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정부 전문가로서 한국인 최초로 스톡홀름 챌린지상(세계유일의 전세계 정보화 프로젝트 시상제도) 심사위원으로 위촉돼 이름을 떨치고 있는 인물이 있다. 바로 경북 울진군 기성면이 고향인 김찬곤 서울 송파구 부구청장이다.

김 부구청장은 영일군 청하초등학교와 중학교를 거쳐 경북고와 서울대 무역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행정대학원과 미국 조지아주립대 행정학 석사, 그리고 늦깍이 유학생활로 미국 뉴저지 주립대 럿거스 대학에서 행정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학구파다.

1980년 행정고시로 공직에 입문한 김 부구청장은 서울시 지하철 운영준비반장, 강남구 건설국장, 서울시장 정책비서관, 감사담당관, 시정개혁단장, 디지털미디어시키 추진단장, 정책기획관, 구로구 부구청장, 서울시 인재개발원장, 한강사업본부장을 역임했다.

그를 만나 어린시절과 고향에 관한 얘기, 학창시절, 그리고 공직자로서 보람있었던 일 등을 들어봤다.

<편집자주>

-어린 시절 고향에서 지낸 추억이 있다면.

◆어릴 때 소 먹이는 일을 하기 싫어 꾀부리고 있으면 어머님이 `돈 5원 줄게. 소먹이러 가라`고 했다는 얘기가 일기에 쓰여 있다. 지금과는 화폐가치가 엄청나게 달라졌구나 실감이 났다. 또 어릴 때 책을 좋아해서 소를 먹일 때 학교 도서관에서 빌린 책을 열심히 읽었다. 주로 동화책이나 위인전을 즐겨읽었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김 부구청장은 이런 추억들을 얘기하면서 초등학교 4학년때인 1967년 3월부터 1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썼던 일기장을 기자에게 보여줬다. 그는 지금도 소중하게 보관하고 있는 이 일기장으로 초등학교에서 상을 받았고, 아이들도 이 일기를 읽어보고는 아빠의 어린시절을 들여다볼 수 있어 매우 재미있다는 반응이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 일기를 손자까지 가보로 물려 줄 생각이라고 했다.

-어릴때 꿈은 무엇이었나.

◆초등학교때 문예부에서 글짓기를 즐겨했다. 그래서 어릴 때는 시인이 꿈이었다. 그러나 경북고등학교에 진학한 뒤 친구들과 많은 얘기를 나눈 끝에 공직자를 꿈꾸게 됐다. 서울대 상대 2학년때부터 행정고시를 준비해서 대학 4학년 때 합격, 공직자의 꿈을 이뤘다.

-학창시절은 어떻게 지냈나.

◆중학교때 전교 수석으로 졸업했으나, 가정형편때문에 어렵게 공부했다. 실제로 경북고등학교에 원서를 내려고 했더니 부모님이 `대구서 하숙시킬 형편이 안된다`고 하시면서 포항에 있는 학교로 진학을 권유했다. 교감선생님께 이 얘기를 했더니 “명문인 경북고등학교에 한명이라도 보내는 게 선생님들의 꿈인 데, 그렇게는 안된다”고 하시면서 “책임지고 가정교사를 하면서 공부할 수 있게 헤 줄테니 원서를 내라”고 했다. 결국 선생님들의 주선으로 3년 내내 입주 가정교사 생활을 하면서 공부를 할 수 있었다.

-함께 학창시절을 보낸 친구들을 소개한다면.

◆고교 동기 가운데 유영학 전 보건복지부 차관, 금감원 권혁세 원장, 청와대에는 김두우 실장, 국회에는 경기도 화성·동탄지역 박보환 의원, 민주당 김부겸의원 등이 함께 학창시절을 보낸 친구들이다.

-서울대를 다닐 때는 어떻게 했나.

◆서울대학교 입학때도 원서를 낼때 부모님들은 대학등록금을 못내니까 경북대학교에 진학하라고 했다. 하지만 주변에서는 서울 가면 어떻게든 학교에 다닐 수 있다며 서울대 응시를 권했다. 결국 첫학기 등록금은 부모님이 내주셨고, 1학년 2학기부터는 청하면 고현리 고향분이 독지가로 나서 등록금과 학비를 다 대준 덕분에 학비 걱정을 않고 열심히 공부할 수 있었다. 그분에게 이 자리를 빌어 감사의 뜻을 전하고 싶다.

-공직은 어디서 어떻게 시작했나.

◆고시합격후 첫 보직이 서울시청 상정과 산업경제국에서 일했다. 첫 업무가 가락동 농수산물공사를 설립하기 위해 계획하고 토지보상을 하는 업무를 맡았는데, 땅 주인들의 문을 두드려 사인을 받는 등 집집다마 다니면서 어렵게 일했던 기억이 난다.

-서울시 근무때 가장 보람있었던 일은.

◆1999년 서울시에 우리나라 최초로 각 부서별, 구청별 공무원의 청렴도를 측정하는 지수를 개발한 일이다. 뒤에 국민권익위원회에서 이 제도를 채택, 더 큰 보람을 느꼈다. 또 하나는 감사담당관으로 일할 때 세계 최초로 민원 온라인 공개 시스템 개발을 주도한 일이다. 시민이 신청한 인허가 민원처리과정을 실시간으로 어느 공무원이 어떻게 처리하는 지 투명하게 알 수 있게 1999년 서울시홈페이지에 공개해 호평을 받았고, 이후 전국으로 확산됐다. 이 제도는 그해 중앙일보 10대 히트 행정에 선정되고, 2000년 정부 공공부분 혁신대회 우수상을 받았다. OECD, UN, 월드 뱅크의 국제세미나에서도 좋은 거버넌스의 우수사례로 소개됐다.

-공무원생활을 하다가 46세의 나이로 유학길에 올라 화제가 됐던데.

◆공무원 생활을 하는 중 뉴저지에서 열린 미국 행정학회에서 서울시 혁신사례를 발표할 기회가 있었다. 그 때 뉴저지대 행정학과장을 만나 입학허가와 장학금을 간곡하게 부탁한 끝에 허락을 받아서 미국유학에 오를 수 있었다.

-구로구 부구청장으로 근무할 때 기억나는 일이 있다면.

◆국내 최초로 유헬스 케어(U-Healthcare) 시스템을 도입했던 게 가장 기억에 남는다. 이 제도는 동사무소에 간호사를 배치해 첨단장비를 이용해 저소득 주민의 협압, 혈당, 비만, 호흡기 등을 진단하고, 이 정보를 온라인망으로 보건소 의사에게 전달, 건강상태를 분석해 처방을 핸드폰 문자메시지로 전송하는 제도다.

-30여년의 공직생활 가운데 아쉬웠던 일이 있다면.

◆서울시에서 한강사업본부장을 맡아 토·일요일에도 한강을 둘러보며 열심히 일했는 데, 1년 남짓밖에 근무하지 못해 좀 더 많은 일을 하지 못한 게 아쉬웠다. 지금 완공단계에 있는 한강의 인공섬프로젝트도 그 당시 홍수때 사고위험을 우려한 국토해양부가 허가를 내주지 않으려 하는 것을 전문가들을 동원해서 수차례의 자문회의와 설계변경 등을 통해 결국 허가를 받아냈던 기억이 난다. 오는 9월에 인공섬이 오픈된다니 공사현장을 지날 때 마다 보람을 느낀다.

-공직생활을 하면서 신조가 있다면.

◆나는 공무원으로서 국민을 위해서 옳은 일이라고 생각하면 위험을 무릅쓰고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흔히 말하는 `공무원 철밥통`이란 말을 무척 싫어한다. 단단한 각오와 배짱으로 일을 추진하되, 전문가의 자문을 받아 완벽하게 업무를 처리한다는 각오로 일을 해왔다. 평소에 나는 자다가도 업무에 대한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메모를 하고 업무에 반영한다. 나는 꿈속에서도 고민할 정도로 업무에 매진하면 해결책이 다 나온다고 믿는다.

-송파구청 부구청장으로서 어떻게 일하고 있나.

◆내가 발령받아 가는 곳마다 일을 좋아하는 사람이 왔다고 긴장하는 분위기가 있다. 그래서 요즘은 즐겁고 재미있는 직장을 만드는 데 힘쓰고 있다. 예를 들어 한달에 한번, `출근하고 싶은 날`을 만든 뒤 내가 여장을 하고 나타나 맵시를 뽐낸 적이 있었다. 직원들이 못알아보고 재미있었다며 즐거워했다. 볼만한 영화가 있으면 직원들에게 영화티켓을 선물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1천400명에 이르는 송파구청 직원들간 공동체를 조성하기 위해 `국간 벽 허물기 운동`을 펼치고 있다. 한 개국 팀별로 미팅을 주선하고, 식사와 간담회를 열고있다.

-송파구청에서 가장 중점추진하고 있는 현안은.

◆4년뒤면 아시아에서 최고 높은 빌딩인 잠실롯데 123층 555m짜리 건물이 들어서게 되는 데, 이 건물의 건축허가를 지난해 내가 내줬다. 이 건물은 우리나라 랜드마크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이에 따라 중국의 관광객이 많이 올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송파구를 서울의 관광특구로 지정해달라고 요청해놓고 있다. 이밖에 문정동에 광진구의 동부지청, 지검을 이전해서 법조단지를 만들고, IT·BT단지도 만드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공직자로서 꼭 이루고 싶은 일이 있다면

◆앞으로 스마트한 사회, 정부가 돼야 한다. 나는 행정기관을 전혀 방문하지 않고도 직장과 가정에서 모든 민원처리를 할 수 있도록 편리한 사회를 만드는 것을 꿈꾼다.

/김진호기자 kjh@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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