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걷는다. 오르고 내리며 휘어지는 길이 평화롭다. 바다가 살고 바람이 살고 사람들이 심성을 놓지 않고 살아가는 길, 길 저편에 허파꽈리처럼 매달린 풍경들 꽃처럼 피고 수백 수천 년의 역사가 뿌리를 흔들지 않고 있다. 관동팔경길이라 불리는 이 길은 경북 울진군 산포리 망양정(望洋亭)에서 평해읍 월송정(越松亭)에 이르는 약 28.8km 해안길이다. 동해의 절경을 따라 이어지는 문학과 역사의 길은 소박하고 아늑한 소항의 풍경까지 품고 있어 그야말로 눈부신 선물이다.

울진버스정류장에서 약 오 리쯤 걸었을까? 망양해수욕장 부근 언덕에 망양정이 있다. 망양정회식당 바로 옆 계단을 따라 솔숲길 굽이굽이 올라 언덕에 서니 바다로 흘러드는 왕피천의 모습과 망양해수욕장의 백사장 그리고 망망대해가 한 눈에 들어온다. 예부터 해돋이와 달구경이 유명하다는 이곳은 조선조에는 숙종이 친히 들러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했고 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 송강(松江) 정철(鄭徹)등 조선 시대의 문인들도 풍광을 즐겼다.

망양정의 원래 위치는 현 위치에서 남쪽으로 10여km 떨어진 7번 국도변 절벽 위(기성면 망양리)였다. 그러나 조선 세종 때 채신보가 오래되고 낡았다고 하여 망양리 현종산 기슭으로 옮겼고 그 후 1517년 폭풍우로 넘어진 것을 중종 13년(1518년)에 안렴사 윤희인이 평해군수 김세우에게 부탁하여 중수하였으며 철종 11년(1860년)에 울진현령 이희호(李熙虎)가 군승(郡承) 임학영(林鶴英)과 더불어 현 위치인 근남면 산포리 둔산동으로 옮겼다. 그러나 세월을 감당하는 것이 어디 있으랴. 산포리로 옮긴 망양정 또한 낡아 1958년 중건하였고 2005년 완전 해체를 거쳐 지금의 모습으로 다시 태어났다. 망양정에는 숙종이 내린 `관동제일루(關東第一樓)`란 현판을 비롯하여 숙종과 정조의 어제시가 있으며 2006년 조성된 해맞이공원이 주변을 감싸고 있다.

망양정에서 내려와 산포4리에서 해안을 따라 걷는다. 거북바위와 촛대바위 등 갖가지 형태의 바위가 마을의 낮은 지붕들을 바라보고 있다. 이곳은 울진군에서 지정한 민박마을로 어느 집에 들어도 파도소리 들으며 밤을 보낼 수 있다. 뒷산 약쑥을 베어다 모깃불을 피워 놓고 평상에 둘러앉아 노부부가 들려주는 옛이야기를 들어도 좋겠다. 진복 2교를 지나 동정항에 이르자 작은 배들이 옹기종기 뱃머리를 맞대고 있다. 찰박이는 배 곁에서 주름 깊은 내외가 그물을 손질한다. `배들이 물위 댓돌에 벗어놓은 코고무신 같다`고 표현했던 전태련 시인의 시 `어부의 신발`을 떠올리며 오산항으로 간다. 해안에는 대게, 미역, 오징어 전복 등 이 지역 특산물이 그려진 축대가 바닷가를 장식한다. 가을이면 저 축대 가득 오징어가 널릴 것이다. 울진군에서 세 번째로 큰 오산항은 1종항으로 인근에서 조업하던 배들이 피항을 할 수 있는 곳이다. 아침마다 펼쳐지는 정치망 어선들의 활어 입찰 풍경은 그야말로 푸르디푸른 율동이다. 도처에 미역이 널린 오산항 봄 냄새는 또 얼마나 싱그러운가.

기성면 망양리에 이르러 `망양정옛터` 이정표 옆 골목을 따라 둔덕으로 오른다. 가파른 계단을 오르노라니 초록 숲에서 빨갛게 익은 산딸기가 쉼표처럼 고개를 든다. 찾는 이 없어 키 큰 풀들만 우거진 망양정옛터에는 늙은 소나무 몇 그루와 그곳이 망양정 터였음을 알리는 비석만이 쓸쓸히 세월을 견디고 있다. 구산항을 지나 운암서원(雲巖書院)과 평해북천교비(平海北川橋碑)를 만난다. 운암서원은 고려 말 충신 백암(白岩)김제(金濟), 물제(勿濟) 손순효(孫舜孝) 양현(兩賢)을 제향하는 서원이며 평해북천교비는 현재의 군무교 자리에 있었던 북천교의 설립 경위와 시기 그리고 참여한 사람들의 이름을 적은 비석이다. 황보천을 지나는 군무교를 건너면 드디어 월송정(越松亭) 이정표가 나온다. 평해중학교 뒷담 길을 따라 월송정을 향해 걸으며 평해 황씨의 문중 숲을 바라본다. 울창한 소나무 숲과 단아한 정자가 연못 속으로 비치는 모습이 아름답다.

관동팔경 중 제일 남쪽에 위치한 월송정은 고려시대에 창건되었고 조선중기 관찰사 박원종(朴元宗)이 중건하였으나 세월이 흘러 퇴락되었던 것을 1933년 향인(鄕人)황만영(黃萬英)등이 다시 중건 하였다. 그 후 일제말기 제2차 세계대전 중 적기(연합군)내습의 목표가 된다하여 월송 주둔 일본군에 의해 철거당하여 폐허가 되었던 것을 1969년 4월 평해·기성·온정면 출신의 재일교포로 구성된 금강회(剛會)의 후원을 받아 현대식 건물로 정자를 신축하였다. 그러나 옛 모습을 찾을 수 없다하여 1980년 7월에 옛 모습으로 복원하였다. 월송정은, 한때 달밤(月夜)에 송림(松林)속에서 놀았다하여 월송정(月松亭)이라고 했고, 월국(越國)에서 송묘(松苗)를 가져다 심었다하여 월송정(越松亭)이라고도 했으며 소나무 너머에 있는 정자라는 뜻의 월송정(越松亭)이라고도 불린다. `월송정` 현판은 80년 준공당시 최규하 전 대통령의 친필휘호로 새겨져 있다.

월송정에 앉아 내가 걸어 온 칠십 리 길, 길고 깊은 동해 자락을 펼쳐 본다. 망양에서 오산에서 기성에서 만났던 옛이야기가 둘러앉는다. 소나무숲 너머 백사장에 한 무리 새떼가 내려앉는다. 단풍잎 같은 새의 발자국 위로 파도가 다녀간다. 길 위에 또 하루의 문장을 써 내리고 노을이 진다. 경전 같은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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