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1년 `세계의문학`으로 등단한 신인 김민의 첫 시집 `길에서 만난 나무늘보`는 자못 충격적이다. 등단한 지 6년 만에 펴내는 그의 첫 시집에 수록된 86편의 시가 모두 한 줄짜리 작품으로 되어있다. 이런 시집은 우리 문학사에서 전무후무(前無後無)한 것이리라. 세계에서 가장 짧은 시 형식인 일본의 하이쿠(俳句)를 연상시키는 1行에 김민 시인은 세계 속의 자신의 존재 의의를, 자아와 세계의 소통을 압축·집약시켜놓고 있다. “노을이 갈대 사이로 흘렀네 내 굽은 손으로는 뭘 뿌려야 하나” (`자화상1`) “난수표를 풀어야 나를 읽을 수 있다니”(`자화상2`) “집어등 켜지는 시간 삐쩍 마른 오른손 탄불에 구워 들고 한 잔”(`자화상3`) “죽음을 주우러 다니는 넝마주이”(`자화상4`) “아유, 이거 손 좀 많이 봐야 되겠는데요”(`자화상5`) 시 `자화상`은 시인이 세계 속에서 부대끼며 살아가는 자기 존재의 의의를 스스로 그려놓은 그림이다. 그는 세계 속 자신의 모습을 “내 굽은 손” “죽음을 주우러 다니는 넝마주이” “손 좀 많이 봐야”하는 존재로 그려놓고 있다. 그리고 도저히 풀어낼 방법이 없는 난수표, 이 “난수표를 풀어야 나를 읽을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비극적 슬픔에 깊이 몸 베인 자아의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이종암(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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