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환 `ASIA`발행인·작가
문학의 기능에는 `사회의 부족한 것`을 드러내고 `부조리에 저항하는 것`이 포함돼 있다. 이것을 문학인은 특권처럼 종종 누린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주장해 왔다. “문학의 이름으로 한국 정치판을 비난하고 비판하려면 문학단체에 깊이 관여하는 문학인들이 정치판 뺨치는 짓거리를 하지 말아야 한다. 그게 아니라면 정치판을 향해 손가락질하지 말고, 그 손가락을 그러한 문학인들 쪽으로 돌려야 한다”

공자의 말씀에도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한다”는 금언(金言)이 있지만, 인간이 사회적 존재로서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한 첫 번째 조건은 `자신의 직무에 충실한 사람`이다. 문학에서는 문학적 본분에 충실한 사람이 `좋은 문학인`이다. 인생에 대하여, 사랑에 대하여, 죽음에 대하여, 사회에 대하여, 역사에 대하여, 신에 대하여, 종교에 대하여, 문화에 대하여, 생태에 대하여, 평화에 대하여, 자유와 평등에 대하여 끊임없이 질문하고 탐구하는 그 치열성과 진정성을 과연 어느 수준에서 감당해 나가야 `좋은 문학인`으로 대접받을 수 있을까? 국가의 위기를 맞은 대통령이 해법을 찾기 위해 역사를 공부하고 역사적 상상력을 펼치며 참모들과 토의하고 민심을 읽어내느라 전전반측 잠을 이루지 못하는 그 수준이어야 한다. 새로운 사업에 진출하려는 기업의 최고경영자가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하고 해석하고 참모들의 조언을 경청하며 수없이 고뇌하여 드디어 결심하는 그 수준이어야 한다. 환자의 배를 갈라놓은 의사가 한 치의 실수도 용납하지 말아야 하는 그 수준이어야 한다. 아름다운 교사가 문제아를 지도하기 위하여 번민하고 사랑하는 그 수준이어야 한다. 가난한 아버지가 식솔들을 책임지기 위해 어떤 노동도 두려워하지 않는 그 수준이어야 한다. 세상에는 그러한 수준에서 문학적 인생을 감당해 나가는 소수의 문학인이 존재한다. `좋은 문학인`이라는 말은 바로 그들에게 바쳐져야 하는 꽃다발이다.

흔히 세상의 평범한 사람들은 모든 문학인이 `좋은 문학인`일 것이라고 기대한다. 그러나 현실에는 그들의 기대감을 허황한 착각으로 만들어버리는 문학인이 상당수 존재하고 있다. 문학의 양심으로 용서하기 어렵고 문학의 이름으로 부끄러운 노릇이지만, 넓게 생각하면 그것이 다 세상의 구성요건이기도 하다. 어차피 어느 집단이든 좋은 사람, 그저 그런 사람, 나쁜 사람 등으로 구성되기 마련인 것이다.

시인, 시조시인, 수필가, 아동문학가, 소설가, 희곡 작가, 시나리오 작가, 드라마 작가, 청소년 문학가, 판타지 문학가, 평론가 등 문학인의 호칭도 갈수록 다양해지고 있다. 그들 중에서 `나쁜 문학인`은 어떤 사람일까? 문학적 본분에 충실하지 않는 사람을 가장 먼저 지목해야 한다. 인생에 대하여, 사랑에 대하여, 죽음에 대하여, 사회에 대하여, 역사에 대하여, 신에 대하여, 종교에 대하여, 생태에 대하여, 평화에 대하여, 자유와 평등에 대하여 치열하게 고뇌하지 않고 진정으로 탐구하지 않는 문학인은 이미 문학인의 자격을 상실한다. 그러나 그러한 자들이 오히려 문학으로 자기이름 팔기에 몰두하고, 패거리를 잘 짓고, 몹쓸 소문을 퍼트리고, 패거리를 조종해서 알량한 권력을 쥐려 하고, 그것으로 골목대장 같은 폼을 잡으려 한다. 젊은 시절부터 나는 그들을 문학인으로 여기지 않았지만 시인, 시조시인, 수필가, 아동문학가, 소설가 중의 어느 하나 또는 둘을 이름 뒤에 버젓이 달고 다니니 세상의 평범한 사람들은 그들을 문학인으로 알아줄 것이다.

세상의 평범한 사람들이 문학인에게 보내주는 `좋은 사람일 것`이라는 기대감에 대한 배반을 최대한 줄일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장사해야 하는 출판사에게 “제발 쓰레기 같은 작품집을 돈 받고 내주지 말라”고 해봤자 우이독경일 테니, 우선은 문예지가 작품 게재에 엄격해져야 한다. 그러나 현실에는 신인을 무더기로 데뷔시키는 조건으로 해당 문예지 대량 매입을 요구하는 문예지들도 건재하고 있다. 그 주모자는 그렇게 양산한 신인들을 마치 훈장이나 주듯이 문학단체에 가입시켜 문학단체장 선거 시기에 자기 권력행세의 수단으로 동원하거나 활용하기도 한다. 참으로 구역질나는 짓거리지만 고뇌는 없고 눈치만 빛나는 자들이니 그러지 말라고 타이를 수도 없다. 그들은 문학의 악화(惡貨)이다. 그러나 양화(良貨)를 쫓아내지 못하는 `영원히 가련한 악화`일 따름이다.

포항의 뜻 있는 문학인들이 `문학만(Literature Bay)`을 창간하여 전국적 문예지로 육성하는 가운데 동료들의 작품 게재에 대하여 더욱 엄격한 기준을 들이대는 이유도 다른 데 있지 않다. 문학의 이름과 문학의 양심을 더럽히지 말고 세상의 평범한 사람들이 문학인에 대하여 막연히 품고 있는 `좋은 사람일 것`이라는 기대감을 배반하지 않기 위해 진정한 노력을 기울여보자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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