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先行-後言`으로 이끈다면 통하겠죠
`先行-後言`으로 이끈다면 통하겠죠
  • 김진호기자
  • 등록일 2011.04.07 20:56
  • 게재일 2011.04.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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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기 한국교직원공제회 이사장

경북 영천이 고향으로 알려진 김정기(55)한국교직원공제회 이사장은 사실 대구서 태어나고 자랐다.

대구 종로초등학교와 대구중학교, 경북고등학교를 거쳐 서울대 사범대 사회교육과를 졸업했고, 동 대학원에서 사회교육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미국 뉴욕대학 교육대학원에서 교육행정 석사와 한양대에서 교육철학 박사과정을 마쳤다.

공직은 대학원 재학때 행정고시에 합격, 문교부 사무관으로 출발해 교육부 총무과장, 경북도교육청 부교육감, 국제교육정보화기획관, 교육부 평생학습국장, 평생직업교육지원국장 등을 거쳐 선문대 부총장으로 있다가 청와대 교육비서관으로 근무했으며, 지난해 9월 3년 임기의 교직원공제회 이사장으로 부임했다.

김 이사장을 만나 고향에 대한 추억과 교직원공제회의 현안 등에 대해 들었다. <편집자주>



법관 꿈꾸던 소년 행시에 합격

30년간 교육 공직자로 `열과 성`

“교육정보화 계획 입안 가장 보람”



인터뷰를 위해 김정기 이사장 집무실에 들어서자 책상 맞은편 정면으로 박정희 전 대통령이 쓴 친필휘호가 눈에 들어왔다. `교직안정, 대통령 박정희 1971년 7월1일`이라고 쓰여 있었다.

김 이사장은 “교직원 공제회가 출범한 해에 쓰여진 글씨로 부산 어느 고서점에서 발견됐는 데, 생활안정과 복리증진의 교직원 공제회 정신과 맞아떨어지는 휘호라고 생각해 집무실에 걸어두라고 했다”고 설명했다.

박 전 대통령의 글씨는 오랜 세월을 지나며 다소 색이 바래고, 얼룩졌지만 아직도 서체에서는 힘이 넘쳐보였고, 교원들의 복지증진에 대한 김 이사장의 결의도 한층 굳게 느껴졌다.





지난해 교직원공제회 수장 맡아

`윤리경영` 원칙으로 창의적 수행

“고향인재 아낌없이 지원하고파”





-어릴 때 꿈은 무엇이었나.

◆어릴 때는 법관이나 대학교수가 되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30년 교육부 공직자 생활을 마감하고 보니, 국민의 세금으로 봉급을 받고 특정한 대상이 아니라 전 국민을 대상으로 직장생활을 했다는 점에서 어릴 적 희망과 궤적이 비슷한 생활을 했다는 생각이 든다.

-고향에서 지낼 때 생각나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나는 사실 태어 난 곳도, 유년시절과 초·중·고등학교를 마친 곳도 모두 대구다. 그러나 지금도 고향을 물으면 경북 영천이라고 말한다. 백부님이 고향을 지켰고 아버님이 대구에서 생활했기 때문에 영천에서는 살지는 않았지만, 매년 정월 초하루 제사를 지내거나 여름방학이나 시월 집안 묘사에는 늘 아버님을 따라 영천 청통면 원촌동 백부님 댁에서 사촌들과 같이 뛰어 놀았던 기억이 생생하기 때문이다. 또 은혜사 본당 마당과 운부암, 백흥암에 들러 사촌들과 놀았던 일들도 즐거운 유년시절의 추억으로 각인돼있다.

-중학교와 고교때 남다른 취미활동이나 특기가 있었나. 있다면 어떤 것인가.

◆고등학교때 농구를 좋아해 주위가 어두워져 농구골대의 링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친구들과 농구를 즐겼던 기억이 난다. 또 고등학교 재학때 청심학술토론회라는 서클에 가입해 활동한 것이 추억으로 떠오른다. 열정과 순수성을 가진 친구들이 모여서 열을 올리며 학술토론을 벌였던 일이 새삼스럽다. 당시 서클 선배나 동료 후배로는 배인준 동아일보 주필, 곽성문 전 국회의원, 장병수 롯데 홍보이사, 이재용 전 환경부장관, 엄동섭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원장 등이 있다.

-학교 졸업후 공직에 입문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

◆서울대 1학년때 교양과정부에 소속돼 인문, 사회, 교육계열이 함께 공부하다보니 자연스럽게 다른 학문계열 학생들과 같이 공부하고 교유를 하게 됐다. 그런데 3학년이 되면서 같이 지내던 친구들이 사법고시에 합격하는 등 성과를 내는 것을 보고 경쟁의식이 발동했다. 교직보다 더 넓은 분야의 일을 해보고 싶기도 해서 행정고시에 도전하게 됐다. 결국 대학원 1학년때 합격해 공직에 발을 들여 놓게 됐다.

-교육부에 근무할 때 보람있었던 일을 소개한다면.

◆교육부에 근무할 때 교직발전종합대책을 세워 연구휴직제 등을 만들어서 시행한 일, 정보화기획관으로 오랫동안 하면서 초·중·등 교육정보화 5개년계획, 대학정보화 5개년계획 등을 입안했던 일이 보람 있었다. 또 갈등은 있었지만 로스쿨도 내가 주도했는데,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경남을 하나 더 주라는 것을 끝까지 거부했던 일이 기억에 남는다. 당시 김신일 교육부총리가 난감해했지만 “지금 흔들면 다 무너집니다”하며 버텼다. 또 하나 교육정보화시스템인 나이스시스템을 계획하고, 구축했던 일이 기억에 남는다. 그 뒤 전교조가 이를 문제삼아 다소 시끄럽긴 했지만 공직자로서 보람있었던 순간들이었다.

-청와대 교육비서관으로 재직했는데, 특별한 인연이 있었나.

◆지난 2008년 촛불사태 이후 제 2기 청와대 비서진으로 정진곤 한양대 교수가 교육문화수석으로 임명되자 교육부를 잘 알고 교육정책에 대해 보좌할 비서관을 추천하는 과정에서 당시 선문대 부총장으로 있던 내가 추천돼 비서관으로 들어가게됐다.

-평소 생활할 때 좌우명이 있다면.

◆행정고시 합격후 수습할 때 일이다. 경제부처 2개월 비경제부처 2개월 도청·군청 등도 포함해서 1년정도 순환근무를 하게 되는데, 나는 경산군에 근무했다. 당시 경북도 기획관이 고등학교 선배였는데, 한 말을 좌우명으로 삼고있다. 그 선배는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 잊지마라`고 했다. 그때는 웃어넘겼는 데, 공직생활을 해보니까 그게 맞는 말인 것 같아 좌우명으로 삼고있다. 집에서는 `상경하애(上敬下愛)`를 가훈으로 삼고있다.

-한국교직원공제회를 소개한다면.

◆한국교직원공제회는 모든 교직원들이 재직 중에는 물론 퇴직 후에도 교직의 보람과 생활의 풍요함을 누릴 수 있도록 지난 1971년 특별법으로 설립된 교직원복지기관이다. 설립 당시 회원수 7만명, 자산 13억원에 불과했던 공제회는 이제는 회원수 61만명, 자산 18조원, 그리고 9개의 산하사업체를 보유한 국민기업으로 크게 성장했다.

-교직원공제회의 현안이 있다면 무엇인가.

◆무엇보다 금융사업 및 개발사업 부문의 수익 극대화가 최대 현안이다. 주식, 채권 등 유가증권 투자를 비롯해, 인천신공항고속도로, 부산거제간 연결도로 등 SOC 사업, 대규모 부동산 사업, 해외투자 사업 등 투자선 확대를 통해 장기 안정적인 수익원 마련에 주력하고 있다. 올해는 총 투자자산을 12조6천억원으로 예상하고 있으며, 금융사업부문에 9조원, 개발사업부문에 3조6천억원을 운용할 계획이다. 내년 상반기 중 총 자산규모가 20조원을 돌파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사장으로 취임하면서 남다른 각오나 감회가 있다면.

◆지난해 9월 취임하면서 `윤리경영`을 가장 중요한 경영원칙 가운데 하나로 꼽았다. 윤리경영을 바탕으로 회원들과 국민들로부터 사랑과 신뢰를 받는 기업,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공제회로 우뚝 설 수 있도록 해 나갈 생각이다. 옛 성현의 말 가운데 `선행기언(先行其言) 이후종지(而後從之)`이란 말이 있다. 바로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먼저 실천한 후에 그것을 말하라`는 뜻인데, 임기 동안 이 경구를 마음에 깊이 새겨 이사장으로서의 직책을 창의적으로 수행해 나갈 생각이다.

-이사장으로서 가장 중점 추진하고 있는 현안은 무엇인가.

◆창립 40주년을 계기로 과거에 얽매이지 않는 확고한 비전, 미래를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갈 새로운 가치, 그리고 새로운 시대에 걸맞는 도전적인 경영전략을 세우고 추진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이를 위해 지난 3월1일부로 조직체계를 크게 바꾸고, 창사 이래 최대 규모 인사를 단행했다. 조직개편의 핵심은 크게 세가지다. △회원복지 기능의 강화 △미래전략실의 신설 △해외 투자의 활성화에 초점을 맞췄다.

-이사장으로서 꼭 이루고 싶은 일이 있다면.

◆취임 때 약속한 윤리경영의 기반을 확고히 하는 일이다. 윤리경영, 준법경영이라는 굳건한 토대하에 다양한 금융서비스를 통해 60만 교직원들의 생활안정을 확고하게 책임지고 격조높은 생활, 문화복지서비스의 수준을 크게 끌어 올리는 일에 매진할 생각이다.

-고향사람들에게 인사말을 한다면.

◆30여년간의 교육부 공직생활 중에 바쁘다는 핑계로 고향을 자주 방문하지 못했고 고향발전에도 기여하지 못한 것 같아 부끄럽다. 이제부터라도 고향발전을 위해, 특히 고향 출신 인재들이 사회에서 필요한 인재로 자라날 수 있도록 돕는데 일조하겠다. 영천 출신 재경 향우들과 조그만 장학회 활동에도 참여하고, 재경 영천학사에도 자주 찾아가 인생의 멘토로서 학생들을 격려하고 지원하는데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도 더 고민해 볼 작정이다. /김진호기자 kjh@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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