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환 `ASIA`발행인·작가
우리나라 `국군의 날`인 10월1일은 중국 공산당 창당일이다. 이번 토요일에 그들은 창당 90주년을 맞는다. 오늘의 중국 공산당에 공산주의는 있는가? 붕어빵에 붕어가 없는 것처럼, 중국 공산당에는 공산주의가 없다. 공산주의의 지상과제는 프롤레타리아혁명의 계급해방과 사유재산 철폐의 분배평등이다. 당연히 자본가는 타도 대상이다. 그러나 1989년 6월 천안문사태 직후에 출범한 장쩌민의 중국 공산당은 당헌(헌법)에 `사유재산 보장`을 집어넣어 사영기업 경영자들도 대거 당원으로 받아들였다. 마침내 부자(농업중심시대의 `지주`)들도 합법적이고 공식적으로 타도 대상에서 동지 신분으로 바뀌었다. 물론 그러한 변화는 현재 중국의 빛과 그림자를 만들었다.

그 빛은 중국을 G2로 성장시킨 것이다. 2008년 미국 리먼사태가 촉발한 글로벌 금융위기 때는 중국 금융이 미국 금융의 멱살을 잡을 수도 있었다. 소비에트연방(옛 소련)이 해체되고 동유럽 사회주의국가들이 연쇄 붕괴하는 세계사적 대전환기에 중국의 개혁 개방을 영도한 덩샤오핑의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라는 실용노선을 충실히 추구한 결실이다. 그 그림자는 중국을 부(富)의 편중(빈부격차)이 극심한 체제로 굳어지게 만든 것이다. 중국의 위험한 중병으로 판명된 부의 편중은 한국과 미국을 뺨칠 지경이다. 세계은행 보고서는 중국의 상위 가구 1%가 전 국민 자산의 41.4%를 차지하고 있다고 했으며, 중국 인민대 총장은 2011년 전국인민대표회의에서 상위 10%의 부유층이 전 국민 자산의 80%를 차지한다고 발표했다. “먼저 부자가 되어도 좋다”며 경제 일으키기(돈 많이 벌기)를 독려했던 덩샤오핑은 과연 중국 내부의 짙은 그림자에 대해 어느 정도 염려할까?

덩샤오핑이 살아 있다면, 아직은 공산당 독재체제를 유지해야 한다고 판단할 가능성이 높다. 경제는 자본주의로 가되, 그 반대급부의 필연으로 드리워지는 그림자를 어느 수준까지 해소하는 길을 보다 더 순조롭게 가기 위해서는 독재체제의 강압적 통치기제를 활용해야 한다고 판단할 것이라는 뜻이다. 천안문사태를 탱크로 진압한 그의 죄업을 세계의 모든 인권운동가들은 용서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역사를 길게 보면서 중대한 변화의 선택에 대한 타이밍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통치자로서의 신념을 후회하거나 양보하지 않을 것이다. 천안문 광장을 낭자하게 물들였던 제자들의 피를 영혼 속에 품고서 자유민주주의적 운동가의 길을 걸어온 류샤오보, 이 노벨평화상 수상자를 여전히 감옥에 가두고 있지만 눈썹도 까딱하지 않는 척하는 중국 공산당 지도부는 마치 “아직은 때가 아니다. 자유권을 서서히 풀어주면서 빈부격차 문제를 해결하라. 그런 다음에 타이밍을 잘 잡아서 그것을 헌법으로 보장하라”는 덩샤오핑의 지하 교시라도 받는 것처럼 보인다.

역사에 압축은 있어도 생략은 없다. 이것은 역사에 대한 나의 생각이다. `공산주의가 사라진 공산당 독재체제`라는 엄청난 모순으로 거대한 `국가 자본주의(State Capitalism)`를 밀고나가는 중국 공산당이 내부의 짙은 그림자를 해소하는 여정은 험난할 것이다. 저항과 억압의 전선이 얼마나 길고 격할 것이며, 다시 얼마나 많은 인명이 그 격랑에 휩쓸려 희생될 것인가? 한국의 경우를 돌아보면 얼마든지 추측할 수 있다. 국가 자본주의가 현재의 실체로 성장하는 여정에서 우리는 얼마나 숱한 고비를 넘고 또 넘어야 했던가?

다만 중국 공산당 지도부는 집단학습의 강점을 발휘하고 있다. 마오쩌둥은 “당을 거대한 학교로 만들라”는 집단학습 전통을 세웠고, 덩샤오핑은 혁신의 동력이 될 수많은 인재들을 서방 선진국으로 유학을 보냈다. 후진타오는 2002년 10월 `헌법 공부`를 하자며 지도부의 집단학습을 제도화했다. 벌써 70회도 넘었다고 한다. 그 학습을 통해 변화의 방향을 탐구하고 변화의 속도를 조절할 것이다. 마오쩌둥이 죽였던 공자를 부활시켜 민족주의를 강화하고 문화상품으로 앞세우는 전략도 그 학습에서 나오지 않았을까? 중국은 세계 101개국에 700여 공자학원을 개설하고 있다. 마르크스의 공산당이 아니라 공자의 공산당인 듯하다.

사람의 생각을 변화시키지 못하는 학습은 학습이 아니다. 이때 `변화`라는 말은 발전이나 체계화, 정반합(正反合)이나 궁즉통(窮卽通)을 포함하며, 당연히 혁신도 포함한다. 대체로 혁신적 변화는 학습과 사유를 바탕으로 삼은 각성에서 비롯한다. 변화를 모르는 집단학습은 세뇌교육에 불과하다. 대체 북한 지도자들은 어떤 집단학습을 하는가? 90세의 중국 공산당은 국가와 인민을 더 좋은 길로 영도할 자기변화를 위하여 `세계 정세를 관찰하고(察世情), 국가 정세를 살피고(觀國情), 당의 정세를 보는(看黨情)` 집단학습에 열성을 바치고 있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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