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구벌서 떨어진 별 & 떠오른 별

 

 반환점을 돈 제13회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가 훗날 ‘이변의 대회’로 기억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31일까지 기대를 모았던 스타 중 상당수가 충격적인 성적표를 받아든 사이 새로운 이름들이 ‘챔피언’자리에 속속 이름을 올리고 있다.

 ◇꼬리에 꼬리를 문 이변

 개막일부터 조짐이 이상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남자 장대높이뛰기 금메달리스트로 이번 대회에서도 강력한 우승 후보였던 스티브 후커(호주)는 첫날인 27일 예선에서 탈락했다.

 부상과 연습 부족이 겹쳐 후커는 개인 최고기록(6m)에 한참 못 미치는 5m50조차 넘지 못했다. 게다가 후커와 라이벌 관계를 이뤘던 르노 라빌레니(프랑스)도 결선에서 5m90을 넘는 데 실패해 동메달에 그쳤다.

 또 여자 1만m에서도 2연패에 도전하던 리넷 마사이(케냐)가 3위에 그쳤고, 여자 400m에서는 크리스틴 오후루구(영국)가 탈락하는 등 3차례의 이변이 첫날 대회를 장식했다.

 그러나 첫날의 이변은 이어질 사건들의 전주곡에 불과했다.

 이틀째인 28일 저녁 남자 100m 결승에서 ‘지구에서 가장 빠른 사나이’ 우사인 볼트가 총성이 울리기도 전에 출발했다가 실격당해 전 세계를 경악하게 만들었다. 볼트는 한 번만 부정 출발을 해도 바로 실격시키도록 엄격하게 바뀐 국제육상연맹(IAAF) 규정의 가장 충격적인 희생양이 됐다.

 같은 종목 준결승에서도 드웨인 챔버스(영국)가 부정 출발로 실격당했고, 한국육상의 기대주 김국영도 한번 뛰어보지도 실격당해 아쉬움을 남기게 했다.

 이에 앞서 남자 5천m와 1만m의 최강자로 군림해 ‘장거리의 우사인 볼트’라는 별명을 얻었던 케네니사 베켈레(에티오피아)도 1만m에서 15바퀴째를 돌다 기권했다. 팬들은 28일에만 두 명의 스타가 고개를 숙이고 대구스타디움을 떠나는 뒷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29일에는 1위로 골인한 주자가 실격당해 메달의 주인공이 바뀌는 사건이 벌어져 다시 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다.

 남자 110m 세계기록 보유자인 다이론 로블레스(쿠바)는 결승에서 1위로 골인했지만 경기 도중 류샹(중국)의 팔을 밀친 것으로 판명돼 실격했다. 반칙을 당한 류샹마저 그 여파로 우승에 실패해 ‘세기의 대결’을 기다렸던 팬들은 허탈한 마음으로 발길을 돌렸다.

 여자 400m 준결승에서도 2연패에 도전하던 사냐 리처즈 로스(미국)가 결승 문턱을 밟아보지도 못한 채 탈락했고, 2관왕을 노린 앨리슨 펠릭스(미국)는 결승에서 마지막 스퍼트가 부족해 꿈을 이루지 못했다.

 30일 ‘장대높이뛰기 여왕’ 옐레나 이신바예바(러시아)까지 4m65에서 더 올라가지 못한 채 주저앉으면서 초반 나흘 동안 대구 스타디움에 등장한 슈퍼스타들은 모두 고개를 숙인 채 돌아섰다.

 또 2연패에 도전한 제시카 에니스(영국)는 129점 차이로 은메달에 머물렀다.

 ◇‘어부지리’ 우승이냐, 새로운 강자냐

 거듭되는 이변의 틈에서 새로운 이름들이 대거 세계 육상의 중심에 등장했다.

 ‘황제’ 볼트가 주춤한 사이 세계에서 가장 빠른 사나이를 뽑는 남자 100m의 타이틀은 훈련 파트너였던 요한 블레이크(자메이카)에게 돌아갔다.

 남자 110m 허들에서도 세계 정상의 선수들이 서로 견제하다 함께 무너진 사이 옆에서 조용히 달리던 제이슨 리처드슨(미국)이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신바예바가 사라진 왕좌에는 파비아나 무레르(브라질)가 올라서 브라질에 사상 첫 금메달을 안겼다.

 여자 400m 시상대 꼭대기에도 ‘잘해봐야 3위’라는 평가를 듣던 아만틀 몬트쇼(보츠와나)가 올라 조국에 사상 첫 금메달을 선사했다.

 남자 장대높이뛰기 금메달은 무명의 파벨 보이치에호브스키(폴란드)에게 돌아갔고, 남자 1만m 우승도 이브라힘 제일란(에티오피아)이 차지했다.

 7종 경기에서는 타티아나 체르노바(러시아)가 새로운 ‘철녀’로 이름을 올렸다.

 여자 1만m는 비비안 체루이요트(케냐)가 우승했다.

 2009년 베를린 세계대회 5천m 우승자인 체루이요트는 1만m 우승으로 2관왕 도전에 시동을 걸어 이번 대회를 통해 새로운 스타로 떠오를 가능성을 봤다.

 체르노바 역시 최근 기량이 상승세를 타고 있어 앞으로 제시카 에니스와 맞수로 자리 매김할 공산이 크다.

 그러나 다른 선수들도 체루이요트처럼 새로운 강호로 입지를 구축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실력과 기록 모두 스타들에는 미치지 못해 아직은 ‘어부지리’라는 꼬리표를 떼기 어렵다.

 블레이크는 기록이 9초92로 기존의 우승자들에 비하면 아직 부족하고, 리처드슨도 허들에 입문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선수다.

 몬트쇼는 여전히 스타트가 느려 다듬어야 할 부분이 많고, 보이치에호프스키도 지난해 최고 기록이 5m60에 그쳐 앞으로 꾸준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 한 때의 운이었다는 평가를 면할 수 없게 됐다.

 제일란도 그동안 성인 무대에서 이렇다 할 활약을 펼친 바 없어 아직은 지켜볼 필요가 있다는 것.

 ‘깜짝 우승’도 우승이라는 점에서 이번 대회는 이 선수들에게 자신감을 키워 한 단계 도약할 기회가 될 수 있다. 이들이 스타의 몰락으로 잡아낸 기회를 살려 확고한 ‘육상의 별’로 떠오를지 지켜볼 일이다.

 

 /이곤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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