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신객원 논설위원로타리 코리아 차기위원장
남자는 시계·만년필, 여자는 명품 백으로 완성한다. 신분제도가 없어진 뒤로는 몸에 지닌 장신구가 가치 측정의 요소가 됐기 때문이다.

특히 현대인들에게는 노출 빈도가 24시간인 시계나 자동차가 부의 필수품이어서 더 중요시 되고 있다. 한 때 가짜 명품 파동으로 잠잠했던 고급 손목시계판매가 다시 늘어나는가하면 가짜분위기에 휩쓸려 장롱 속에 넣어 두었던 고급시계를 다시 차는 분위기가 살아나고 있다.

손목시계는 마주 앉은 사람의 시선을 단밖에 끌 수 있다. 손목시계가 지닌 시간·기능보다는 재력과 시기능이 더 효과적이다.

역사상 최고의 변치 않는 명품시계는 북두칠성(北斗七星)이다. 금딱지도 아니고 손목에 찰 필요도 없다. 북두칠성의 여섯째와 일곱 번째 별이 시침(時針)역할을 한다.

옛 사람들은 밤하늘에서 반작이는 시침이 어느 방향을 가리키는가를 보고 술시(戌時) 해시(亥時)인가를 짐작했으니 느긋하고 기다릴 줄 아는 멋도 서려 있다. 5분을 기다리지 못하는 현대인들과는 다른 멋이 분명 그 시절에는 스며있었다.

그러나 손목시계가 휴대전화에 밀리는 현상도 사실이다. 이런 조짐은 젊은 층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 시계를 차지 않은 직장인들이 주도하고 있다. 이미 우리나라는 2005년부터 노동부가 인정하는 국가기술자격인 시계수리기능사 검증제도는 폐지됐다.

서구역사에서 시계를 발명한 사람을 꼭 집어서 말할 수는 없으니 기계식 시계가 사용되기는 서기 1300년 전후로 추정되고 손목시계는 20세기 초에 출현, 1차 세계대전이후 크게 유행했으니 100년쯤을 넘겼다.

생활문화사를 연구하는 전문가들은 사람이 몸에 지니거나 차고 다니는 장신구의 트렌드 수명은 100년 안팎일 때가 많다고 본다.

한국사회에서는 1977년 우리나라 100가구당 손목시계 보유현황(통계청)은 신사용이 89.8개, 숙년용이 63.8개로 나왔으나 20년 뒤(1997) 보유율은 93.4%까지 올라가 그 즈음 절정을 이룬 것으로 여겨진다. 지금은 이런 조사를 하지 않는다.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00손목시계가 정각 11시를 알려드리겠습니다” 라디오나 텔레비전의 시보(時報)의 스폰서도 손목시계가 휴대폰에게 자리를 넘겨 준지도 오래됐다. 대신 고가의 예물이거나 유명인의 사인이 들어간 기념품은 여전히 애용되고.

프랑스도 마찬가지다. 프랑스도 2005년부터 시계 및 귀금속류의 가계지출이 연 4%쯤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시계는 디지털 사회로 전환이 되기 시작한 중동이나 러시아에선 여전히 인기다.

손목시계란 개념은 점점 엷어지고 휴대시계로 전환되는 것은 어쩔 수 없으나 우리의 머릿속엔 손목시계, 만년필은 여전히 남아 있다.

만년필은 남자를 말한다. 편리함과 실용성을 제 1미덕으로 여겼던 현대인들은 만년필(萬年筆)대신 볼펜을 잡은 지가 이 삼 십 년이 훌쩍 흘렀지만 아날로그 시대의 대명사인 만년필은 디지털시대에서도 여전히 사랑받는 애장품이 되고 있다.

VIP스타일의 절정을 장식하는 것은 고급 옷도, 가방도, 신발도 아니고 손에서 노는 필기구다. 비즈니스 만남에서 말끔한 슈트 안주머니에서 꺼내든 고급스러운 만년필은 그 사람의 격과 가치체계를 높여준다.

역사를 바꾼 결정적인 현장에서는 꼭 만년필이 등장했다. 베를린장벽이 무너진 1990년 헬무트 콜 서독총리와 디메제이로 동독총리가 `통일서약서` 서명순간에 사용된 만년필은 `몽블랑 마이스터틱 149`였다. 유럽연합(EU) 통합 비준안 서명 때는 `오로라 탈렌륨`을, 작곡가 푸치니는 `파커`로 유명한 `라 보엠`을 작곡했다.

경제적 수준이 높아질수록 대량생산보다는 소량생산 하는 수제품이 인기다. 고급만년필의 대명사인 몽블랑의 걸작(傑作) `마이스터스틱`라인은 1924년 첫 출시 후 한번도 특유의 고급스러움과 은근한 세련미의 형태가 바뀌지 않았던 것이 세계적 사랑을 받는 이유가 됐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만년필은 몽블랑 솔리테어 로열라인의 1천250만원 짜리다.

저작권자 © 경북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