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희미한 옛 사랑의 그림자 `라는 시로 잘 알려진 김광규 시인의 열 번째 시집이다. 한양대학교 독문학과를 정년하면서 펴낸 시집 `시간의 부드러운 손`(문학과지성사, 2009)이후 4년만이다. 우리의 소시민적 삶과 우리 시대의 부정적 징후들을 포착하여 풍자와 비판적 시선으로 그려낸 그의 시 세계가 아홉 번째 시집부터 조금씩 그 변모를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시인의 가족과 자기 삶에 대한 회고와 성찰, 자연에 대한 깊은 응시에서 길어 올린 삶의 예지라고 할 수 있다. 그리하여 최근 김광규 시인의 노래는 과거에 비해 좀 더 내면적이고 관조적 성격을 띠고 있다.

“복실이가 뒷다리로 일어서서/창틀에 앞발 올려놓고/방 안을 들여다본다/아무도 없는 줄 알았나 보다/오후 늦게 마신 커피 덕분에/밀린 글쓰기에 한동안 골몰하다가/무슨 기척이 있어/밖으로 눈을 돌리니/밤하늘에 높이 떠오른/보름달이 창 안을 들여다본다/모두들 떠나가고/나 홀로 집에 남았지만/혼자서는 아닌 셈이다”(`나 홀로 집에`전문)

인용한 시가 우리에게 조용히 말해주는 것처럼 우리의 인간의 삶은 혼자서가 아니라 함께하는 것이다. 자연을 비롯한 주변의 존재들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을 우리가 인식한다면 마감의 시간으로 치닫는 지구의 삶도 다시 생명의 길로 이어갈 것이다. 김광규 시인의 이번 시집을 나는 어느 회사의 광고 문구를 빌려 “소리 없이 강하다”고 평하고 싶다. 자연의 미미한 기척이나 우리 사회의 작고 약한 존재의 삶에 대한 깊은 응시로 삶의 존재적 의미망을 조용히 노래하는 김광규의 시는 참으로 소중하다.

/이종암(시인)

저작권자 © 경북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