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재발견- 오지마을 (하-도평동)
대구 재발견- 오지마을 (하-도평동)
  • 김영태기자
  • 등록일 2011.08.07 20:28
  • 게재일 2011.08.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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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구 도동과 평광동이 합쳐져 새로 행정명이 된 도평동도 오지마을에 속한다. 대구에 살면서도 이런 곳이 있는지를 처음 알았다는 시민들이 대다수이고 동화사를 찾다가 잘못 탄 시내버스 덕분에 80평생 처음 이곳을 방문해봤다고 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최근 들어 이곳을 찾는 이들이 많아지면서 도동 측백나무 숲과 평광 홍옥사과나무 등이 주요 방문지로 꼽힐 정도다. 물론 대구 올레길과 팔공올레길에 포함돼 있어 전국적으로 알려진 곳이다.

특히 최근에는 나무 트레킹이나 자전거 트레킹을 즐기는 동호인들이 늘어나면서 도평동은 최적지로 알려져 있다. 이곳은 10여그루의 의미있는 나무들을 직접 볼 수 있는 곳으로 정평이 나있다.

하지만 슬픈 현실을 지닌 이제묘도 있어 희비가 교차하는 곳이기도 하다.

군자나무가 있는 도동 측백나무 숲과 111년의 대구사과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평광동, 조선시대 두 명의 황제를 모신 이제묘 등은 훼손되지 않은 자연과 우직스러울 정도로 전통을 간직하고 있어 그동안 대구시민들이 잊고 살아온 대구정신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는 몇 안되는 지역으로 꼽힐 만하다.



한국 천연기념물 1호 `측백나무` · 81살 최고령 사과나무 유명

조선 고종 순종 황제 모신 `이제묘(二帝廟)` 현판만 쓸쓸히 남아



□측백나무 숲

도동 측백나무 숲이 한국의 천연기념물 1호로 지정된데는 이곳이 상록 침엽수 남방 한계선에 위치해 식물 지리학적적인 가치가 높기 때문이다.

원래 측백나무는 중국 특산 나무로 알려져 왔지만 우리 선조들이 군자의 나무로 여기며 주변환경을 아름답게 가꾸기 위해 즐겨 심던 나무로서 조선초기 서거정의 달성십경에 제6경으로 꼽힐만큼 일찍부터 빼어난 경관을 인정받은 바 있다. 도동측백수림으로 불리다가 지난 2008년 도동 측백나무 숲으로 변경하게 됐다.

불로동 화훼단지에서 동쪽으로 2km 정도 가다보면 오른쪽에 불로천을 끼고 향산이 나타나고 이곳 북쪽 비탈의 높이 100여m 길이에 60여m, 3만5천603㎡의 면적에 1천여그루의 측백나무가 자생하고 있다.

이젠 제법 알려져 하루에 30~40명의 관람객들이 찾고 지난 4월에는 학생들의 생태체험학습으로 하루에 2~300명씩 다녀가기도 했다. 도동 측백나무 숲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숨은 볼거리들이 무진장 많다.

이곳 문화해설사가 상주하는 부스 뒤편에 연리지 나무가 있다. 보호수로 지정돼 있지만 많은 관람객들이 이 나무가 연리지인지는 잘 알지 못한다. 보다 정확히 알려면 5월초에 이곳을 방문하면 명확히 알 수가 있다. 아래의 느티나무는 싹을 무성히 틔워 그 위용을 자랑하고 있지만 위쪽의 회화나무는 여전히 겨울을 느낄만큼 앙상한 가지를 드러내고 있어 이 나무가 연리지 임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특히 측백나무 숲 인근에 있는 의상대사가 창건한 관음사 쪽에는 무려 970여년이나 된 측백나무가 높이 10m, 둘레 2m의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입산이 금지돼 현장을 확인할 수가 없고 주위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또 하나의 명물은 바로 19세기 초에 지어진 구로정이다. 이곳 역시 대부분의 관람객들은 지나치기 일쑤이며 문화해설사들의 설명을 듣고 난 뒤에야 발견할 수 있는 곳이다. 향산 중턱에 위치해 있는 구로정(九老亭)으로 측백나무 숲을 자세히 관찰해야만 겨우 지붕의 기와가 보일 정도다.

방 2칸의 10평 남짓한 구로정은 조선말기 도동 인근에 사는 달성 서씨와 경주최씨 등 9명의 노 선비들이 이곳에서 시회를 열어 그 명칭이 정해졌고 이를 기리는 후손들이 지난 1933년 창건했다. 80~90도에 가까운 출입구도 출입구지만 입산 금지로 가까이 가 볼 수는 없어 역시 안타깝다.

향산 정상에는 임진왜란때 왜병에 맞서 싸운 용암산성과 옥천이 있다. 조상들의 항일정신과 호국정신을 기리기 위해 매년 10월께 도동 주민들이 합심해서 여는 용암산성 옥천문화재가 열린다. 올해는 10월9일 제6회 행사가 열릴 예정이다.

경주최씨들의 후손이면 반드시 한번은 찾아 가볼만한 곳이 숨겨져 있다. 문창공 영당이 그곳으로 최치원 선생의 사당이다. 달맞이 식당 가기전 좌측에 위치해 있고 포천과 경남 합천 해인사 옥류동 계곡 입구 등 전국에 최치원 선생의 영정이 모셔져 있는 3곳 중 한 곳이라고 이곳 문화해설사 송병선(66)씨는 설명한다.



□쓸쓸한 이제묘

측백나무 숲을 따라 10여분 가면 계곡 안에 널찍한 마을 산기슭에 자리잡은 10여채 집 중 기와집 3채로 이뤄진 오래된 집이 보인다. 이곳이 조선의 고종과 순종 황제를 모신 이제묘(二帝廟)이다.

이제묘는 구한말 영남을 대표했던 유학자 최상길 선생과 김종희 선생이 고종과 순종 승하후 상주에서 각각 망곡단(望哭壇)과 광희묘(光熙廟)를 설치했다가 일제의 감시와 탄압속에서 지난 1942년에는 첩첩산중인 지금의 동구 평광동으로 옮겼다.

이제묘를 건립해 90년대 후반 두 유학자의 4대째 장손이 부도로 토지소유권이 넘겨질 때까지 80여년 동안 매년 봄·가을 두 차례 임금을 기리는 제향을 지냈다.

40여년간 향사를 맡았던 서돈수(78)옹은 최상길 선생을 처조부로 두면서 이제묘를 지켰지만 최근 몇년전 처남의 사업실패로 부도가 나면서 이제묘가 경매 절차를 거쳐 개인에게 소유권이 넘어가 향사를 지내지 못하고 있다.

사당안에 있던 고종과 순종의 신위는 모두 치워졌고 충효를 강의하던 강례당은 텅 빈 집처럼 남아 두명의 조선 황제를 모셨던 사당이라는 자취는 이제 현판만 쓸쓸히 남아 있을 뿐이다.

대한제국이 망한 후 마지막 황제였던 두분을 혈통이 아니면서도 제사를 지내고 독립정신을 새기며 제국의 부활을 빌었던 제실은 전국 8도에 오직 대구의 이제묘 밖에 없었다.

쓸쓸한 유적이 잡풀로 뒤덮여 흔적도 찾기 힘들어 지고 있는 상황에서 과연 후대의 후손들은 대구시민들을 어떻게 평가할지 생각하니 금새 아득함이 밀려온다.

버려진 이제묘를 통해 버려져 있는 대구정신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평광 홍옥나무

도동 측백나무 숲에서 10여분 거리에 있는 평광 홍옥나무는 81살 나이로 전국 최고령 사과나무로 인정받고 있다. 반듯한 팻말은 없어도 홍옥사과나무를 보기 위해 전국에서 찾아올 정도로 유명세를 지니고 있다. 덕분에 이 나무를 보유하고 있는 재바우 농원도 덩달아 유명세를 타고 있다.

평광 버스 종점에서 우측으로 첨백당 가는 길로 접어들어 느린 걸음으로 15분 남짓 걷다보면 나무팻말로 전국 최고령 홍옥사과나무 팻말과 재바우 농원을 발견하게 된다.

1천400여평의 과수원에서 탐스럽게 열린 홍옥과 부사, 아오리 등 사과나무들 사이에 농가 바로 옆에 빨간색 팻말을 앞에 두고 있는 홍옥나무는 비록 3개의 지주목이 떠받이고 있지만 81살의 나이에 걸맞지 않게 정정한 모습을 보이며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원래 이나무는 현 농원 주인인 우희광(56)씨의 조부가 지난 1935년 5년생 홍옥나무 3그루 중 한 그루로 3대에 걸친 정성으로 높이 5m, 가지 폭 9m, 밑둥치 둘레 142㎝의 크기로 매년 15㎏짜리 상자 20박스 정도는 생산했다.

하지만 올해는 해거리를 하면서 평년의 절반에 미치지 못할 것이라고 우씨는 전한다.

홍옥나무 바로 뒷편에는 이른바 뉴턴의 사과나무로 통하는`켄트의 사과나무`를 지난 2009년에 심었다.

아이작 뉴턴이 떨어지는 사과를 보고 만유인력의 법칙에 대한 영감을 얻었다는 사과나무 종으로 전국에서 입소문이 퍼지며 국내 관광객은 물론 일본 등 외국 관광객까지 찾아와 사과를 맛보고 간다.

이에 따라 대구시는 아예 체험관광 상품인`애플투어`를 개발하고 두류동 대구관광정보센터에서 도동 측백나무 숲~평광동 사과 재배단지~둔산동 옻골의 경주 최씨 종택을 돌아보는 프로그램을 사과꽃이 피는 4월 중순~5월 초와 사과수확기인 10~11월 각각 운영하고 있다.

재바우 농원에서 나와 첨백당에는 또 하나의 전국적인 명물이 자리잡고 있다. 1945년 8월15일을 기념해 심은 광복소나무로 좌우에 은행나무의 호위를 받으며 당당하게 서있다. 광복을 기념해서 심은 나무중에는 전국에서 유일하다는 것이 이곳 사람들의 자랑이다.

우희광씨는 “사과나무의 수명이 30~50년이라는 것은 잘못 알려진 것으로 최고령 홍옥나무를 최선을 다해 관리해 오래토록 홍옥이 열리도록 하겠다”면서“3대째 오다보니 홍옥나무도 가족처럼 여겨질 정도로 정이 간다”고 말했다.

/김영태기자 piuskk@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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