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벽은 높았다.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 10개 종목에서의 10개 본선진출 목표를 세웠으나 육상 선진국과의 격차를 다시 한번 실감했다.

한국은 27일 오전 대회 첫 경기로 열린 여자 마라톤에서 내심 메달을 노려 봤으나 개인전과 단체전에서 세계 최고의 선수들과 현격한 실력 차이만 확인한 채 실망을 안겼다. 28일 가장 큰 기대를 걸었던 남자 20㎞ 경보에서도 김현섭은 6위에 머물러 아쉬움을 남겼다.

첫날 열린 트랙과 필드 경기에서 정혜림(24·구미시청)이 여자 100m 자격예선에서 11초90을 찍고 조 1위로 본선 1라운드에 진출했지만, 28일 1라운드에서 개인 최고기록인 11초77에 0.11초 뒤진 11초88에 그쳐 준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여자 마라톤에서 한국 대표팀은 정윤희(28)·최보라(20)·박정숙(31·이상 대구은행), 김성은(22)·이숙정(20·이상 삼성전자) 등 국내 최고의 여자 마라토너 5명이 나섰으나 대구 국채보상운동공원을 출발해 대구 시내를 돈 뒤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오는 변형 루프(순환) 코스로 설계된 42.195㎞ 풀코스 레이스에서 초반부터 처지며 사실상 메달권에서 멀어졌다.

김성은이 가장 좋은 2시간37분05초의 시즌 개인 최고기록으로 전체 참가 선수 55명 중 28위에 그쳤고 이숙정과 정윤희는 각각 2시간40분23초와 2시간42분28초에 그쳐 34위와 35위를 기록했다.

내심 메달을 노렸던 단체전에서도 한국은 7시간59분56초의 기록으로 7위에 머물렀다. 한국 여자 마라토너들은 초반 5㎞ 지점에서 이미 케냐와 에티오피아 등 선두그룹에 처지며 사실상 메달권에서 벗어났다.

28일 오전 한국 대표팀 메달 후보로 가장 큰 기대를 걸었던 남자 20㎞ 경보에서 김현섭(26·삼성전자)은 아쉽게 6위에 머무르며 대회 첫 메달의 꿈이 무산됐다. 김현섭은 세계 강호들과의 경쟁에서 객관적인 실력 차의 벽을 넘지 못해 한국의 메달 가능성은 사실상 무산시켰다.

국내 남자 100m 최고기록(10초23) 보유자인 김국영(20·안양시청)은 예선에서 부정출발로 실격하며 몬도트랙을 제대로 밟아보지도 못하고 눈물을 흘려야 했다. 김국영은 27일 자격 예선에서 스타트 총성이 울리기 전 스타트블록에서 다리가 약간 움직였고 이를 발견한 심판진이 실격을 선언했다.

구미시청의 박봉고(20)는 남자 400m 예선 준결승에서 아슬아슬하게 탈락해 아쉬움을 남겼다. 박봉고는 대회 이틀째인 28일 남자 400m 1회전에서 46초42를 기록하고 5위로 결승선을 통과했으나 준결승 4조에서 4위 안에 들지 못하며 도미니카의 에리슨 허톨트(46초10)의 기록에 0.32초 모자라 준결승 막차를 타는 데 실패했다.

남자 장대높이뛰기 예선에 출전한 김유석(29·대구시청)도 자신의 최고기록인 5m66에 한참 모자란 5m35를 넘지 못하고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여자 멀리뛰기의 정순옥(28·안동시청)도 예선에서 탈락하며 눈물을 삼켰다.

2007년 세계육상선수권대회를 유치한 한국은 육상 불모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마라톤 등 장거리 선수들을 아프리카 케냐에 보내 훈련을 시키는 등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또 지난해에는 김국영과 박봉고 등 단거리 선수들을 미국으로 보냈고, 외국에서 코치를 초빙해 선진 기술을 배우도록 했다. 그러나 단기간에 육상 선진국을 따라잡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번외 경기인 남자 마라톤 단체전을 제외하면 남은 종목 가운데 메달 가능성이 높은 선수로는 남자 멀리뛰기와 세단뛰기에 나서는 김덕현(26·광주시청) 정도가 손꼽히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다.

한국은 1983년 1회 대회부터 꾸준히 선수를 파견했으나 한 번도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정식 종목에서 메달을 따낸 적이 없다. 1993년 대회 남자 마라톤에서 김재룡이 4위, 1997년 남자 높이뛰기의 이진택이 8위와 1999년 6위, 1999년 여자 포환던지기의 이명선이 10위, 2007년 남자 세단뛰기의 김덕현이 9위에 오르는 등 `톱10`은 다섯 번이 전부이다.

/이곤영기자 lgy1964@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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