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경당의 사랑채,선향재 처마 끝의 움직이는 차양
창덕궁 연경당의 대문인 장락문(長門)을 지나 행랑마당으로 들어서면 두 개의 중문(中門)이 보인다. 그 중 동쪽에 위치한 솟을대문 구조의 장양문으로 들면 바로 사랑마당이 된다. 사랑마당을 향해 중문간에 연접해 있는 행랑채는 광과 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장양문을 지나 사랑마당에 들어서면 정면에 사랑채인 연경당이 마주 보이고 동쪽으로는 서실인 선향재(善香齋)가 서향을 하고 자리해 있다.

특이하게 사랑채가 안채와 붙어서 연속된 동(棟)으로 배치되어 있으나 자세히 보면 사랑마당 사이에 나지막한 담장을 둠으로써 남성의 공간인 사랑채와 여성의 공간인 안채를 구분하고 있다. 이것은 일반 사대부집 사랑채와 안채가 앞뒤로 위치한 것과는 다른 배치 방법이다. 사랑채는 좌측에서 2칸 온돌침방, 2칸 온돌 사랑방, 2칸 대청, 1칸 누마루 순으로 구성돼 전형적인 조선시대 상류주택의 평면구성을 하고 있다. 사랑채는 주인양반의 공간으로 항상 문객들이 끊이지 않았을 것이다. 반기는 주인의 모습은 볼 수 없지만 손님이 되어 사랑채로 들어서 본다.

사랑채 동쪽에는 양쪽에 온돌방을 두고 중앙에 대청을 둔 선향재라 부르는 서고(書庫)가 서향으로 자리 잡고 있다. 선향재는 `좋은 향기가 서린 집`이라는 뜻이다. 여기서 좋은 향기란 책 향기를 가리키는 것 같다. 사랑마당은 사랑채와 선향재로 적정한 정도로 둘러싼 위요(圍繞)감을 가진 형상을 하고 있다. 또한 선향재는 그 이름답게 책을 읽고 보관하는 곳이므로 건물 앞쪽에 따로 동판으로 지붕을 내어달아 햇빛을 막고 있다. 그리고 이 동판 지붕 가장자리에 정자살로 짜여진 문짝 모양의 차양을 달고 이를 조절할 수 있게 끈을 달아 놓은 것이 아주 특이하다. 천정에는 이 차양을 올리고 내릴 때 쓰는 도르래를 설치해 놓았다. 이 차양은 단순히 햇살을 막아 주는 기능만 가진 것이 아닌 듯하다. 필자의 생각으론 오히려 이것은 하인들이 끈을 오르내리면서 선향재 안에서 독서를 하고 있는 주인을 위해 잔잔한 바람을 일으키는 도구로 사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사랑채의 선향재 뒷동산에는 나지막한 단을 지어 화계(花階)를 만들고 동산 위에는 단청을 하지 않은 농수정(濃繡亭)이라는 정자를 두었는데, 정면 1칸 측면 1칸의 겹처마 네모지붕으로 지붕 꼭대기엔 아름다운 절병통이 꽂혀 있다. 정자 4면의 창은 완자(卍字)무늬의 사분합(四分閤) 들개문으로 하여 모두 들어 올릴 수 있게 하였다.

사랑마당에서 가장 눈에 띠는 것은 역시 사랑채와 안채를 나눈 담인 것 같다. 이를 `내외담`이라 하는데 이 담을 볼 때 조선시대의 남녀유별이 얼마나 각별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내외담에 문이 있긴 하지만 손님이나 식객이 집안에 있을 땐 이 문은 언제나 굳게 닫혀 있어야 하는 것이 당시 양반집의 법도였다고 하니 연경당 사랑채 마당에서 내외담을 따라 들면서 당시의 법도를 상상해 볼 수 있다.

/영남이공대 교수

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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