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강에 도착했을 때 가이드는 여강에서 놓쳐서는 안 될 세 가지를 이야기한다. 첫째가 옥룡설산, 둘째 여강고성, 셋째가 인상여강이란다. 우리 일행은 고성의 동북쪽 상산(象山) 밑 `흑룡담`을 여강고성 관광의 출발지로 삼았다. 그곳에서 물이 흘러가는 고성 방향으로 돌길을 밟으며 느긋하게 걸었다. 길 곁 수로를 따라 풍부한 수량의 물이 끊임없이 흐른다. `세계문화유산 여강고성 강택민`이란 글씨가 있는 물레방아 앞에 멈췄다. 여강고성의 역사적 배경은 송나라 말기, 원나라 초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적한 산골 마을이나 진배없는 여강고성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1996년 대지진 때였다. 목조 건축물이 많은 고성의 특성상 큰 피해를 보았음에도 파손된 부분을 재건축하였다. 장쩌민(姜澤民)이 격려차 방문하여 `관광지로 개발하라`는 말 이후 여강고성은 1997년에는 세계문화유산으로도 지정되었고, 세계 100대 관광지 중의 한 곳으로 알려졌다.

사실 여강고성의 가치는 고건축뿐만 아니라 명, 청시기에 운남의 서상반납에서 생산된 보이차를 티벳까지 나르는 상업무역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는데 의미가 있다. 여강 고성의 사방가는 당시 상인들이 모여서 거래하던 장소다.

3.8평방킬로미터에 해당하는 여강 고성을 짧은 일정으로 다 둘러본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일행들과 물줄기를 따라 남쪽 사방가까지 걸으며 수로 옆의 카페를 기웃거려본다. 대낮이라 홍등에 불을 밝히지는 않았지만 종업원들의 손발이 바쁘다.

사방가에서 고성의 지붕 사진을 찍을 수 있는 `만고루(萬高樓)` 전망대에 올랐다. 네모반듯한 직사각형 지붕들이 마치 수평을 이루고 있는 풍경이다. 전봇대도 눈에 띄지 않는다. 폴짝폴짝 까치발로 지붕을 밟고 건너뛰면 순간적으로 저쪽까지 갈 것 같은 기분이다.

그곳에서 사진을 찍고 내려올 때 특이한 주사위가 눈에 띄었다. 6면체의 표면에 중국어와 동파문자로 재미있게 써 놓은 주사위다. 경주의 안압지관에 전시된 `주령구`처럼 주사위 표면의 글자에 따라 행동을 하게 되어 있는 주사위다. 어떤 것을 부부지간에, 어떤 것은 노래방에서, 어떤 것은 술집에서 쓸 수 있도록 그 내용도 다양했다. 예를 든다면 창일수(唱一首, 노래 한곡 부르기), 세의(洗衣, 옷 세탁하기), 완세(碗洗, 접시 닦기) 등의 내용에서 뽀뽀하기, 엉덩이 한번 만지기 등의 음란 시리즈까지 있다.

나는 오래 전 언론을 통해 들은 구족서예가 `화지강(和志剛)`씨의 가게를 들러보기로 하였다. 화지강 씨는 손발 없는 나시족 장애인인데 입으로 글씨를 썩 잘 쓰기에 인간승리의 대명사로 추앙받는 인물이다. 그의 사무실에 들렀을 때는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글씨를 받고 있었다. 시간이 걸릴 것 같아 그가 작업하는 장면 사진 몇 컷으로 대신해야 했다.

사방가에서 천천히 원형으로 걸어본다. 그러면서 바닥을 본다. 오랜 세월 이곳을 디딘 마방들의 왁자지껄한 소리가 순간 나의 머리 저쪽에서 별똥처럼 떨어진다. 말들의 걸음 저 앞으로 무한 감동이며 슬픔인 설산이 성큼성큼 걷는 말들 앞에 펼쳐진다.

장예모 감독의 `인상여강`이다. 인상여강은 옥룡설산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매머드 급 공연이다.

나시족 600여 명이 등장한다. 하루 2회 공연하는데 성수기에는 공연 횟수를 늘려 4회까지 공연한다. 무대에 출연하는 배우들이라고 해서 특별히 연극 수업을 받은 일도 없다. 그저 공연장 주변에서 농사를 짓고, 장사를 하던 사람들이다. 파격적인 무대이면서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는 무대다.

공연장에 들어가 자리에 앉는다. 강렬한 태양이 빛난다. 지정된 좌석은 없다. 그냥 빈 자리에 앉으면 된다. 붉은 수수 빛깔의 무대가 옥룡설산 앞으로 펼쳐진다. 산을 오르는 지그재그의 비탈길이 무대고, 그 비탈길 앞에 있는 넓은 공터가 무대다. 드디어 공연은 시작됐다.

무대 오른쪽 대형 모니터에서 공연에 따른 안내가 진행된다. 자외선 강한 햇살이 등 뒤에서 목살을 꼭꼭 찌른다. 변화무쌍한 날씨다. 하얗게 속살을 보이던 옥룡설산에 구름이 낀다. 햇살 뒤로 눈발이 날린다. 예측하기 어려운 변덕 날씨다. 해발고도가 높기 때문이다.

제1부 마방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차마고도로 떠나야 하는 사내들의 역동적인 춤이 앞무대에서 진행된다. 하늘을 향해 두 손을 펼치며 자신들의 운명을 알린다. 설산을 넘어야 하는 말들의 말발굽 소리. 다닥다닥! 히히히 이랴! 붉은 비탈길을 말들이 달리며 올라간다. 앞쪽에서만 펼쳐지는 공연이 아니다. 어느 순간 오른쪽에서, 왼쪽에서, 뒤쪽에서 배우는 등장하고 관객의 눈길을 끌어당긴다. 검은 티에 흰 바지, 야크의 흰 털옷을 걸진 사내들의 춤사위가 붉은 황토와 대비되면서 관객은 자연스럽게 공연에 빨려 들어간다.

제2부에서 펼쳐지는 술판. 도박. 사내들은 옥룡설산을 넘어 먼, 먼 곳까지 사랑하는 가족을 두고 떠날 때 `인생이 무엇인가?` 한없는 회의에 빠지게 될 것이다. 덧없음, 자포자기, 그러다가 다시 생존의 본능을 깨닫게 되는 술판! 허무함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은 어디에 있단 말인가. 몽롱함을 가져다주는 술. 그 힘을 술에서 그들은 찾지 않았을까? 마신 술에 취해 길바닥에 갈지(之) 자로 누워버린 사내들. 술에 취한 지아비를 찾는 여자들. 여자들이 붉은 황토의 비탈길을 오른다.

제3부 미련과 믿음, 인간의 한계는 어디에 있을까? 그들이 이루지 못하는 현실을 훌쩍 뛰어넘어 완전한 사랑을 이루게 하는 곳, 그곳은 그들에게 옥룡설산 속의 신비한 유토피아가 아닐까. 그들이 생각한 그곳은 `옥룡삼국`이란 천당이다. 그곳 사람들이 이상향으로 여기는 옥룡삼국. 지상에서 이루지 못한 사랑을 위해 자신의 몸을 던지는 연인, 그들을 배웅하는 사람들. 꿈이 현실로 이루어지는 옥룡삼국이 제 3부에서 슬프게 펼쳐진다.

제4부는 소수민족의 노래가 이어진다. 10개 소수민족들이 자신의 의상의 입고 무반주로 `타도`란 민요를 부른다. 제일 뒤쪽 옥룡설산 앞 무대에 우뚝 선 사내들의 의젓함도 노래의 배경이 된다.

제5부는 북춤으로 펼치는 제사다. 사방에서 북을 들고 등장하는 배우들, 어느 순간 내 앞에서, 옆에서, 뒤에서 북춤은 펼쳐진다. 북춤 사이 축문을 낭송한다. “우리들의 능력은 우리 마을을 관통하는 장강의 물을 다 마실 수 있으며,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은 옥룡설산이 지켜줄 것이며…” 정신을 쏙 빼 놓은 주변의 북춤이 북소리와 어울려 절정을 이룬다.

제6부는 옥룡설산을 향해 올리는 기도다. 특히 이 장면은 객석에 앉아 있는 관객들도 배우들과 함께 일어나 기도를 드리게 되는데 무병장수와 행복을 옥룡설산을 통해 기원하는 내용으로 대미를 장식한다.

전통에 따르며 촌스럽게(?) 살던 나시족들의 생활 모습이 `인상여강`으로 새롭게 변모되었다고 한다. `인상여강` 자체로 수많은 사람들이 일거리를 찾게 되었으며, 배우들은 한 달에 우리 돈으로 60여만 원의 출연료를 받는다고 한다. `인상여강` 공연은 이곳 문화의 새로운 패턴을 열었다고 볼 수 있다. 세계 여러 곳의 많은 사람들이 장예모 감독의 `인상여강` 쇼를 보기 위해 비행기에 오른다고 하니 그 말이 거짓은 아닌 것 같다. 내 자신이 그런 사람 중의 하나였으니 그것은 확실하다.

백문이 불여일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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