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여인의 수놓기와 페넬로페의 옷 짜기

<수(繡)의 비밀> ……………………………………………………………………………… 한용운

나는 당신의 옷을 다 지어 놓았습니다.

심의도 짓고, 도포도 짓고, 자리옷도 지었습니다.

짓지 아니한 것은 작은 주머니에 수놓는 것뿐입니다. (중략)

나의 마음이 아프고 쓰린 때에는 주머니에 수를 놓으랴면, 나의 마음은 수놓는 금실을 따라서 바늘 구녕으로 들어가고, 주머니 속에서 맑은 노래가 나와서, 나의 마음이 됩니다.

그리고 아직 이 세상에는, 그 주머니에 넣을 만한 무슨 보물이 없습니다.

이 작은 주머니는 짓기 싫어서 짓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짓고 싶어서 다 짓지 않은 것입니다.

이 작품은 여성으로 보이는 화자가 `당신`의 옷을 짓는 생생한 장면을 보여주고 있다. `심의`, `도포`, `자리옷`, `수놓는 주머니` 등이 구체적으로 나타나 우리는 시 속의 상황을 구체적으로 그려볼 수 있다.

`심의`는 옛날에 높은 선비가 입던 웃옷으로, 대개 흰 베로 두루마기 모양으로 만드는데 소매를 넓게 하고 검은 비단으로 가를 두른 옷이다. 이것은 아무나 입는 옷이 아니라 학문이나 인격의 수양이 높은 선비가 입는 옷이다. 고려 말의 선비, 이제현의 초상화에 이 심의의 모습이 잘 나타나 있다. 이 시에 나타난 `당신`은 이런 옷을 입는 기품이 있는 존재로 암시되어 있다.

그리고 수를 놓는 주머니가 등장하는데, 이것은 옛날에 도포끈에 달고 다니던 주머니를 가리킨다. 옛날 옷에는 물건을 넣을 수 있는 호주머니가 없었기 때문에 주머니를 따로 만들어 도포끈에 달고 다녔다.

이 시의 화자는 `당신`을 기다리며, 그가 사용할 이 주머니에 수를 놓고 있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이 여성의 수놓기는 지지부진하기만 하다. “짓다가 놓아두고 짓다가 놓아두고“ 하여 이 주머니에는 화자의 손때만 많이 묻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바느질 솜씨가 없어서가 아니라, 주머니에 수놓는 것 자체가 화자에게 커다란 위안이 되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는 주머니를 완성한다고 해도 거기에 넣어둘 만한 보물이 아직 이 세상에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본질적인 이유는 다른 데 있다. 주머니에 수를 놓는 것은 당신을 위한 옷 짓기의 마지막이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옷으로서 심의나 도포, 잠옷은 이미 완성하였다.

도포자락에 달아둘 주머니는 이런 옷에 비하여 부차적인 것일 수 있다.

그런데 화자는 오히려 이 주머니에 더 많은 공을 들인다. 그것은 이 주머니에 수를 놓는 일이 당신을 기다리는 유일한 행위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화자는 “짓고 싶어서 다 짓지 않은 것”이라 한 것이다. 이런 섬세한 배려가 이 작품의 묘미라 할 수 있다.

이는 마치 그리스로마 신화에 나오는 페넬로페의 상황과 비슷하다.

페넬로페도 전쟁에 나간 남편 오디세우스를 기다리며 낮에는 옷을 짜고 밤에는 옷을 풀었다. 방탕한 구혼자들이 날마다 찾아와서 결혼해달라며 괴롭히자, 페넬로페가 시아버지의 수의를 다 짜면 결혼해주겠다고 그들에게 약속하였기 때문이다. 옷의 완성을 미루는 그녀의 행위는 구혼자들을 거절하는 수단이었다. 페넬로페의 옷 짜기는 몰입의 행위가 아니기 때문에 외부적 사건에 불과하다. 그 옷이 남편 오디세우스의 것이 아니기 때문에 처음부터 몰입이 불가능하였다.

그러나 한용운 시의 수놓기는 당신을 위한 행위이기에 몰입의 대상이다.

이런 차이는 일반적으로 옷 짜기가 실용적인 행위인 데 반하여, 우리나라에서 수놓기는 단순한 실용적 차원을 넘어 수양의 차원에 속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여기에서 수놓기가 처음부터 내면의 문제에 속한 것임을 알고 소재로 선택한 한용운의 안목을 짐작할 수 있다.

(경북대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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