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종흠 시사칼럼니스트
영화를 보는 내내 몇 번이고 눈물을 흘렸다. 영화 `도가니`는 어쩌면 우리 사회의 많은 약자들이 당하고 있는 비참하고 억울하고 분한 감정을 한꺼번에 담아낸 `분노의 도가니`이면서 `눈물의 도가니`였다.

작가 공지영의 소설과 이 영화는 예술의 리얼리티가 가진 대중에 대한 호소력이 얼마나 폭발적인가를 보여주는 동시에 사회적 정서를 순식간에 동일 공감 영역으로 몰아넣는 경이로운 효과를 확인시켜 준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반응을 보면 이 `도가니`신드롬은 아직 다분히 감성적 차원에서 머물고 있는 느낌이 강하다. 장애어린이의 인권유린을 다룬 이 작품이 국민 전체에 그토록 광범위하게 충격을 준 까닭은 단순히 문제가 된 인화학교라는 한 학교에 국한된 현상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또 지체부자유아의 인권에 국한된 문제로만 보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다. 지금 우리사회가 이같은 국민적 신드롬의 문맥을 차분하고 이성적으로 읽고 대처해야 하는 이유는 정서적 폭발력이 사회적 폭발로 현실화 될 수 있음을 암시하는 징후일 수도 있어서다.

물론 인화학교의 천인공노할 범죄 사실은 이제라도 재조사를 해서 철저히 응징해야 하기 때문에 경찰청이 전면 재수사에 나선 것은 당연하다.

광주교육청이 이 학교를 폐쇄조치하겠다고 밝힌 것은 당면한 문제를 응급조치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양승태 대법원장이 작품속에서 전관예우로 사법살인까지 초래한 법원 판결의 잘못에 대해 “어떤 경로로든 해명할 필요가 있다”고 한 것도 이 사건에 대한 법원 차원의 실체적 진실을 가리려는 노력으로 평가된다. 국회가 국정감사를 통해 이 사건의 감사에 나섰고 한나라당이 미성년자성폭력범죄에 공소시효를 없애는 법개정을 추진한다고 밝힌 것도 이번 사건에서 정치권의 잘못을 반성하는 모습을 보인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국민들의 눈에는 그같은 조치들이 모두 진정성을 담은 것으로 비치지 않고 국민적 분노를 비켜가기 위한 것으로 보이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이 영화의 원작자인 공지영씨는 “사람들은 지난 몇년동안 승자독식이 이뤄지는 우리 사회를 보고 분노했지만 양상은 파편화돼 있었다”면서 “그런데 이 영화에서 약한 아이들까지 짓밟히는 것을 접하고는 분노가 결집했다”고 분석했다. 작가 공씨가 분석한 내용과 이 사건에 관련된 기관들의 파편화된 반응들을 대비시켜 보면 엄청난 괴리를 발견하게 된다. 이 영화에서는 장애어린이에 대한 성폭력 인권유린을 직간접적으로 방조하고, 범죄자에게 솜방망이 처벌이나 면죄부를 주는 지배집단의 관계를 기득권 집단의 시스템화된 일상으로 고발하고 있다는 점에서 가해자 성격의 기관들이 보인 반응은 너무 표피적인 것이라 하겠다. 더욱이 승자독식이 구조화된 사회 전체에 대한 기득권 집단의 반성이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 것은 아직도 영화 `도가니`에 국민 다수가 `눈물의 도가니`가 되고 `분노의 도가니`로 변한 까닭을 모르기 때문이 아닐까.

이번 사건의 경우만해도 이전에 수없이 되풀이 지적돼 온 것들만 시정되어도 상당 수준 막을 수 있는 범죄였다. 성폭력범에 대한 처벌과 대책이 제대로 되지 않은데 대한 진단만 해도 이미 여러차레 반복돼 왔고 국민 다수가 원하는 방안까지 제시되었지만 관련기관은 사건이 터질 때만 말로 챙길 뿐 실질적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전관예우 문제도 마찬가지고, 복지시설에 대한 관리 문제도 겉핥기식으로만 맴돌았을 뿐이었다. 이것은 우리사회가 동맥경화에 걸렸음을 드러낸 하나의 사례에 불과할 뿐이다.

사회 각 분야가 양심,정의,공정,인권 등을 실현하기 위한 청결 노력들이 마비되고 부도덕, 불공정, 비양심, 반인권 등이 사회 각분야의 선순환 작동을 마비시키는 독소로 두텁게 쌓여 경화증상이 위험 수위에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미국 월가의 부도덕을 규탄하는 시위가 전국으로 확산되는 현실을 보면 승자독식의 동맥경화가 중증인 사회는 불안과 불행을 잉태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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