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힐튼의 소설 `잃어버린 지평선(LOST HORIZON)`의 소재가 된 곳 `상그릴라`. 하재영 시인의 중국 운남 기행문 `상그릴라를 찾아서`를 4회에 걸쳐 연재한다. 이상향의 도시를 찾은 시인의 발길 앞에 진정 평화와 아름다움이 존재하는지.

삶의 한 길목에서 낯선 곳을 찾는다는 일은 용기며 축복이다.

반복되는 시간의 한 폭을 가로 세로로 길게 찢고 그 구멍으로 떠난 여행.

2011년 2월 하순 어느 날 난 넓은 중국 땅 운남성에 있었다. 우리에게 보이차로 널리 알려진 운남. 구름의 남쪽 운남(雲南).

난 운남의 중심 도시 곤명(昆明)에서도 한참 북동쪽 상그릴라로 향하고 있었다.

해발 3천459m의 도시 상그릴라는 티벳어로 `내 마음속의 해와 달`이란 의미를 담고 있다. 중국 정부는 1998년부터 중띠엔(中甸)을 제임스 힐튼의 소설 `잃어버린 지평선(LOST HORIZON)`의 소재가 된 곳이라 해 향격리납(香格里)으로 바꾸고 상그릴라라 쓰기 시작했다.

상그릴라에 다가갈수록 무엇이 나를 그곳으로 향하게 했을까?

그것에 대한 인식이 깨달음처럼 조금씩 다가온다.

“중국의 운남을 통과하는 세 개의 강이 장강, 란창강, 로강입니다. 장강 상류를 진샤(金沙)강, 하류는 양쯔(陽子)강이라 부르는데 무려 6천300km로 세계에서 세 번째로 긴 강입니다. 장강이 직선으로 흘렀다면 베트남으로 흘러 남지나해로 빠졌을텐데, 석고진 `장강제일만`에서 U자로 돌기 때문에 중국 국경을 벗어나지 않습니다. 이곳 사람들은 장강을 어머니의 강이라고 하는데 상그릴라로 가기 전 꼭 들러봐야 할 곳이 호도협입니다.”

상그릴라로 가는 도중 동행한 조선족 가이드 오 군의 설명이다. 그러고 보니 오래 전 화남과 화중으로 나누는 강이 양쯔강이라 배웠던 기억이 떠올랐다.

장강의 흐름 중 첫 번째로 꺾이는 곳이라 많은 관광객의 발길을 붙잡는 곳이 `장강제일만`이다.

그곳에서 동북쪽으로 방향을 바꾼 장강(金沙江)은 5천m 이상의 하파설산(哈巴雪山:5천396m)과 옥룡설산(玉龍雪山:5천596m) 협곡 사이로 들어가 `호도협(虎跳峽)`이란 절경을 만든다. 아마도 장강이 U자로 방향을 틀지 않았다면 중국 5천년 역사는 지금과 많이 달라졌을 것이라고 한다.

여강을 출발한지 한 시간 반 지나서야 우린 장강제일만이 보이는 곳에 도착했다. 그곳에 얽힌 인물들, 제갈공명, 칭기스칸의 손자 쿠빌라이칸, 홍군의 하룡 장군에 대해 들으면서 말이다.

장강제일만과 관련된 역사적 인물을 이야기하며 잠시 쉬었다가 호도협으로 향했다.

옥룡설산쪽 호도협 관광을 위해서는 진장로(곤명에서 상그릴라 가는 길)에서 벗어나 옥룡설산을 바라보며 계홍교를 건너야 한다. 계홍교는 진샤(金沙)강에 놓인 낡은 다리로 차에서 내려 차량은 차량대로, 사람은 사람대로 건너야 한다. 건넌 다음 다시 차를 타고 호도협 주차장까지 가야 했다.

호도협 주차장에 도착한 우리가 옥룡설산 쪽 강변을 걷기 시작한 때는 오후 1시 조금 넘어서였다. 호도협은 그 길이가 20km로 협곡 입구의 해발이 1천800m나 된다. 높은 곳과 낮은 곳의 낙차는 213m나 되고, 좁은 강폭은 30m 정도다. 세계에서 가장 험한 협곡 중의 한 곳으로 많은 사람들이 상그릴라 쪽 상호도협에서 중호도협, 하호도협으로 이삼일의 트레킹을 즐기는 곳이다.

길 위쪽으로 옛날 마방들이 운남에서 생산된 차(茶)를 싣고 걸었던 차마고도가 보인다. 깎아지른 바위는 그야말로 천길 낭떠러지다. 갈수록 좌측 강폭이 조금씩 협소해진다.

얼마쯤 갔을까? 호거용반(虎踞龍盤(蟠)이란 글이 보인다. 범이 걸터앉고 용이 서리는 듯한 웅장한 산세를 일컫는 말로 매우 위세 있는 모양을 뜻한다. 강변 위험한 곳은 산 속으로 터널을 뚫어 그곳을 지나도록 해 놓았다. 강 건너 상그릴라쪽 높은 지대로 새롭게 뚫은 길도 보인다. 차량으로 `호도석`이 있는 곳까지 갈 수 있다.

호도협의 잔잔한 옥빛 수면이 거칠어진다. 옥빛은 석회암에서 분출된 성질 때문이다. 호구잔도(虎口棧道)란 글자가 앞에 나타난다. 호랑이 입 속 같은, 천장에서 낙석이라도 떨어질 것 같은 위험한 길이다. 그렇기에 호랑이 호(虎)자를 썼을 것이다. 여행객들은 걸으면서 `내게는 절대로 떨어지지 않을 거야`란 생각을 하는지 무심하게 걷는다.

위험스런 그곳을 걸으면서 생각한다. 여행이란 것은 위험을 감수하면서 끊임없이 걸으며 보고, 듣고, 맛보고, 생각하며 느끼는 것이란 것을….

오리 남짓한 짧은 거리지만 길은 흙 하나 밟을 수 없다. 아름드리나무에 톱질 한번 해 놓고, 톱이 지나간 좁은 공간을 걷은 것 같은 산 속 바윗길이다. 옛 차마고도는 우리가 걷는 위쪽으로 뚫려 있다. 얼마쯤 걸어가자 호도석이 보이고 옥룡설산 쪽으로 한 마리의 호랑이상(像)이 보인다.

호랑이가 강 이쪽에서 저쪽으로 건너갈 때 호도석을 디디고 넘어갔다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물이다. 스토리텔링의 대표적인 곳이 호도협이다.

이야기가 있기 때문에 그런 이야기의 소재로 형상물을 만들고, 사람들이 찾을 수 있도록 꾸며놓는 중국인들의 기술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협곡이 좁아진다. 호도석 양옆으로 거친 물살이 흐른다. 흐르는 물에서 포말이 날리며 카메라 렌즈를 적신다. 물은 낮은 자리를 찾아 끊임없이 움직인다. 낮은 자리만 있으면 그곳이 자기 자리라고 움직이는 물. 물의 본성을 그곳의 물들은 잘 보여준다. 하지만 호도협의 거친 물줄기와 물소리는 그런 물의 본성을 보여준다기보다 두려움까지 갖게 한다. 마치 낮은 자리로 향하는 것이 권력의 암투요, 싸움이요, 경쟁을 의미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다리 아래로 호도석 가까이 갈 수 있도록 길을 만들고 울타리를 쳐 놓았다. 그 한쪽에 호도협(虎跳峽)이란 글씨도 있다. 기념촬영 장소다. 10여 분간 그곳에 머물러 호도석을 본 다음 걸었던 길을 다시 밟는다.

여행은 걷지 않으면 완성되지 않는다.

여행하다보면 많은 사람들이 피곤하다고 차에 머물기도 한다. 그것은 여행이 아니다. 여행은 발로 디뎌야 한다. 그것이 여행의 핵심이면서 발을 통해 깨달음을 얻기 때문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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