유의 모든 것이 씻겨나갈지도 모른다. 우리의 도자기를 어떻게 생각했으며 무엇을 아름다움이라 여겼는가를 밝혀 둘 필요가 있을 것이다.

조선의 도공들이 쓴 물레는 모두 털털거렸다. 아무리 숙달된 도공의 정성스런 솜씨로도 중국이나 일본의 도자기처럼 완벽한 대칭의 도자기를 만들어내지는 못했다. 어딘가 선이 뒤틀리고 좌우가 안 맞고 밑이 살짝 뒤뚱거리곤 했다.

당시 조선의 도공들은 기하학적으로 완벽한 모양의 그릇을 만들어내려 애쓰지 않았다. 지극히 무심하게 그릇을 만들어나갔을 뿐이다. 그들에게는 이른바 명기나 예술품을 만들어내겠다는 욕심이 없었으며 그들에게 요구됐던 것은 감상의 대상품이 아니라 일용품이었다. 자연 맵시 있는 것보다는 튼튼한 것, 정교한 것보다는 단순한 것, 호사스러운 것보다는 소박한 것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임진왜란을 전후해서 일본의 권력자들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고 탐내던 한국의 도자기들은 모두가 이렇게 이름 없는 한국의 도공들이 소탈한 마음으로 구워낸 명기들이었다.

가장 완벽한 자연스러움은 자연스러움 그 자체마저 의식하지 않을 때 나타난다. 아무리 자연스러워지려 하더라도 자연스러워지겠다는 의식적인 노력이 있는 한 부자연스러워지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거기에는 흙냄새가 물씬거리고 생활의 이야기가 스며있고 또 눈물에 젖은 감상 보다는 눈물을 삼키는 잡초처럼 강인한 생활력이 담겨있다.

우리가 조선백자를 볼 때에 이런 것을 연상한다. 시골집 뒤주위에 놓여있는 백자, 마치 둘레의 눈에 띌세라 조심스레 숨 죽여가며 사는 은자와도 같고, 때로는 햇빛마저 부끄러워하듯 내방 깊숙이에서 곱게 자라난 양갓집 딸의 가는 목과도 같다. 백자의 흰색은 대리석처럼 차갑도록 다듬어진 것이 아니다. 어딘가 막걸리처럼 구수터분한 맛을 풍긴다. 그것은 시골길을 걷다 먼지를 뒤집어쓴 할아버지의 땀 밴 흰 두루마리와도 같고 첫아이에게 젖을 물린채 꾸벅거리는 새댁의 새큼한 젖내가 나는 흰 무명적삼과도 같다.

조선백자는 흰색의 태토로 살을 삼고 청색으로 옷을 삼아 표의를 쓰고 무엇에든 집착된 곳이 없는 마음, 깨끗한 마음, 깊은 것이 흘러나오는 근원으로서 내면적 자연미가 있는 것이다. 또한 백자의 색은 넓은 공간성을 제공하는 색이다. 여백은 다양한 가능성을 암시하며, 아직 결정되지 않은 미완결된 공간으로 부각됨으로서 심리적인 여유를 부여하는 색이라 하겠다. 이것은 허색의 상으로서 마음의 평화를 나타내며 이 평화는 생명 있는 유기체의 평화이며 유화, 진실, 사상을 나타내며 심원한 철학적 고찰의 상이 있음을 볼 수 있다.

시간의 흐름과 함께 이미지는 달라진다. 눈도 달라진다. 그러나 우리가 어떻게 보고 우리의 눈이 어떻게 달라지든 백자 속에서 자라는 큰 맛 속에 우리는 이러한 역작을 제작한 무명의 사기장들에게 존경과 감사를 드려야 하며, 경외감마저 표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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