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 4사자 가운데 서 있는 연기조사 어머니 입상. 우> 화엄사 4사자 3층석탑과 석등
신라 진흥왕 5년(544)에 연기조사(緣起祖師)가 창건한 지리산 화엄사(華嚴寺)는 문화재의 보고(寶庫)라 칭할 정도로 국보와 보물이 많은 곳이다. 그 중 1962년 12월에 국보 제35호로 지정된 높이 5.5m의 `4사자 3층 석탑`은 그 양식이 아주 특이하다. 이는 경주 불국사의 다보탑과 더불어 한국 석탑 양식 분류에 있어서 이형(異形) 석탑으로 쌍벽을 이루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구례 화엄사에 당도하여 일주문을 지나면 천왕문으로 향하는 길에 먼저 육중한 크기의 마당석과 이음새 없는 계단석을 만나게 된다. 이는 마치 산길에 솟은 너른 바위를 걷는 착각이 들 정도로 지리산 맹주로서 그 위용을 자랑하는 듯하다. 숨을 돌리고 화엄사 각황전 뒤 108계단을 돌아 언덕위에 오르면 그 곳에는 1470년 동안 제자리를 지켜온 특이한 석탑과 석등이 옛 모습을 간직한 채 찾는 이를 반긴다. 바로 `4사자 3층 석탑`이고 그 앞의 석등이 `공양석등`이다.

일반적으로 탑은 아래에서부터 지대석 위의 기단부와 탑신부 그리고 상륜부로 크게 3부분으로 구성돼 있다. 기단부는 다시 하단과 상단 2단으로 구분되고 상단부 위에 갑석을 놓고 그 위에 탑신을 올린다. 보통의 탑은 평평한 기단의 상단부 위에 탑신이 얹히게 되는데 화엄사의 4사자 3층 석탑은 연기조사의 어머니와 관련되는 전설을 지닌 석탑으로 그 구조가 지대석 위에 2개층의 기단과 3층 석탑의 기본형을 취하고는 있으나 기단의 하단부 위에 얹혀야 할 평평한 상단부 기단 대신 4마리의 사자를 기단 하단부 위의 네 모퉁이에 기둥처럼 세워 상부의 탑신을 받치도록 세워놓은 특이한 구조로 구성되어 있다.

상단부 기단의 우주(隅柱, 모서리기둥) 대신 연화대 위에 꿇어앉은 암수 두 마리씩의 사자를 네 모서리에 배치하고 사자머리 위에 연화대를 얹어 3층 석탑 하부 갑석을 구조적으로 안전하게 받치게 한 석공(石工)의 구조적 발상은 실로 놀랍다. 게다가 4마리의 사자에 에워싸여 있는 중앙부에는 합장한 채 다소곳이 서있는 여인상이 보이는데 이는 탑의 중심에 세우는 기둥인 찰주(擦柱) 대신 연기조사의 어머니를 형상화한 합장한 대덕(大德)의 입상을 세워 놓은 것이다. 구조체의 속을 훤희 보여주는 겪이다.

한편, 4사자 3층석탑 바로 앞에 서있는 석등에는 석등 아래에 공양기를 들고 탑을 마주하고 끓어 앉아 있는 스님상이 있는데 이는 상부의 석등을 머리에 이고 맞은편 탑안의 어머니께 차를 공양하는 연기조사의 지극한 효성을 석공이 표현한 것이다.

구순(卒壽)의 부모님을 모신 필자가 가끔 문화재 조사차 화엄사 4사자 3층 석탑을 찾을 때면 왠지 이 탑을 만든 석공의 심성(心性)이 가슴 깊이 와 닿는 것 같아 저절로 머리가 조아려진다. 올 봄 세속의 바쁜 생활을 빌미로 식어가는 효심을 반성하며 화엄사 4사자 3층 석탑을 한 번 찾아봐야겠다.

/영남이공대 교수

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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