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열한 광인의 삶, 의열단 훈련의 풍경

<광인의 태양> ………………………………………………………………………………… 이육사

분명 라이플선을 튕겨서 올라

그냥 화화(火華)처럼 살아서 곱고

오랜 나달 연초(煙硝)에 끄슬린

얼굴을 가리면 슬픈 공작선(孔雀扇)

거치른 해협마다 흘긴 눈초리

항상 요충지대를 노려가다

이육사의 `광인의 태양`은 그의 항일투쟁 경험이 구체적 배경으로 등장하는 유일한 작품으로 주목할 만하다. 이 작품에는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라이플선`, `연초`, `요충지대` 등의 어휘가 등장한다. 이것은 일종의 군사용어다.

`라이플`은 라이플(rifle) 총으로서, 총신(銃身) 안에 나사 모양의 홈을 새겨 탄알이 회전하면서 날아가도록 만든 총을 가리킨다. 라이플선은 총신(銃身) 안에 새겨진 나선 모양의 홈을 말하는데, 이것 때문에 명중률이 높고 사정거리가 늘어난다. `튕겨서 올라`라는 표현은 이 라이플선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용수철과 유사하게 생겼기 때문이다.

또한 `연초`는 화약 혹은 화약의 폭발에 의해 생기는 연기를 말한다. 연초는 앞에서 말한 라이플에서 총알이 발사하면서 생기는 화약연기와 연결되어 있다. 또한 `요충지대`는 지세가 험하여 적을 막고 자기편을 지키기에 편리한 지대를 말한다.

이런 어휘가 자연스럽게 사용되고 있는 것은 육사의 체험 때문이다. 육사는 1923년 10월에 의열단에서 만든 조선혁명정치간부학교에 들어간다. `한국의 절대독립`과 `만주국의 탈환`을 궁극적 목표로 삼는 이 학교는 중국정부의 도움으로 중국 남경에 세워졌는데, 육사는 제1기로 입학하였다. 이 학교의 교장은 바로 의열단 단장 김원봉이다.

이 학교에서 육사는 6개월 동안 각종 군사훈련을 받고 국내외에서 활약하게 된다. 교육 내용은 정치학, 사회학 같은 정치과목과 `사격교범`, `폭탄제조법` 등의 군사과목, 그리고 `기관총조법`, `실탄사격` 같은 실습과목으로 이루어져 있다. 육사는 이 과정을 훌륭하게 수료한 군사간부였다. 또한 증언에 따르면 육사는 권총 사격에 있어서 뛰어난 실력을 보였다고 한다.

따라서 이 시의 광인은 어떤 중대한 임무를 수행하는 비밀요원으로서 육사 자신을 가리킨다. 그는 라이플선에서 튕겨 올라 망설임 없이 불꽃처럼 살아가는 치열한 존재이다. 이런 삶은 불꽃처럼 격렬하고 화려하기 때문에 고울 수밖에 없다. `아리랑`에서 감동적으로 그려진 의열단원의 불꽃과 같은 삶을 생각해보면 이 구절의 의미가 선명해진다.

이 광인은 오랜 시간 동안 연초(烟硝), 즉 화약의 폭발에 의해 생기는 연기 속에서 단련되는 존재이다. 군사훈련 중에 그을린 얼굴에 쏟아지는 뜨거운 태양을 손바닥으로 가릴 때, 그 손은 공작선이 된다. 공작선은 조선 시대에 나라의 의식에 쓰던 부채로, 붉은 빛으로 공작을 화려하게 그린 것이다. 햇빛을 가린 손바닥이 초라해서 슬픈 것이긴 하지만, 삶의 치열함 속에서 그것은 공작선처럼 곱고 화려한 것일 수밖에 없다.

불꽃처럼 격렬한 삶을 선택한 사람은 자신이 피할 수도 있는 극한적 상황을 끝내 피하지 않고, 삼엄한 경계가 끊이지 않는 요충지대를 `항상` 의도적으로 `노려가는` 존재이다. 자신을 절대 극한 속으로 밀어 넣으려고 애쓰는 자학에 가까운 준열함이 이런 표현에 잘 나타난다.`항상`이라는 강렬한 부사가 등장한 것도 이 준열함 때문이라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이제 왜 이런 존재를 광인이라 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자신을 일부러 극한 상황 속으로 밀어 넣는 정신의 준열함이 평범한 사람으로서는 이해할 수도 없고 또 흉내 낼 수도 없는 정신적 경지이기 때문이다. 그런 경지의 인간이 광인으로 불러지는 것은 그리 낯선 일이 아니다.

육사가 `광인의 태양`을 발표한 것은 1940년 4월이다. 이때면, 중일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일제의 억압과 약탈이 심해지던 시기이다. 내선일체 정책이 본격적으로 시행되어 창씨개명이라는 유례없는 저질 식민지 정책이 강요되던 시기이다.

시국을 비판하는 작품이 자취를 감추고 친일파시즘문학이 창궐하던 이때, 육사는 이 시를 발표하였다. 이런 위험한 시기에 이런 위험한 작품을 발표한 이육사는 과연 이 시대의 광인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태양처럼 찬란한 광인이다. <끝>

(경북대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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