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에서는 일본의 도쿄(1991년)와 오사카(2007년)에 이어 세 번째로 열린 제13회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가 9일간의 열전을 치르고 4일 밤 폐막했다. 202개 나라, 1천945명의 선수가 참가해 역대 최대 규모로 펼쳐진 이번 대회에서는 초반부터 이변이 속출, 내년 런던올림픽을 앞두고 벌어진 세계 육상계의 지각 변동을 새삼 실감케 했다. 종목별로 1인자의 `물갈이`가 어느 때보다 두드러졌던 와중에서도 초미의 관심을 끌었던 선수는 `지구에서 가장 빠른 사나이` 우사인 볼트(25·자메이카)였다. 아사파 파월(29·자메이카)과 타이슨 게이(29·미국) 두 단거리 경쟁자가 각각 부상과 수술로 이번 대회에 불참하면서 볼트에게 쏟아진 기대는 지대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과 2009년 베를린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남자 100m와 200m, 400m 계주 등 세 종목을 거푸 석권한 `슈퍼스타` 볼트가 이번 대회에서도 메이저대회 3회 연속 3관왕을 재현할지에 전 세계인의 시선이 쏠렸다. 자신에게만 쏟아진 관심이 부담스러울 법도 했지만 볼트는 이번 대회에서 지옥과 천당을 오가는 롤러코스터를 타면서 이번 대회 최고의 스타로 우뚝 섰다.

볼트의, 볼트에 의한, 볼트를 위한 대회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지난달 28일 무난히 100m 결승에 올라 타이틀 방어를 눈앞에 뒀으나 충격적인 부정출발에 의한 실격을 당해 뛰지도 못하고 레이스를 접었다.

최대 이변의 희생양이 됐던 볼트는 그러나 3일 열린 200m 결승에서는 19초40이라는 역대 네 번째로 좋은 기록으로 마침내 금메달을 획득하고 엿새 만에 화려하게 부활했다.

곧이어 대회 최종일, 마지막 레이스로 벌어진 남자 400m 계주에서 마지막 4번 주자로 나서 폭풍과 같은 질주로 37초04라는 세계신기록을 작성하며 화끈하게 대회를 마무리했다.

볼트의 원맨쇼와 마지막에 탄생한 세계신기록 덕분에 이번 세계대회는 어느 때보다 드라마틱했다는 평가를 받을 것으로 보인다.

◇이변 속출..세대교체 본격 점화=대구 세계육상조직위원회가 매일 펴낸 안내책자인 `데일리 프로그램`에 표지 모델로 나섰던 우승 후보들이 추풍낙엽처럼 스러지면서 `이변`은 이번 대회를 관통하는 핵심어가 됐다.

남자 장대높이뛰기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스티브 후커(호주)를 필두로 남자 110m 허들의 다이론 로블레스(쿠바), 여자 장대높이뛰기의 옐레나 이신바예바(러시아) 등은 제 기량을 보여주지 못하고 목표했던 금메달을 수확하지 못했다.

후커는 예선에서 탈락했고 이신바예바는 세계기록을 27번이나 바꾼 `지존`답지 않게 6위로 대회를 마감했다.

로블레스는 라이벌 류샹(중국)의 팔을 낚아채 1위로 레이스를 마치고도 실격당했다.

대회 2연패를 노렸던 남자 400m의 라숀 메리트(미국)는 그레나다의 신예 키러니 제임스에게 왕좌를 내줬고 여자 400m에서도 아만틀 몬트쇼(보츠와나)가 미국과 자메이카 양강 구도를 깨고 정상에 올랐다.

볼트가 실격당한 틈을 타 그의 훈련 파트너인 요한 블레이크(자메이카)가 100m에서 깜짝 우승했다.

여자 100m에서도 `무관의 제왕` 카멜리타 지터(미국)가 올림픽·세계선수권 금메달리스트인 셸리 앤 프레이저 프라이스(자메이카)를 따돌리고 영광을 안았다.

`장거리 황제` 케네니사 베켈레(에티오피아)는 부상 후유증으로 5,000m와 10,000m 정상 수성에 실패했다.

여자 높이뛰기의 블랑카 블라시치(크로아티아), 남자 창던지기의 안드레아스 토르킬센(노르웨이), 여자 창던지기의 바보라 스포타코바(체코) 등도 거센 추격을 이기지 못하고 타이틀을 잃었다.

대신 파벨 보이치에호브스키(폴란드·남자 장대높이뛰기), 올라 살라두하(우크라이나·여자 세단뛰기), 이브라힘 제일란(에티오피아·남자 10,000m), 데이비드 그린(영국·남자 400m 허들), 다비드 슈트롤(남자 포환던지기)·마티아스 데 초르도(남자 창던지기·독일), 안나 치체로바(러시아·여자 높이뛰기) 등이 이번 대회에서 1인자로 등극하며 새로운 스타 탄생을 알렸다.

400m 계주에서 은메달, 200m에서 동메달, 100m에서 4위를 차지한 `백인 볼트` 크리스토프 르매트르(프랑스)는 첫 메이저대회에서 자신의 이름을 확실하게 알렸다.

3관왕은 없었지만 볼트를 필두로 블레이크, 지터와 펠릭스, 여자 5,000m와 10,000m를 휩쓴 비비안 체루이요트(케냐)가 2관왕을 달성하며 대구를 빛냈다.

◇기록 흉작..세계신기록 1개·대회신기록 2개=`기록의 산실` `마법의 양탄자`로 불리는 몬도트랙이 깔린 대구스타디움에서는 대회 마지막 날 볼트의 역주에 힘입어 남자 400m 계주에서 유일한 세계신기록(37초04)이 수립됐다.

남자 400m 계주의 종전 세계기록은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자메이카 대표팀이 작성한 것이다.

역시 몬도트랙이 깔린 곳이었고 당시 기록은 37초10이었다.

극적으로 세계기록이 생산되면서 역대 13차례 대회 중 세계신기록이 없는 대회는 1997년 아테네·2001년 에드먼턴·2007년 오사카 대회 등 세 개만 남게 됐다.

대회신기록은 2개가 나왔다.

여자 창던지기에서 우승한 마리아 아바쿠모바(러시아)가 71m99를 날려 2005년 헬싱키 대회에서 쿠바의 올리스델리스 메넨데스가 수립한 대회 기록(71m70)을 29㎝ 늘렸다.

여자 100m 허들에서도 샐리 피어슨(호주)이 결승에서 12초28을 찍고 우승, 1987년 로마 대회에서 불가리아의 진카 자고르체바가 세웠던 12초34를 24년 만에 0.06초 앞당겼다.

이밖에 3일까지 올해 세계최고기록 11개, 대륙별 기록 3개가 새로 작성됐다.

한편 한국 선수 중에서 남자 10종경기의 김건우(문경시청·7천860점), 남자 1,600m 계주팀(3분04초05), 남자 50㎞ 경보의 박칠성(국군체육부대·3시간47분13초)이 한국신기록을 세웠다.

또 남자 400m 계주팀이 4일 예선에서 38초94를 찍어 종전 기록을 0.1초 앞당기는 네 번째 한국신기록을 세워 마지막을 성공적으로 장식했다.

◇초반 미숙한 운영..그러나 성공적 마무리=대회 초반에 숙박·교통·음식·보안 등 여러 부문에서 문제가 드러나면서 조직위원회에 `미숙하다`는 비판의 화살이 쏟아졌다.

그러나 대회가 진행되면서 조직위는 비교적 신속하게 문제점을 개선·보완해 뒤늦게나마 운영의 묘를 살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대구 시민의 열성적인 대회 참여와 뒷바라지, 성숙한 관전 문화가 어우러져 초반의 우려를 말끔히 씻고 대구 세계대회는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